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9. 예전처럼 당하진 않을 것이다

in #kr6 years ago (edited)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
주변에 있는 대부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둬?"
"버텨. 무조건 버텨!"
"넌 의지가 너무 약해."
"뭐가 그렇게 맨날 불만이야?"
"너, 너무 쉽게 그만두는 거 아냐?"



가까운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는 심정이었다.
당장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데도
버텨야지, 버텨야지 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게다가 내가 다녔던 직장은
많은 이들이 입사를 꿈꾸는 곳.
나도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1년여 간
어렵게 공부해 들어온 곳이었다.
쉽게 놓기 힘든 자리였다.

그러나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고압적인 선후배 관계, 상명하복식 위계 질서는
나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에 더해, 폭력에 가까운 폭언들이 있었고
상상을 넘는 인격적 무시가 있었다.

내가 업무 적응에 실패한 탓도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전 경력과 무관한 곳에서,
신입도 경력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낯선 업무를 시작했다.
제로 그라운드에서 일하기란 풀 수 없는 난제처럼 어려웠다.
시키는 일을 제때 처리하기 힘들었고, 버벅댔다.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실수를 이해하는 동료는 없었다.
질책 - 실수 - 질책 - 실수 - 질책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나 막내일 땐 그렇게 안 했다고, 다 네 잘못이라고.
동료와 선배의 질책에 끊임없이 죄송하다고 했다.
고개를 숙일수록 질책은 더 심한 폭언이 되고 무시가 됐다.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폭언과 무시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일주일을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던 어느 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었다.
한 순간도 이곳에 못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만류도 나 자신의 아쉬움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퇴사를 했다.

퇴사 후 한 동안 힘든 시간을 겪었다.
내가 부적응자인 것만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내가 약해서
의지도 정신력도 나약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남들 다 견디는 조직 문화나 고강도의 업무를
못 견디는, 유별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약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책하진 않기로 했다.

이제껏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조직 문화
무조건 견디야 성공한다고 믿는 이상한 신화,
잘못된 것은 그것이지 내가 아니라고,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믿기로 했다.

새 회사로 옮긴 지도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첫 회사의 경력을 살려 동종 업계로 복귀했다)
이 회사에서는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도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내 위계 질서나 문화는 존재한다.
지금의 나는 그에 고분고분 순종하진 않으려 한다.

내가 해야 할 일, 회사와 계약을 맺은 근로자로서
약속한 업무들에 대해서는 성실히 이행하겠지만
그 외의 것들, 불합리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할 것이다. 거부 의사를 밝힐 것이다.
물론 쉽게 되지는 않는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처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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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시란 말 밖에 해드릴 말이 없네요...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서 격한 글을... 감사합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셨군요!ㅎ 스팀잇에 오신것 환영하고 자주 뵐께요ㅎㅎ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 ㅋ

아무튼 화이팅하시라는 말 꼭 전하고 싶네요!

그래도 요즘엔 예전보단 나아요 ㅎ 감사해요

퇴사를 많이 해봐서 그 마음 압니다 ㅠㅠ

ㅠㅠ 퇴사 피플이셨군요

잘 하셨어요. 자책하지 않기로 마음먹으신거!
마음의 관성이란 생각보다 강해서. 다부지게 마음먹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또 화살을 겨누더라고요.

많은부분 공감해요.

그래서 저는, 결국 프리랜서 ㅎㅎ^_^);;

자책하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정말로요. 저도 결국 프리렌서... 를 해보려다 실패하고 현재 다시 회사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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