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5일 토요일 <김장>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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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아 집에 내려갔더니 조카가 일기장 하나를 불쑥 건넵니다. 97년에 제가 썼던 일기였네요. 한참을 한 장씩 들춰보다 마음에 드는 걸로 몇 장 찍었습니다.

김장을 했던 12월 5일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김치를 잘 먹는 편은 아니었어요. 편식도 했고 그 덕에 덩치가 늘 작았거든요. 그런데 유독 김장하는 날 먹는 김치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김치를 넙죽넙죽 잘 받아먹으니 어머니도 재밌으셨는지 김장날만 되면 저를 옆에 앉혀놓고 맛을 보게 하셨어요. 수육같은 게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쌩 김치를 연달아 말이죠.

어떤 날은 간이 좀 세게 된, 짠 맛이었는지 매운 맛이었는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간이 너무 센 김치를 주시는 대로 받아 먹었더니 혀에 불이 났어요. 어머니는 "물 씼제?" 라고 웃으시며 물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 물로 겨우 뜨거운 혀를 달래면서도 좋다고 또 김치를 주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물 씨다"라는 말은 "짜고 매운 걸 너무 많이 먹어서 물을 계속 마시고 싶어진 상태"를 나타내는 경상도 표현이에요.

1997년 12월 5일날도 김장 김치가 잘 됐었나봅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일기에다 저렇게 썼을까요? 이제는 생 김치, 익은 김치 가리지 않고 먹게 됐지만 그 때 먹었던 김장김치 맛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 입 안에 침이 돌아요.

그러고보니 "나 같은 애 먹이려고 매일 김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턴진 모르지만 익은 김치를 더 잘 먹게 됐거든요. 신김치, 묵은지도 물론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애가 이제 애가 아니고, 그 애가 쓴 일기장을 읽는 어른만 남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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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이때 아이가 맛있다고 할 정도라니
얼마나 맛있는지 저도 먹어보고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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