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ny guy

in #kr5 years ago (edited)

이번 주말의 하이라이트. 대만계 미국인 J와 무려 2.5시간이나 이야기를 했다. 1시간반은 전화로 나머지는 영상통화로. 저번엔 어둠 속의 얼굴만 보였는데 이번엔 환한 곳에서 그가 있어서 그의 얼굴이 잘 보였다.
그는 듬직한 모습과는 다르게 너무 웃긴 남자였다. 정말 직장에서 별로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 에너지가 뺏기는 느낌이었는데 그가 오랜만에 날 웃게 해 줬다.

그는 정말 밝게 구김살 없이 자란 유쾌한 남자였다. 그리고 20대 때 은행을 다니다가 지겨워서 갑자기 인도에 마이크로파이낸스 봉사활동을 반년동안 하러 갔는데 홈스테이집 아주머니가 인도식 빵 로티를 도시락으로 너무 많이 챙겨주셔서 아침마다 일하러 갈 때 소에게 먹인 이야기, 대학생 때 6주 연속으로 주말에 라스베가스 가서 흥청망청 놀고 술을 퍼마신 이야기, 중학교 때 한국계 미국인 여자애와 사귀게 되었는데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나중엔 여자친구가 하나님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편지를 써서 차이게 된 이야기 등등 무궁무진한 이야기 창고를 열어가며 날 즐겁게 해 줬다.

"미국에 올 때 다른 남자도 만나는거야?"
이미 난 그에게 여러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이야기했었고 그도 그냥 쿨하게 알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 솔직히 이상한 남자들은 다 떨어져 나갔고, J와 또 J 이니셜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 남자만 남았다. 대만계 J가 훨씬 적극적이지만 내가 하도 적극적인 남자들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다른 J도 미국에 가면 만나려고 했었다. 대만계 J가 나를 너무 즐겁게 해 주고 또 솔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어서 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응 실은 미국 도착하자마자 만날거야. 하지만 난 너랑 더 만나고 싶어."
"...걔는 중국계야?"
"아니 한국계."
"아...한국계...한국계 별로야...몇살인데?"
"35살..."

그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얼굴이 어두워졌다. 난 당황스러워서 너가 정말 싫다면 만나지 않을거라고까지 말해버렸다. 하지만 그는 서로 나이도 있는데 알겠다고 만나보라고 승낙(?)해줬다. 뭔가 분위기가 급 다운되어서 이제 잘 시간이지~하고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그가 Knott's Berry Farm이라는 스누피의 놀이동산에서 고등학교 때 알바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사는 곳에서 15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날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예전의 나 같았으면 정말 그에게 푹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난 너무나 많은 이상한 남자들을 겪어서 이 남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는 35살이지만 순수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솔직히 옆에 있었으면 열심히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 많은 남자가 이상형이 아니었는데. 대만계 J는 내가 지금까지 남자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다.

그가 내 모습의 어떤 점이 좋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 LA에서 여자를 만나지 않냐고 하니까 LA 여자들을 어떤 차를 끌고 뭘 입는지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단다. 음 글쎄. 나라고 딱히 들 세속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ㅎㅎㅎ 그리고 그는 열심히 사는 여자가 좋다고하는데 난 지금 일에 지쳐서 별로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데...

나도 그렇지만 그가 정말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메세지를 보내준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정이 헛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가 나를 웃게 해 줘서 참 즐거웠다. 고마워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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