끝나지 않은 학살의 이야기 발칸반도, 발칸의 영웅, 독재자 요시프 티토

in #kr8 years ago


실존한 인물을 평가하는것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 과다하게 미화되고, 혹은 과다하게 악의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종종있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위인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조사해보면 만들어진 위인, 알고보면 비겁자, 학살자, 장사꾼등
대부분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면이 그만큼 어두운게 보통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선두로 역사를 이끌어 왔던것은 사실입니다.

오늘은 발칸지역을 이해하는 키워드중 하나이며 위인이라고 불릴만한 "요시프 티토"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유고연방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어릴적만해도 "공산당은 엉덩이에 꼬리달린 존재"로 아예 사람이 아니었던 교육을 받고 자란 저의 세대에서는 “유고연방”은 전혀 알수 없는 미지의 국가였고 공산주의의 지도자라는 이유로 유고연방이란 국가를 만든 “요시프 티토”는 흔한 위인전 하나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요시프 티토를 발칸의 영웅이었고, 마오쩌둥이었으며, 세계 대전후 초강대국이 되버린 소련과 대등한 위치로 외교를 했던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제 3세계를 대표하는 사람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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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 외모부터 좀 카리스마 듬뿍이죠


이 양반이 이차 세계대전 당시에 그 유명한 파르티잔(partisan, 빨치산)을 이끌고 깊고 험난한 발칸의 산에서 독일의 나치 정예군 30만을 붙잡고 유럽 남부 전선을 깽판을 놨기 때문에 나치가 연합국에 패망하는 계기가 생겼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또 소련이 대전 말기에 부동항과 지중해로의 진출을 노리고 여러 지역을 간보던중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족이 많이 거주하는 발칸 지역에서 “우리 같은 슬라브 민족끼리 잘해보자 슬라브 민족 만세!”라고 외치며 "범슬라브주의 운동"으로 발칸 지역을 낼름 먹을려고 하니, ”또 다시 싸우지 뭐(1)”라며 엄포를 놔버린,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가 되겟습니다.

이후 소련에게 발칸 지역을 놓친 일은 천추의 한이 됩니다.

범슬라브주의 : 1830년 즈음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슬라브 인”들의 민족적 우수성과 슬라브인이 하나로 뭉쳐야한다는 주장이 시작됩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한 슬라브 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의 긴장관계때문에 사라지게 됩니다.



티토는 현재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접경인 쿰로베츠(Kumrovec)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체코와 독일등지에서 금속관련 노동을 하다가 1차세계대전에 오스트리아의 군인으로 참전하고 포로가 되고, 전쟁통에 러시아가 공산주의 혁명으로 혼란스러워지자 수용소에서 탈출하였는데, 러시아의 여러 도시를 들리면서 레닌을 추종하는 볼셰비키들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티토"라는 이름을 가명으로 쓰면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한 41년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대항군이며, 게릴라였던 “파르티잔”을 조직하였습니다.

티토는 전쟁시의 업적도 대단했지만 이후가 더 대단했던 사람입니다. 크로아티아계 우스타샤의 학살로 긴장되어있는 민족갈등을 내리누르고 서로 물어뜯기 바빳던 유고 연방내의 국가들을 하나로 잘 섞여 살게 했으며, 미, 소련의 냉전 상황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부터 북한의 김일성까지 두루두루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고 하나로 묶어 “비동맹 운동(2)”을 주창하고 균형적이면서 영리한 외교 행보를 보이며 국제적인 스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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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맹 운동 대표 : 왼쪽부터 자와할랄 네루(인도), 크와메 은크루마(가나), 가말 압둘 나세르(이집트), 수카르노(인도네시아), 요시프 티토(유고 슬라비아)


비동맹 운동 : 1961, 유고연방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창설한 국제적인 조직, “강대국이나 블록에 대항할뿐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인종주의, 모든 형태의 외국 침략, 점령, 지배, 간섭, 패권과 투쟁하여, 비동맹국가들의 독립, 주권, 영토 통일, 안보를 보장한다.”


