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소개] 박경철_W를 찾아서_2008
우리가 세상을 살며 마주하는 감동적인 것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은 주로 '인생 XX' 이라는 표현을 붙여 사용하고는 하죠.
인생 책, 인생 영화, 인생 노래 등으로 말이죠.
제게는 신입사원 시절 어느 동기에게 소개 받았던 이 강의가
'인생 강의' 입니다.
주위에 대한 관심,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 들어 있습니다.
내용이 조금 길지만, 시간을 내어 읽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입니다.
이미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계신 Steemer 분들께 소개 드립니다.
= full 강연도 첨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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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경철입니다.
보통은 제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돈 모으는 얘기만 하러 다닙니다.
현재 의사협회 대표를 맡아 그 강연 주제가 다소간 바뀌기는 했지만
오늘도 역시 의사들 앞에 서서 돈 얘기를 해야 겠군요.
오늘은 제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94년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직업을 찾던 중
대전과 서울에서 각각 1군데씩 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때 서울의 병원에서는 당시 시세에 맞는 연봉을 보장했었고,
대전에서는 그에 3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할 테니
어서 빨리 와서 일을 좀 거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저는 혹시 숫자를 잘못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어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습니다.
대전의 병원 측에서는 그게 맞다며,
한시라도 빨리 내려와 일을 시작해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덧붙였지요. 저는 그 다음날 바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곳에 갔더니 그곳 병원의 원장님은 제 손을 부여 잡고는
제가 개업 후 입사한 첫번째 의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병원은 리모델링이 채 끝나지도 않아,
수술 환자는 바로 중환자실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일은 정말로 바빴습니다.
제가 진료, 수술 그리고 간호까지 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매우 젊었지요. 그래서 3주 동안은 인턴 보다 더욱 힘들고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보통 대개는 인턴을 3신이라고 부르지요?
먹는데는 식신, 자는데는 걸신, 수술 못하는 데는 병신. 그런데 정말 그 말이 맞습니다.
처음이라 경험도 없었지만 열심히 병원 일을 하고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힘들고 바보처럼 보내야만 했었습니다.
3일 동안 3시간 연속으로 잘 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하루는 서울의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까지도 한국 최고의 엘리트 들이 모여서 경제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한 연구소의 직원인 녀석이었지요. 녀석은 제게 전화해서는 대뜸 주말에 있는
한 강연에 참가하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바쁘고 어렵게 사는 제게
그럴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너 진짜 안 오면 후회한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성격상 허투루 말할 일은 없는데,
괜히 그런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은 것이 영 찜찜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는 내내, 그 녀석이 던진 ‘후회’라는 말이 뱅뱅 돌았지요.
그리고는 다음날 병원 원장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막 서울에서 열리는 재활 환자 보조기구 관련해서
컨퍼런스가 있는데 여기에 참석해서 최신 정보를 좀 얻어왔으면
병원의 향후 개발에 있어서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론 원장님도 제 거짓말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장님께서는 당시 13년 전에 50만원을 쥐어 주시며
한 3일을 쉬었다가 오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운데 같이 갈 동행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저의 상태를 보면, 같이 갈 여자가 있을 리는 만무하겠지요?
그래서 이리 저리 궁리하던 끝에 이제 막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MBA를 마치고
열심히 백수로 놀고 있는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백수들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주변에서 귀찮게 하면 짜증을 내지요?
하지만 백수들은 행동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약간 다릅니다.
그 친구는 제가 무슨 컨퍼런스인지를 설명도 채 하기 전에
바로 오케이 해 버리더군요.
그렇게 해서 저와 제 친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경제 연구소에 가면 대단한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달에 강연을 갔던 적이 있는데 여전히 그렇더군요.
그 13년 전이라면 어땠을 지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쨌거나 그 강연을 추천해 주었던 친구와 셋이서 강연장의 맨 뒷자리에서
저희는 조용히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연사를 매우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뉴욕 양키즈 모자를 쓰고, 보스턴 대학의 로고가 찍힌 후드티를 입고,
그리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어요. 모두들 놀랐습니다.
그런데 강연을 들으면서는 더더욱 놀랐지요.
칠판에 W라는 글자를 3개 쓰기 시작하더니,
미래는 바로 이것에 지배를 받을 것이다. 모두가 W를 사용할 것이고,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이다 하는 등의 말도 안 되는 꿈 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부터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그의 강연이 끝날 무렵에는 우리 3명 만이 강의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강연의 사회를 맡았던 사람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어이없이 지켜보고만 있었지요.
저는 친구에게 ‘이걸 보라고 나를 대구에서 불렀냐’라고 핀잔을 주었고, 그 친구 역시 제게 너무나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제 백수 친구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10만원 있냐?’ 하고는 묻더니, 그 W와 함께 곧 죽어도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빌려주었고, 그 백수는 W가 주차장으로 가는 것을 붙잡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W를 믿습니다. 좀 얘기 좀 하고 싶습니다.’
