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상 그리고 기억의 출발점
아버지의 책상은 신기한 세상이었다. 낮은 앉은뱅이 책상에는 별의 별 물건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저녁에 일을 마치고 오시면 책상에 앉아서 이런 저런 책을 보기도 하시고 노트에 뭔가를 쓰기도 하셨다. 나는 호기심이 많았는지 아버지 옆에서 이게 뭐냐 저게뭐냐고 꼬치꼬치 물으면서 간섭을 했다.
아버지는 "우리 맏상주 우리 맏상주" 하면서 이거는 무어다 저것은 무어다 설명을 해주셨다.
낡은 책상위에는 이런 저런 숫자가 복잡하게 쓰여진 노트도 있었고 영수증 같은 것도 있었다. 책상 한켠에는 건물 청사진도 있었다.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항상 청사진을 들고 다니셨다. 난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시고 나면 신중한 표정으로 청사진을 내려다 보기도 했다. 아버지가 하시던 것처럼. 그럴 때면 어머니가 한쪽에서 바느질을 하시면서 날 웃으며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때 어머니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청사진 놀이가 지겨우면 책상에 앉아 아무 종이에나 글씨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어릴적 기억은 정말 오래간다. 때로는 평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때부터 난 건물의 청사진이 좋았다. 파란 바탕에 하얀 색으로 그려진 그림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지도처럼 여져졌다. 어쩌면 난 지금의 내가 아닌 건축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의 책상 서랍을 여는 것은 뭔가 특별한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각종 영수증 조각과 연필, 만년필과 볼펜, 펜 그리고 잉크가 있었다. 3각자와 각도기도 있었다. 난 그것들을 가지고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혼자서도 지루한지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책상서랍에는 오래된 책도 있었다. 족보책이었다. 아버지는 너는 알아야 한다며 족보 책을 열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온통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뭐가 뭔지 몰랐지만 아버지는 너의 본은 어디고 무슨 파고 몇대손이다 하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앵무새처럼 외워야 했다. 그 어릴적 기억은 평생 나를 따라 다닌다. 나는 나 스스로를 무슨 씨 문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나혼자만의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시조할아버지는 무엇을 하셨고 어떻게 사셨고 하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금 내가 아들에게 하듯이 말이다. 아들은 싫은 척 하지만 그래도 관심은 있는지 듣고는 있다.
내가 지금처럼 답답하게 살고 있는 것도 아마 어릴적 아버지의 족보에 이름이 적혀 있는 알지도 못하는 나의 조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 오래된 족보책에서 1000전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이 어떤 벼슬을 살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버지는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이름하여 양반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굴레였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옥죄는 형틀이 되기도 했다. 지금 세상에 그런 것이 다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의지만으로 살 수 없는 법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간섭을 받고 간섭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쩔수 없이 알 수 없는 그물에 갖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강고하셨다. 조선조의 명문 양반 출신이면 뭐하나? 망해서 삯바느질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주제에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결코 백정집 아이와 노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백정은 백정의 틀을 벗어 날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상하게 그 돈많고 대학까지 나온 육소간 집 아저씨가 돈없고 가난한 그리고 말라서 비틀어진 우리 어머니 앞에서 눈을 깔고 고분고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거만한 어머니도 시장통에서 하루하루 가난하게 살고 있는 어떤 아저씨에게는 깍듯하게 대했다. 그 아저씨는 간질을 앓고 있었다. 간혹 길가에서 거품을 흘리며 넘어져 있는 아저씨를 보면 난 무서웠다. 그집 아들은 그럴때면 큰 소리로 울었다. 동네 사람들이 지랄병이라고 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 아저씨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양반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가난에 찌들어 한끼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는 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양반과 상놈은 근본이 다르다고 했다. 그 아저씨가 비록 가난하고 간질로 고통받고 있지만 뼈대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 집아이에게 함부로하지않고 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저씨에게는 뭔지 모르게 기품이 있는 것 같았다.
족보옆에 가첩이 있었다. 족보를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것으로 주머니에 찰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마 100년은 전에 만들어진 것 같다. 아버지는 마치 보물처럼 그것을 보관하셨다.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다. 좀이 쓸어서 상자에 좀약과 같이 넣어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내아들이 그것을 물려 받게 될 것이다. 군대에 갔다오고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배가 좀 나온 중년이 되면 물려 줄 것이다. 어머니는 어디를 가시더라도 가첩을 걱정하셨다. 그것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우리가 양반가 출신이라는 것은 이제 그거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첩의 마지막에 내이름을 만년필로 써 놓으셨다. 아뿔사 그런데 지금보니 그것이 골동품의 가치를 떨어 뜨리고 말았다. 멋있게 잘 써놓은 붓글씨 마지막에 만년필이라니. 그러나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핏줄의 이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아버지의 책상서랍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재미있게 놀았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그 재미있었던 놀이개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릴적 어름풋하게 생각나는 재미있었던 기억의 편린들만 남아 있다.
과거가 그리워지면 나이를 많이 먹은 증거라고 한다. 나는 자주 과거가 생각난다. 아마 나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나 보다. 그때 그 시절 이런저런 생각들이 생각난다. 난 내 과거의 기억속을 즐겨 여행한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기억 이런 기억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앉음뱅이 책상을 문득 떠 올린 것은 내가 과거를 회상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아버지를 회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돌아가시고 나서 그리워 하지요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그 그리움은 사랑이 되고
나를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든다
비로소 인간에서 사람이 되는 과정인것 같습니다
안마 해드리러 가야겠네요.. ㅠㅠ
nice post @slowwalker
Thank you @silvia
Where do you live?
Where do your food come from?
Hello my Friend .... Really nice to remember the past times ... and great to remember the beautiful times with your father .... And sometimes too many of us sitting and holding paper sometimes up to a lot of memories
Exactly r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