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in #kr8 years ago
  •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공동체가 없습니다.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다 개인입니다. 개인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전체에 맞서 싸우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동체 바깥의 개인이 되어버렸습니다. 텔레비젼에도 뉴스에도 '나'를 다뤄주는 이야기가 없지요. 기업회장은 내가 아니고, 장애인은 내가 아니고, 노조의 활동가도 내가 아니고, 많은 경우 아이 아빠 엄마도 내가 아닙니다. '나'의 이야기, '내'가 투쟁해가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데, 기업회장, 장애인, 여성, 노조,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람들에게 이슈가 집중되지요. '나'는 혼자인데, 그 사람들은 최소한 무슨 무슨 단체라도 있고, 뉴스에 보면 지원금이나 대책이라도 고민하는 것 같으니까요.

한국의 많은 이들이 화가 나있고, 공동체의 타인들에게 짜증을 내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위도, 아래도 아닌 이들에게 세계가 그냥 혼자 싸워나가야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거든요. 내가 왜 아이들한테 잘해줘야 하나요. 내가 왜 외국인 노동자를 내가 왜 여성을 내가 왜...

다들 참 많이 화가 나 있습니다. 속상한 일이지요. 그래서 형평성을 찾습니다. 조금이라도 형평성이 깨지면 분노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언론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얼마나 영웅적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만나고,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을 부양하고, 던져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실존적 싸움이 얼마나 위대한지 언론은 너무 자주 잊습니다. 화가난 개인들에게 위로를 던집니다. 하지만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개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같이 사는게 중요하지요.

  •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어느정도의 형평성은 포기되는 게 선일수도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게 주어지는 가산점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단에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집단의 사람들이 내게 주어진 것보다 훨씬 적은 기회가 역사적으로 주어져왔을 겁니다.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기회나 상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받아들여버리면, 우리는 대기업을 포함한 자본가들이 나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그 정체성을 간직한채 사회의 하부로 떨어져내리도록 만들게 됩니다. 하렘이 생기고, 사회 전체가 불안전해집니다. 쓰레기가 되어서 주변부의 바깥으로까지 사람들이 밀려나면, 이들을 처리하기 위한 사회적인 비용이 더 듭니다.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나를 위안하기는 합니다만, 그 사람들을 끌어올려야 내 삶도 나아집니다.

  •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건희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 신경쓰는 편이 낫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싼 인건비로 내국인들의 인건비 상승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내국인들과 완전히 동일하게 대우하도록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또는 더 많은 비용을 쓸 수 밖에 없도록 하던지요. 1과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힘이 생긴 단결된 평범한 사람들만이 자의적으로 그어진 법의 선을 저쪽으로 밀어낼 수 있습니다.

  • 법은 자의적입니다.
    하늘에서 옳고 그름을 정해주면 참 좋겠습니다만, 그런건 없습니다. 대부분의 법은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자의적으로 결정됩니다. 우리 시대의 화두인 사형제도, 낙태, 동성혼등의 문제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합법인지, 무엇이 경제적으로 정의인지, 어디까지를 총수가 가져가야하고 어디까지를 노동자가 가져가야 하는지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정해진 답이 없으니 싸우는 거지요. 싸움이 핵심입니다. 임의적인 선을 긋고 그 선을 서로 상대방쪽으로 밀어내는 부단한 싸움이 세상입니다. 웬만하면 저는 저랑 더 가까운 쪽 사람들을 편들고 싶습니다. 기업주가 가져가는 몫을 저와 가까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가져오고 싶습니다. 그게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게 정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정의나 도덕은 관계 없습니다. 그것이 제게 유리하며, 또한 제가 살아가는 공동체 전체에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다름과 틀림이 다른' 것은 논쟁을 위해 존재합니다. 논쟁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요.
    틀린건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틀린겁니다.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벌을 받아야죠. 다른 건 논쟁이 가능합니다. 특히나 어떤 개인의 선택들이 집단 전체, 공동체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삼성 불매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틀린길은 아닐겁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실질적으로 제지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며, 더군다나 그저 '개인의 선택'에 해당하는 일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니까요. 그 행동이 공동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논쟁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다름과 틀림이 다르다는' 것의 핵심입니다. 어떤 의견을 다양성속에 품는 것이지요. 어떤 의견을 가진 사람을 직접적으로 위해하지 않지만, 그 의견에 대해서는 논쟁하는 것. 하지만,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동안 벌이는 모든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건 좋습니다만, 같이 살아가야지요.

  • 조금 더 어른답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여 일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가 간만에 보는 어른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쓰는지 여부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같이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는지, 아니면 임기응변으로 일을 끝내는지도 문제겠지요. 문통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데에 힘쓰고 있지요. 우리 세대도 조금 더 어른답게 사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카페에서 아이가 함부로 아무거나 만지게 놓아두는 미숙함이 슬픕니다. 누가 자신의 행동의 잘못을 지적했을때,한 템포 고민하기 보다는 공격적으로 나오게 되는 그 미숙함도 슬픕니다. 진짜로 단단한 사람들은 진짜로 문제가 있는지 고민할 여유가 있지요. 그런 여유가 없으니 공격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진짜 어른다운해법인지,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가 고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궁급합니다.

  • 만으로 5살짜리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 극히 공감합니다. 제 아이가 사는 사회가 서로에게 우호적이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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