그 후에 들은 얘기로는 새벽 3시까지 술자리에서 안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W는 그 다음해에 6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4년 뒤 총 자산 2조 6천억짜리 기업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제 백수 친구 얘기를 하도록 하지요.
저는 강연에 대한 큰 실망감으로 병원으로 다시 내려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정말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귀에 익숙한 목소리의 한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그 백수 친구였지요. 친구는 여전히 W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나 80만원만 빌려줘.’
아시겠지만 백수가 ‘빌려줘’ 하고 말하는 것은, 그냥 ‘줘’ 하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냥 이 돈으로 관계를 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고민한 끝에, 결국 빌려주었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사무실을 차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1개월 뒤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역시 그 백수 친구였지요. 이번에도 부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절했고, 그는 돈도 시간도 안 드는 것이라고 저를 회유했습니다. 그는 컴퓨터로 편지 쓰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내가 두 개만 물어보자. 너 편지 최근에 쓴 적 있냐?,
그건 사업이 성공할 수가 없다. 요즘 사람들은 일년에 편지를 두 통도 안 쓴다, 그래 너가 만에 하나 하루에 3통 쓰는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50원이면 우표를 사는데 누가 컴퓨터로 일일이 편지를 보내겠느냐.
제 기준과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제 질문과 회의는 다분히 상식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저는 그 80만원을 이미 버린 돈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머지 그의 부탁도 들어주었지요. 친구는 아이디를 만들어야 한다 길래 저는 appendix 라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오, 참고문헌. 괜찮은데?’ 아시겠지만 의학 용어로는 맹장입니다.
저는 실제로 그 친구를 맹장 같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비공식 기네스 기록이지만,
대한민국 첫 번째 이메일 계정은 바로 이 appendix 입니다.
당시 전용선은 종합병원과 정부기관, 그리고 대기업에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메일 계정으로 동창회 소식지가 날아왔지요. 그리고 저는 신기해서 한번 읽어 보고, 다른 친구들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80명에게 동시에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병원 직원들에게 이메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가입하는지를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백수가 시작한 사업은 1년에 250만 명의 사용자를 유치했습니다.
그리고 1600억 원에 골드만삭스에 매각됩니다.
현재 이 친구는 포스코 건물이 있는 테헤란로에 2개의 빌딩을 가지고 있고, 4개의 벤처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만 저는 병원에서 죽도록 일을 하고 있고,
그 친구는 그런 회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그 차이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J.리프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의사니까 한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책입니다.
빈곤의 종말, 엔트로피, 수소 혁명, 등의 대단한 책들을 쓰는 과학철학자입니다.
그는 세상에 0.1%의 창의적 인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따르는 통찰력과 직관을 지닌 0.9%의 우수한 인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을 이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99%의 인간에 대해서는 잉여인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참 잔혹한 현실이지요?
저는 그 동안 99%의 인간이었고, 백수는 0.9%였고, 그 W가 바로 0.1%의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1780년대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이라는 것이 발생합니다.
이 태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방직기였지요. 하지만 당시 대 농장의 지주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선택을 했었어야만 했습니다. 현재의 사업을 접고, 공장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유지하고 농장을 꾸려갈 것인가.
여기서 바로 성공한 0.9%의 인간이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영국의 귀족 가문들의 문장을 보면 250개 가문의 1/3 정도는 양 머리나 양 뿔의 문양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그 이전에 양 목장을 꾸렸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1900년대로 가 봅시다.
1903년 헨리포드는 자동차를 개발합니다.
최초의 자동차라고는 했지만 그 누구도 이것이 성공한 사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산 단가가 기차보다 비쌌으니까요.
미국 유력지들은 포드를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당시 만평을 보면 포드가 자동차를 들고 벌서는 희화적인 만평이 있었습니다.
그는 투자자를 모으지 못했지요.
그런데 한 동네 건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네 유력한 갑부의 아들이었으나 그다지 품행이 방정하지는 못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는 기차는 100명을 태우지만, 자동차는 4명밖에 못 태운다는 일반적인 비판에 대해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동차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는 이 자동차라는 것이 무엇으로 가는지를 유심히 살펴 보았지요.
그리고는 주유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 포드 T형이 양산되었습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모델이지요.
그 동네 건달은 1940년대 미국 전체 주유소의 92%를 독점 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미국 정부 역사상 최초로 독과점 방지법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현재는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공정거래라는 어휘 조차 없었던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이 독과점 방지법이 한 개인을 견제하기 위한 법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건달이 바로 스탠더드 오일사를 만든 록펠러 입니다.
그리고 10년 뒤,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전시 중에는 통신수단이 매우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은 이러한 시스템의 낙후된 점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메사추세츠에서 음성을 전자신호로 인코딩과 디코딩의 과정을 거쳐 전송할 수 있다는 연구를 성공했지요. 그는 무전기를 만들고 군수 납품을 했습니다. 이 기업이 바로 모토로라지요.
