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뭐하고 살지?>를 읽고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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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 이 책의 제목은 내가 제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수없이 많이 고민했었던 질문이고 제주로 이사온지 5년 차가 되는 여전히 되뇌고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자마자 홀리듯이 책을 펼쳐들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제주로 이주한 부부가 다른 사람들은 제주에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궁금증에 하나 둘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작된 책이다.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아마 다들 비슷한 이유로 제주로 이사를 왔고, 또 비슷한 고민들을 품고 있다. 육지에서 살 때는 아침 일찍 러시아워 지하철에 갇혀서 출근을 하고,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면서 퇴근하는 삶을 반복하다가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여행 온 제주에서 "아, 이 곳에서 살면 좋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사연은 이제 조금은 식상할 만 하지만 여전히 같은 이유로 제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육지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로 오게 되면 처음에는 푸르른 바다와 멋진 풍경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제주로 이사 온 모든 사람들은 "도대체 제주에서 뭘 하고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책의 저자인 부부는 남편은 IT 회사에 다녔던 경력을 살려서 제주에 위치한 IT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매거진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하고 또 월정리에 작은 카페도 열었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제주에 이사 오는 많은 사람들이 계획하는 일거리는 보통 카페, 게스트하우스, 귤농사 등이다. 그런데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는 이미 포화 상태이고 경쟁이 치열해서 이제는 아마추어가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리고 제주도를 대표하는 귤농사의 경우도 땅값은 오를 대로 올라서 귤밭을 구하기도 어렵고, 농사라는 분야가 초보자가 도전할 만큼 녹녹하지 않다.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면 제주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책 속에서는 제주에 이사 와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한 10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시골 마을에서 미용실을 창업한 로로 하우스, 숲 속의 행복한 기타 수리점 봉 기타, 제주도의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 라이킷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한 제주 이주민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두 제주에서 새롭게 창업한 내용들만 담겨 있어서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누구나 창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제주에서 뭐하고 살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독자들이 듣고 싶은 답은 "창업”이 아니라 "취업”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제주에서 뭐하고 살지?”라는 질문은 단순히 제주로 이사 온 사람들의 질문일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자라온 청년들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책이 제주에서의 취업과 제주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이야기들도 담겨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좋아해요.”

제주도에서 자신만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제주 시내에서 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 ‘라이킷’을 운영 중인 주희 씨도 말했다. 책을 좋아한다고.

작고 사랑스러운 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 라이킷 중에서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작은 규모의 창업을 하는 것이어서 인터뷰이들이 모두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뭐 하고 살까?"라는 질문을 계속 거듭하다 보면 점차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뭘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서울을 떠나 제주에 와서까지 옛날에 힘들어했던 일들과 반복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다가 발견한 일을 하게 되니 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 라이킷의 안주희 대표처럼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한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제주에서는 자기가 좋아서 책을 만들고, 좋아서 그림을 그리고, 좋아서 바다정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되니 덩달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매연 없고 차 소리 안 나는 조용한 곳에 살고 싶었어요. 사실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해서 돈은 많이 못 벌고 있지만 제 평생을 통틀어서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걱정이 없어요. 걱정이라고 해봐야 텃밭 농사가 잘될까, 하는 것?”

어쩐지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내 앞에서 행복하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어른을 나는 처음 보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지민 씨의 얼굴이 반짝거렸다.

숲 속의 행복한 기타 수리점, 봉기타 중에서

제주에서는 봉기타의 황지민 대표처럼 행복을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많다.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어른에 대한 묘사처럼 어른이 되면 행복보다는 집이 얼마나 큰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를 먼저 따져보는데. 제주에서는 행복을 우선하게 된다. 제주에 와서 행복을 우선하게 된 건지,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주도에 오게 되는 건지 아마 둘 다 일 듯 싶다.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 책은 제주도로 이사 오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제주로 이사 오게 되었는지 마음의 결심을 내리게 된 과정과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 고민하고 그 이후에 창업까지 이어지며 겪는 경험들을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제주도로 이주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쩌면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매뉴얼 같은 책이다. 만약 누군가 제주에 살고 있는 나에게 본인도 제주도 이사를 꿈꾸고 있다고 그런데 무슨 일을 하고 살지 고민이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이다.

