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3
아버지의 유산 3
아버지를 산에 묻고 내려왔다. 아버지가 유년을 보낸 곳.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묻혀있는 곳. 할머니 무덤을 보았다. 난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보살펴 주셨는가는 주변 친척들이 증언하고 있다. 할머니 옆이니까 아버지도 좋아하실 것이다. 돌아가셔서라도 마음이 편하셨으면 좋겠다. 삼일간의 장례기간 동안 아들 놈이 진중하게 옆에 붙어서 불평하나 없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마냥 어린아이인가 생각했는데 벌써 다 컸다. 어머니는 장례식에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좋으셨던 모양이다. 대소가에 얼굴이 선다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사람들은 사촌과 6촌이었다. 피붙이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피붙이를 찾으셨나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음부터 매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큰집에 어머니 혼자 계신 것이 영 마음 놓이지 않았다. 아버지 생전에도 어머니는 혼자 집에 계셨는데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 아무것도 못하시던 아버지였는데 왜 그 때는 어머니가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가 그래도 그늘 역할을 하셨나 보다. 며칠을 보내고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아버지 물건을 어찌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흔적이 집안 구석 구석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유독 지하철이나 버스간에서 물건을 잘 사셨다. 사시고는 쓰지도 않고 그냥 여기저기 내버려 두셨다. 필요없는 물건부터 하나씩 하나씩 치웠다. 장농을 열었다. 아버지의 오래된 양복이 나왔다. 시절이 지난 양복. 그리고 넥타이. 그렇다. 불과 몇해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해 바뀌면 양복하나씩 장만해서 시내에 나가는 멋쟁이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셨지만 아버지는 꾸며입는 것을 좋아 하셨다. 오래된 양복을 보니 아버지의 죽음이 안스러웠다. 속옷이며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사서 버렸다.
예전에는 돌아가신 분들 옷을 태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아마도 옛날에는 그렇게 해서 소독을 했었나 모르겠다. 이불이며 이런 것들을 모두 싸서 모두 버렸다. 그중에서 쓸만한 것은 몇개 남겼다. 아버지는 나보다 덩치가 크셨다. 굳이 내가 입을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버리기가 뭐했다. 오래된 옷은 모르겠는데 그래도 새옷은 마치 아버지의 냄세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콤비와 외투를 따로 싸놓았다. 어머니가 "어쩌려구?" 하셨다. 난 "제가 입지요 뭐"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그거 너한테 맞겠냐?" 하시고는 더 이상 아무말씀 하지 않으셨다. 평상시 어머니의 성품 같으면 그냥 치우라고 할 것 같았는데 이상했다. 아마 어머니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평생 속만 썩이던 아버지옆에서 어머니는 인생을 보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불쌍하게도 생각하셨고 가엽게도 생각하셨다. 그리고 그만큼 미움도 컸다. 미움이란 것도 결국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 서로 뒤섞이는 것이라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서 알았다. 어머니는 나와 내 동생을 위해서 미움을 불쌍함으로 바꾸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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