경제 분야도 우리가 아는 북한이나 소련처럼 소유의 자유가 적거나 거의 없는 형태의 공산주의가 아닌, 유연한 방식으로 경제를 이끌고 시장경제를 채택해, 현재의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스타일의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었지요



아마 여러분은 1990년대 코소보 사태와 유고내전을 기억하실겁니다.
이 전쟁들이 가장 무섭고 잔인했던 점은 수십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서로 총을 들고 같은 인종끼리 인종을 말살하겟다며 총을 들고, 칼을 들고 싸운 전쟁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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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 / 유고 내전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추천할만한 영화 / 보스니아 내전 이야기


"유고내전"은 티토가 죽어서 일어난 전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티토때문에 진즉에 일어날 전쟁이 40년후로 미루어졌다라고 말해도 되겟지요, 몇백년 동안 이어진 무슬림계와 기독교의 갈등, 로마카톨릭과 정교회의 갈등인 “우스타샤”의 학살, 이에 대항할려고 만들어졌지만 똑같은 짓을 하는 세르비아계의 “체트니크”

2차세계 대전 당시 발칸반도는 극심한 혼란과 무질서로 가득찬곳이었습니다.

바로 티토가 그 혼란을 잠재우고 "유고슬라비아(남슬라브)족은 하나이다."라고 말하며, 슬라브인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사이가 안좋았던 민족들을 한울타리에 살게하고, 강한 세르비아계를 견제하면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알바니아계 같은 소수에게 많은 지원을 하여, 각민족들을 화해시켰습니다.

티토가 통치하던 시대에는 "유고 사람들은 자신의 민족과 종교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이슬람계와 유대인이 결혼하고, 정교회인과 카톨릭 신자가 결혼하던것이 흔한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티토가 죽은뒤 얼마지나지 않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같은 세르비아계 민족주의 정치인들이 크로아티아인들과 보스니아인들이 우리를 다시 학살할것이라며, 유고 내전을 일으킨것을 일어난 것을 무덤에 묻힌 그가 알았다면 엄청나게 실망했을꺼라 생각됩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 대 세르비아주의를 주창한 세르비아의 대통령, 유고 내전의 원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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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가졌던 "요시프 티토", 그가 1980년에 사망했을때, 전세계의 정상 60여명과 외무장관만 50여명, 128개국의 대표가 그의 죽음을 위로하러 그의 장례식장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자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필립공, 미국 케네디 대통령, 닉슨, 소련 흐루쇼프 서기장, 피델 카스트로, 프랑크 시내트라등

요시프 티토는 역사상 가장 많은 조문을 받은 인기있던 독재자였지요,

한사람의 능력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수 있는지의 좋은예가 아닐까 합니다. 그가 죽은지 30년이 다된 지금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시 그리워한다고 하니까요, 향수일지, 존경일지는 조금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듯 합니다만.



각주)

(1) 원래 내용은 "소련군이 발칸에 오래 주둔하면 우리는 소련군과도 싸울 생각이 있다." 라는 내용이다. 사실 파르티잔의 병력보다는 티토의 외교 능력과 유럽과 미국의 견제 때문에 철수한것이지만 지중해의 발판을 잃은 소련에게는 통탄할만한 일이었다. 이 내용은 스탈린 사후에 그의 집무실에서 발견된 편지에서 나온 이야기.

(2) 비동맹 주의 : 티토가 소련의 코민포름에서 쫓겨나게 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면서, 유고 연방의 요시프 티토, 인도의 수상이었던 네루,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이집트 나세르가 주축이 되어 만든 동맹노선, 이들의 공통점은 전부 각국의 최초의 대통령이자, 수상들이다.



지인이 프라하로 놀러오다보니 이어지는 술자리로.... 좀 늦어지는 중입니다만 계속 신경은 쓰고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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