“우선 제주도에 내려와서 몇 개월 정도는 살아보고, 직원으로도 일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아요. 제주도민들 성향도 자신과 맞는지 알아봐야 하고요. 제주에서의 생활을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내려와도 늦지 않죠. 대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식당 차려놨는데, 시장 보러 다녀오는 것만 두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그럼 골치 아파지는 거죠. 직접 장도 보는 등 연습을 해봐야 해요. 저는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면서 내 가게다 하는 마음으로 혼자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제주의 산과 바다를 그릇에 담아내는 비스트로, 올댓제주 중에서

이 책은 단순히 제주도의 낭만만 담고 있지 않다. 물론 인터뷰한 10명의 사례들이 모두 성공적이고 행복한 제주살이를 영위하고 있지만 올댓제주 김경근, 김태은 부부의 현실적인 조언처럼 제주도에 오기 전에 잠시라도 제주의 삶을 경험해보길 권유한다.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와 비교해서 제주의 상황은 또 많이 달라졌다. 르에스까르고처럼 특색 있는 빵집이 제주도 전역에 새롭게 생겼고, 제주 빵집 투어라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이 생기기도 했다. 거의 유일무이했던 제주 기념품점이었던 더아일랜더와 독립서점이었던 라이킷 이후로 똑같은 기념품을 판매하는 제주기념품 가게가 중요 여행지마다 자리를 잡았고, 제주도에 새로 생긴 서점이 이제는 무려 180여 개가 된다는 조사도 있다.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 책은 제주도 유입인구가 정체되는 현재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제주도의 삶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책 속의 성공사례를 기반으로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 담긴 제주 정착 성공사례를 정리하자면,

자신의 전문분야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살리거나 새로운 일에 접목했다. 1인 예약제 미용실을 운영하는 로로하우스를 보면 기존에 대형 미용실에 일했던 경험을 살려서 작은 미용실을 창업했다. 덕분에 육지에서 일하는 시간에 비해 덜 일하면서도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독립출판 전문서점 라이킷의 경우는 책을 좋아한다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서점을 창업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무리하지 않으면서 일한다. 점심시간에도 장사를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저녁 장사만 하거나 업종을 추가해서 숙박업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본인의 삶도 줄어들기에 무리하지 않는다.

베이커리 르에스까르고와 올댓제주, 파파도터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제주에 살고 계시고 육지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고 제주로 돌아온 케이스이다. 이렇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의 경우 더 잘 정착할 수 있다.

지금도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 고민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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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 산속에 집을 지을까. 주변에 별장을 하나 살까 둘러보다가...
일 저지르기 전에 먼저 살아보라는 말에
제주에서 한두달 전세 살기 알아보는 중입니다.
어떤가요?. 제주살이
전 암것두 안하고 그림그리고 목공하며 놀고 싶은데.....
여름더위는 버틸만 하신가요?

제주에서 그림그리는 분들 많이 살고 계시죠! :)
여름더위는 햇살이 많이 뜨겁지만 제주도는 나무가 많아서 그늘도 많고 시원하기도 해요.
그런데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랍니다. 바닷가는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고요. 산쪽에 가까이 올라가면 여름에도 시원하지만 대신 비가 많이 오고요. 그래서 산과 바다 중간지대에 마을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요.

여름더위는 서울보다 제주도가 더 버틸만 한 것 같아요. :)

전 이곳에서도 뭐먹고살지를 고민합니다.
노말보다 못하게 살고있는게 눈물이 ㅠ_ ㅠ

뭐먹고 살지는 어디서 살건 동일한 고민같아요. ㅠㅠ 스팀잇으로 먹고 사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마이님!

저도 그랬으면 좋겟지만

점점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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