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2

in #kr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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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꺼풀은 파르르 떨렸다. 오랫동안의 투병생활로 아버지는 뼈와 살 밖에 남지 않았다. 피골이 상접한다는 뜻이 이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눈이 깊었던 아버지의 눈은 더욱 깊이 파여있었다. 아버지의 정신은 강고한 육신의 창살에 갖혀 있었다.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지막 모든 힘을 다 쏟았다.

아버지 상태가 나빠지자 어떤 간호사가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강권한다. 그러지 않은 우리를 세상에 없는 불효자라고 하는 말투였다. 서글펐다. 그리고 화가 났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간호사는 아버지를 큰병원에 보내면 뭔가 이익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지나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이들이 내 아버지의 죽음 마저도 장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불쾌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의사친구들 이야기를 듣자니 아버지의 뇌를 둘러싸고 있는 실핏줄들이 이미 많이 손상이 되어 있는 단계였다. 아버지는 천천히 돌아가시고 계셨다.

난 아버지가 편하게 돌아가시기를 바랬다. 생전에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아마도 예전같았으면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두달가까이 누워계시는 동안 아버지 옆에 있던 어르신 두어분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여기서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말은 잘 못하셨고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셨지만 거기에 있는게 싫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절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을 편하게 조용하게 돌아가시게 하고 싶었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아버지 조금만 힘내시고 병실로 돌아가셔야지요"하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좀 더 편하게 모시지 못하는 내처지도 한심하게 여겨졌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도 똑같다. 아마 나도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와 같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 하리라. 그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까.

두어달 동안 아버지는 점점 더 많이 주무셨고 의사들은 그것이 혼수상태라고 했다. 이렇게 편하게 주무신다면 혼수상태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잠시 코골이도 하셨다. 입으로 호스를 넣어 영양분을 공급했다.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훨씬 빨리 돌아가셨으리라. 시간이 날때면 병원에 들렀다. 어머니는 그 조그맣고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매일 아침 저녁 병원에 들러서 아버지 상태를 보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혼수상태가 우리에게 일상이라고 여겨질 때 쯤 어머니께서 연락이 왔다. 상태가 안좋다는 것이다. 멀리 지방에 있었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동생이 어머니와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났다. 새벽에 전화가 왔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처가 울먹이면서 "아버님 돌아가셨어요"라고 한다. 난 아무말 할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난 내가 눈물을 흘리는지도 몰랐다. 사무실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그대로 누워계셨다. 마지막에 의식이 돌아오셨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그냥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한 많은 삶이 그렇게 끝났다. 그래도 그전날 어머니와 동생이 병원에 들렀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새벽에 어머니와 동생이 도착했을 때에도 이미 아무 의식이 없으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얼굴은 백짓장 같았다. 80년을 훌쩍 넘게 그 얼굴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이다. 얼굴을 쓰다듬어 드렸다. 병원에 계실때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드리면 그렇게 좋아했다. 마치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좋아 하는 아이같이. 장례식장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저세상에서 아이들 잘 보살펴 달라고 말씀하셨다. 아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서 아버지를 그렇게 보살피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차디찬 영안실에 누워계신 아버지. 난 편히 가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어머니 처럼 손주들 잘 보살펴주시라고 기도했다. 그동안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것에 대한 후회와 회한을 용서해달라고 했다.

내친구 아버님 생각이 났다. 20년도 훨씬전에 내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의사였던 그 친구는 아버지 산소에 나와 같이 가자고 했다. 이장을 한다고. 난 따라 나섰다. 그 친구 아버님은 한국전쟁때 경찰이었는데 인민군에게 총을 맞아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 평생을 술로 사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때 그 친구가 아버지는 살아 계신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평생을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남들은 개망나니라고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면서 말이다.

아 이제 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아버지는 머리가 좋으셨고 예술적인 재능도 뛰어 나셨다. 어머니는 간혹 너희 아버지가 세상을 잘못 만나서 저런다고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편안했다. 이상하게 살짝 향기도 나는 것 같았다. 영안실에서 뭔지모를 좋은 냄세를 느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한줌 재로 변했다. 유해를 모시고 고향으로 갔다. 고향 할아버지 무릎밑에다 모셨다. 구멍을 파고 유해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허연 가루가 되어 있었고 그 위해 흙을 덮었다.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느꼈다. 내평생 그렇게 울어본적이 없었다. 숙모가 울고 싶을 만큼 울어라 하셨다. 내 울음소리를 아버지가 들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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