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015년 1월에 느꼈던 공포 Charlie Hebdo et Je suis Charlie.

in #kr6 years ago

Je-suis-Charlie.png

#jesuischarlie


3년전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일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프랑스 시간 낮 12시쯤 친구들한테 많은 메세지가 왔는데 하나같이 ‘괜찮아?’ 라는 내용이였다.
프랑스에 도착 한지 얼마안되서 그런지 어머니한테 전화가 오기도 했고
아버지는 그냥 다시 돌아 오라고도 했다.

그때 난 영문도 모르고 괜찮다며 안부를 전하고 안심시켰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샤흘리 앱도라는 신문사가 테러를 당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테러라는 단어가 나는 너무 무서웠고
사실 믿기기 힘든 영상들이 유투브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친구 Fabio 에게 전화를 걸어 ‘ 나 괜찮은거지?’ 라고 물었고
‘괜찮아 제찬’ 이라는 답변을 재차 들은 후에야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수많은 사상자 들이 나왔고 프랑스 국민들은 충격에 빠진 상태였던 그때
'Je suis Charlie' 라는 문구가 프랑스국민에게 힘을 실어줬고
길거리 모든 가게에는 이 문구가 붙여졌으며 사람들은 이 문구를 가지고 길거리로 나왔다.

테러후, 첫 Charlie hebdo 발간은 불티나게 팔렸고, 사람들은 이 주간 신문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테러이후 첫 발간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그 다음 날 아침, 나는 사람들과 kiosque (신문 가판점)으로 향했다.
물론 내가 살던 두흐덩에는 kiosque 는 없었다.
그 대신 바로 집옆 마트에서 판매할거라는 친구의 소식을 듣고, 그다음날 아침 6시 바로 마트로 향했다.
내가 일등으로 도착 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줄을 서있었으며,
동네주민들끼리 수다를 떨며 오픈 시간 8시를 기다리고있었다.

8시 정각 셔터는 올라가고 정문에는 ‘ 샤흘리 엡도는 없다. 이미 다 팔렸다.’ 라는 종이가 붙어있었고
사람들은 한숨을 쉬며 괜찮아 괜찮아 를 연발하며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보고니 첫신문은 한정판 이라 번호가 쓰여있다했다.)

IMG_1380.JPG

친구가 겨우 구해서 보내줬던 신문.

Tout est pardonné ‘ 모두 용서한다’

한정판 이라는 말은 없어지고, 모든사람이 이 신문을 가질수 있도록 다시 신문을 발행하였다.
그리고 가슴속에 ' 펜은 총보다 강하다' 라는 마음이 강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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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라는게 참 어려운 일인데 그런 큰 일에도 용서한다고 말하는 게 대단합니다. 테러가 없었으면 좋겠어요ㅠ

프랑스에 오고 테러에 대한걸 근간접적으로 느끼니 정말 너무 무섭더라구요.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다른 부분에 공포랄까... 뭐 용서 하는거 참 어렵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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