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반칙은 통쾌했다 - '반칙왕'

in #kr6 years ago (edited)

영혼이 없는 삶은 무기력하다.
단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조직의 부품이 되어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은 지쳐있다. 이들의 삶에 신바람 날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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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은행원 대호(송강호 분)의 삶도 그랬다. 오늘도 그는 개미굴로 떼지어 몰려드는 일개미처럼 출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오늘도 지각이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 지점 안에서는 오늘따라 냉기가 흐른다. 대호는 실적을 놓고 일장연설을 하던 부지점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자리에 앉는다. 직원들은 이런 장면을 워낙 많이 봐온터라 시큰둥한 반응이다. 대호도 이미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부지점장의 무자비한 헤드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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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뭔가 쎄한 기운이 느껴진다. 맹수가 먹잇감을 덮치기 전.. 그 고요함과 적막함이 내뿜는 서늘한 기운이 그의 목덜미에 전달된 바로 그 순간 숨어있던 부지점장의 헤드락 기술이 들어온다. 오늘도 대호는 그의 마수에 어김없이 걸려들었다.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그에게 부지점장은 훈계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너 세상이 아주 만만해 보이지?"

이 장면은 코믹하게 묘사됐지만 대호의 억눌리고 무기력한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먹고사니즘에 갇혀버린 일상.. 가슴 설레는 꿈도, 사랑도 없는 그 그로테스크한 회색빛 시간들을 견디고 또 견디는 그의 삶 역시 세상사에 닳고닳은 부지점장의 굵은 팔뚝 안에서 조임을 당하는 그의 모가지처럼 애처로웠다.

퇴근 길 그의 발걸음은 무겁다. 매서운 바람이 도시의 밤거리를 사정없이 훑고 지나가던 그 밤에 우연히 본 울트라타이거 마스크의 사진이 그의 마음 속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만든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찾아간 체육관에서 그는 장관장과 그의 딸 민영(장진영 분)을 만난다. 그도 몰랐을 것이다. 이 것이 그의 삶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던 일생일대의 도전! 바로 그 서막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초기작품이다. 그는 이후 여러 흥행작을 내놨지만 나는 그의 작품 중 바로 이 영화 '반칙왕'을 가장 좋아한다. 이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짠한 그 느낌은 내 가슴 속에 진한 여운이 되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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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가 반칙왕이 되어 사각의 링에서 보여주는 묘기에서는 억눌려 있던 그의 에너지가 분출한다. 그가 똥꼬를 찌르고 고무줄을 튕기며 상대편을 농락할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가 숨겨놨던 포크를 휘두르는 행위는 분명 유치한 반칙인데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잊혀진 명작이다. 이 영화에는 사람들의 내면 그 어딘가에 억눌린 에너지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오래된 영화지만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당신의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리즈 시절 풋풋했던 장진영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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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감사합니다..^^

👍👍👍꾸욱

감사합니다..^^

채널 돌리다 몇 컷 보긴 했는데 장진영이 나왔었네요.
다음에 제대로 봐야겠어요.^^

한 번 보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장진영 좋아하는 배우인데 ~ㅎ

지금 봐도 완성도 면에서 손색이 없는 영화예요.

하아. 이 영화 명작이죠. 김지운 감독에게 입문하게 된 바로 그 영화. 텅 빈 동네 극장에서 앞 자리에 발 올리고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ㅎㅎ

누가 그러더군요.
한국영화의 숨은 클래식이라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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