10년 뒤, HP가 IC 트랜지스터를 발명합니다. 이 사람도 바로 0.1%입니다. 이후 등장하는 톰슨, 월풀, 필립스 등등 전자화 시대의 변혁을 이끈 이 들이 바로 이 부류의 인간들입니다.
또 10년 뒤에는 반도체를 개발합니다.
이렇게 큰 컴퓨터 애니악을 개인용으로 만들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등장했고, 이 아이디어는 곧 성공했지요? 이것이 바로 1980년대의 퍼스널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0년대는 IT와 모바일이 이 움직임을 이끌었습니다.
다시 말해 통계적, 역사적으로 볼 때, 10년마다 W가 나타나서 세상을 움직일 무언가를 제시하면 나머지 99%는
‘야, 세상 좋아졌어.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건데 말야.’하고 그 움직임을 따라가고 맙니다. 이게 바로 역사입니다. 무서운 얘기죠.
다시 병원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하루는 원장님께서 제게 핸드폰을 주셨습니다.
제가 일을 피하려고 삐삐를 안 받자, 제가 긴급하게 필요할 상황에 대비해서 그것을 직접 사주신 것이죠. 당시의 핸드폰은 가입비 240만원에 기계값만 200만원에 이르는, 지금으로 할 것 같으면 한대의 자동차 값, 가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루는 압구정동의 ‘폭스’라는 바에 가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항공사 여승무원들이 와서는 연락처들을 두고 가더군요. 아마도 저를 재벌 2세 쯤으로 착각했던 모양이에요.
어쨌든,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병원에서 받은 핸드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SEND를 빼고는 아무거나 눌러도 좋다고 하며 한창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놀라면서 전화기를 큰 눈으로 돌려가며
만져보고 있었지요. 저는 우쭐해져서 ‘나중에는 한 명씩 다 쓰지 않겠냐, 뭐’ 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내뱉은 말을 듣고는 벼락을 맞는 듯 했습니다. ‘데자뷰’
저는 총무과에 이걸 어디서 샀느냐 물었습니다..
당시 한국이동통신 지금의 SK텔레콤이 판매한다는 것을 알아 내고는 그 회사의 주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매달 월급으로 그 회사의 주식을 긁어 모으기 시작했지요. 98년 전후에는 명동 사채 시장이 형성되어서 한국통신 주식 4천원에 판매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대량구매는 할인까지 해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꾸준히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에 모두 팔았지요.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200배의 수익을 보았습니다. 결국, 이 소문은 여의도 증권가와 방송국까지 흘러들었고 9시 뉴스에 방송까지 되었습니다. 원치 않았던 타이틀이지만, 시골의사라는 직함도 그때에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0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W를 찾기 시작했지요. 제가 만약 찾지 못한다면 그냥 뒷걸음질 치다가
우연히 0.9%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 무언가 새로운 W가 있지 않을까 하고 고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 생활을 접었지요. 당시 저는 1일 진료 600여명으로 대한민국 개인 의사로는 3위를 기록하고 있던, 소위 잘나가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는 8개월 동안 떠났지요.
이 기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과학, 경제, 공학 등 전 분야의 소위 권위자들을 만나서 동향과 미래, 전망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종합해본 결과는 이렇습니다. 새로운 10년이 될 것이다.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너무 난해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너무 단순한 이야기지요.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하더군요. 지난 2000년 동안에는 기계 문명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 인간이 기계의 안녕을 위해 봉사하지 않았습니까?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며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사고 방식 자체의 문제점이기도 하지요.
사람이 산 정상을 정복하는 것을 두고 attack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과연 누가 무엇을 공격하는 거란 얘기인가요?
이제 새로운 화두는 기계 문명이 아닌,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바로 Well-being이지요. 자연은 상품이 되고, 상품은 사용후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이 쓰레기가 자연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비가역적 성질에 있지요.
이제 이후는 10년, 아니 그 이상의 긴 시간은 바로 인간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인문학적 성찰과 지식을 가지고 통찰과 통섭을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를 쓰는 동안 감각을 잃어 버렸습니다.
자신이 앉아 있는 동안 혹시 이중에 엉덩이의 느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말하는 순간부터 지각하기 시작했지요? 이게 바로 감각의 상실입니다.
안목과 영감으로 감각을 살리세요. 이것으로 저의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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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블록체인이 w라고 생각합니다.^^. 0.1는 안되더라도 0.9%되는날까지~~
저도 블록체인을 새로 다가오는 W라고 생각합니다.
0.9%의 안목을 가지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
대구는 아니고 대전이었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대전으로 수정했습니다 ㅎㅎ 어쩌다가 대구로 쓰게 되었을까요 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