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4

in #kr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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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묘지에서 저멀리 평야가 시원하게 보였다. 할아버지께서 자리가 좋아서 산을 사셨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치 좋은 유택을 선호하는가 보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삶에서의 아쉬움을 저쪽 세상에서 풀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조금은 줄어 드는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와서 주변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장례식의 마지막은 문상객들에게 하는 식사대접이다. 거기에서 숙모들이 나보고 아버지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며 세상에 씨도둑은 못하는 법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3일간의 강행군에 퍼졌다. 다들 제방으로 가더니 잠을 청한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며칠 있다가 자그마한 오석에 아버지 이름을 파서 산소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집에 갔더니 아버지 방이 그대로이다. 아버지 냄세가 났다. 이제 주인없는 방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치울지 엄두가 나지 않으셨나 보다. 먼저 아버지 옷부터 치웠다. 아버지는 멋장이셨다. 때가되면 양복한벌씩 맞춰서 입으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가난한 살림에 때마다 옷한벌씩 하는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게다. 그러나 어쩌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것은 포기할 수 없었으니. 어머니의 불만 때문인지 난 옷욕심이 없다. 철지나고 유행지난 옷도 잘 입고 다닌다. 아내는 그런 내가 불만이다. 옷사는 것이 쓸데 없는 낭비로 여겨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옷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 많은 넥타이들. 그러나 제대로 값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알록 달록해서 보기에 좋은 것들이었다. 아버지 생전에 좋은 넥타이 하나 사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제대로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셔서 인지 자식들에게 이런거 저런거 한번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셨다. 그저 몰래 뒷구멍으로 자잘한 사고만 치셨을 0 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너희들을 얼마나 겁내는지 아니? 하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사고뭉치였던 아버지도 나와 내동생 눈치를 보신다는 것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자잘한 사고만 쳤던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젊을 때는 어머니 몰래 집도 팔아서 우리를 거리로 나가 앉도록도 하셨는데 말이다.

철지난 옷을 하나씩 싸서 아파트 앞에 있는 옷수거함에 넣어 놓았다. 예전 같으면 이불과 옷 같은 것을 태웠지만 어디 도시에서는 그럴 수가 있겠는가. 옷을 태우는 것은 저승가서 입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옷도 이불도 제대로 태우지 못했으니 아버지는 저승가서 단벌 신사 신세를 못면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서 웃었다. 아버지 옷중에서 입을 만한 것은 따로 챙겨서 모았다. 양복 한벌 콤비하나, 외투 2개 정도였다. 어머니는 그거는 뭐하러 하는 눈치셨다. 난 그냥 그냥 입을만한 건데 버리기 아까워서요 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게 너한테 맞겠니 하셨다. 어버지는 나보다 덩치가 크셨다. 젊을 때에는 장사라는 소리도 들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에는 그 강건함을 모두 버리고 가셨다. 아마도 내가 그냥 아쉬움에 아버지 물건을 하나라도 간수하려 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아셨을 것이다. 잠시 어머니 눈에 보이는 수없이 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마치 영원의 시간을 추억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선 그래 그냥 입어도 되지 뭐 라고 하셨다. 옷장을 정리하니 먼지가 많았다.

옷장 구석구석 무슨 물건들이 그렇게 많은지. 하루 종일 청소하고 정리를 했다. 아버지는 노점상들이 파는 물건을 자주 사오셨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타박을 하셨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그거 다 쓸만하지 뭐 하셨다. 어머니는 툭 한마디 하셨다. "그거 봐라 쓰지도 않을 거를 그렇게 많이 사모았다 너희 아버지는". 난 웃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사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허리도 구부정한 노인이 노점상을 기웃거리며 무엇인가를 사는 모습이 마치 내가 어릴때 길가에서 뭐 사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책상에선 그렇게 길가에서 산 제례와 관련한 책자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아버지는 말년에 제사 지내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셨다. 초와 향을 사시고 제기도 새로 장만하셨다. 이상하게 어머니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말씀 하시지 않았다. 책상 밑에 한지가 한뭉텅이 있었다. 무언가 하고 펼쳐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난 꺽꺽하고 울었다. 커다란 종이에 제사 때 쓰는 지방이 잔뜩 씌여져 있었다. 아버지는 제사지낼 때 내가 지방을 제대로 쓰지 못할까봐 미리 써 놓으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신지가 벌써 3년은 가까이 되었다. 3년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써 놓은 지방을 찾았던 것이다. 그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게 된 것은 욕창 때문이었다. 허리 수술이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아버지는 욕창에 걸렸다. 우리는 아버지가 욕창에 걸린 것도 잘 몰랐다. 제대로 씻으려 하지도 않으셨고 그냥 괜찮다고만 했다. 집에 가서도 누워계시는 아버지에게 저 왔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하루는 마구 급하게 전화를 하셨다. 가서 보니 욕창이 심했던 것이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한사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달래고 달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아버지는 그날 밤에 지방을 쓰신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도 이번에 병원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리라.

그런 아버지에게 난 "아버지 병원에가서 빨리 치료받고 돌아오시면 되지요"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집을 떠나셨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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