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의 프리메이슨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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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프리메이슨

가장 널리 알려진 비밀결사 혹은 '음모론의 주역'인 프리메이슨Freemason은 사실은 '사교단체'다. 요컨대, 로터리클럽이나 라이온스클럽 같은 조직이란 이야기. 자연신론自然神論 혹은 이신론理神論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교황청을 비롯한 기독교 조직과는 오래도록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았기에 과거 기독교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시절에는 기독교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꽤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맴버들 가운데 유력자들이 많았기에 뭔가 굉장한 힘이 있는 조직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기기도 하지만, '프리메이슨이 세계정부다'라는 종류의 이야기는 검증되지 않고, 또 검증할 필요도 없는 전형적인 '도시괴담'이다.

미국의 건국 과정에 프리메이슨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오히려 미국 건국과 연관이 있는 것은 프리메이슨의 아류 혹은 라이벌 정도로 탄생한 계몽주의자 집단 '일루미나티'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미국을 '일루미나티의 국가',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것이고, 대충 1달러 지폐에 사용된 다양한 상징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건국 세력과 일루미나티는 '사상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꽤 많았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일루미나티는 겨우 십년 정도 존재하다가 조직 자체가 와해되었지만, 프리메이슨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사교단체'여서, 공식 홈페이지가 있는 것은 물론, 런던이나 에딘버러 같은 도시에 가면 시내 중심가에 지역 지부(Grand Lodge)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런던에는 영국박물관이나 킹스컬리지, LSE 같은 대학교들이 지근 거리에 있는 홀본에 '프리메이슨 런던 지부'가 있는데, 건물이 꽤나 멋지다.

가장 멀리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에서부터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신전 건설자들,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 중세 고딕성당의 건설자들 등을 프리메이슨 조직의 기원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이 조직의 공식적인 창립 연도는 1717년이다. 그래서 작년 2017년에는 창립 30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정말로 이 조직이 고대시대의 과학-기술자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조직이 기독교를 대표로 하는 '관념적 신앙'에 저항하는 '자연주의적 사상'을 조직의 모토로 삼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혹자들은, 프리메이슨의 역사성을 최대한 훼손시키기 위한 의도를 갖고 이 조직이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졌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 주장을 '고고학적으로' (정확히는 '금석학적으로') 반증하는 증거가 바로 '우리집 뒷마당'에 있다. 사진 속의 비석은 '우리집 뒷마당' 쯤이라 할 수 있는 교회 앞 공동묘지에 세워져 있는 18세기의 것인데, 무덤은 사라진 것 같지만 비석에 새겨진 비문은 여전히 분명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비석 상단 중앙부에 새겨져 있는 '직각자와 콤파스'는 가장 대표적인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쓰여져 있는 대문자 G는 God(신) 혹은 Geometry(기하학)을 의미하는데, 명목상 '자유 석공 연합'이니 기하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에 대해서는 '프리메이슨에게 웬 신이냐'라고 누군가는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프리메이슨들은 반기독교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분명히 아니다. 다만, 이들의 신은 어떤 법칙이나 원리로 존재하는 '자연신'이라는 점에서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상정하는 '인격신'과 큰 차이가 있다. 대충, 아인슈타인이 말해서 유명해진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의 신과 비슷한 성격의 신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비석 우측 상단부에 있는 그림은 '추'인데, 이건 지부의 상급 관리자(Senior Warden)에게 부여되는 상징이다. 상급 관리자는 대략 부지부장 정도의 지위를 갖는 직책이다. 왼쪽은 '끌'인데, 당연히 석공과 관련이 있는 상징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비석에 쓰여진 글귀를 읽어내려가면 이렇다.


To the memory of
JOHN Son of JOHN NICHOLSON
Mason who died the 25th August
1791 in the 28th year of his age
May he rest in peace

Also MAGARET NICHOLSON
his Mother who died in the 22nd of
October 1801 Aged 75

Also the above named
JOHN NICHOLSON
who died Nov 9 1804
Aged 78 Years

존 니콜슨의 아들 존을 기리며
석공은 1791년 8월 25일,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편히 쉬기를

그리고
그의 모친 마가렛 니콜슨
1801년 8월 22일,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위에서 이름이 언급된
존 니콜슨
1804년 11월 9일,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이 비석은 아마도 일가족이 합장된 무덤의 비석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정말로 메이슨, 즉 석공이라 불리는 아들 존이 1791년 28세의 젊은 나이로 가장 먼저 요절하고, 그의 모친과 부친은 아들이 사망하고 각각 10여년, 13년 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상급 관리자(Senior Warden)가 아주 낮은 직책이 아님을 고려한다면 아들 존은 꽤나 젊은 나이에 프리메이슨 내에서 (여기는 더럼이나깐, 중앙당은 아니고 일종의 지역위원회 정도였겠지만) 꽤 높은 직책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이 교회 앞에 있는 공동묘지라는 점이다. 이곳에 있는 교회는 '세인트 자일스 교회'인데, 이 교회는 12세기에 세워졌으니(심지어 교회 건물 가운데 일부는 거의 그 시대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사망하는 18세기말-19세기초에도 교회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반기독교적인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떡하니 박혀있는 비석을 기독교 교회 앞에 세우며 행해졌을 존의 장례식이 어떤 식으로 치뤄졌을지 좀 궁금해진다. 어쩌면 18세기 정도가 되면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프리메이슨들도 보통의 일상 속에서는 딱히 교회와 마찰이 없이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비석의 주인인 아들 존이 죽은 것은 1791년인데, 이 시기에 이미 당당하게 프리메이슨의 표식이 사용되었던 것을 보면 프리메이슨이 산업혁명 이후에나 형성된 조직이라는 이론은 타당성을 완전히 잃게 된다.

내가 이 비석을 처음 발견한 것은, 죽음과 장례를 전공한 인류학자인 친구 김샛별이 더럼에 놀러와서 무덤과 자연장 묘역을 신나서 둘러볼 때인데, 그게 벌써 2015년 여름이었던거 같다. 오늘 집에 돌아오다가 깜빡 잊고 있던 이 비석을 다시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 반가움을 간단하게만 기록하려고 했던게 쓰다보니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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