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in #kr4 years ago (edited)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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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편식이 심한 편이다. 무슨 장르를 골라 듣는 그런 경지가 아니다. 클래식에서 대중가요까지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으면 그걸 주구리장창 기억하고 되새기고 주워섬길 뿐이다. 다시 말하면 청소년 시절 어느 가수라도 그의 ‘몇 집’을 사 본 적이 없다. 그저 귀에 꽂히는 멜로디를 더듬어 길보드’ 리어카에서 해적판으로 팔던 ‘베스트 모음’집을 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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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아무개의 몇 번 교향곡 같은 것 깡그리 모른다. 하다못해 교향곡 1 2 3 4 악장을 죽 들어 본 적도 없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은 환희의 송가 나오는 4악장만, 운명교향곡은 빠바바 빰 1악장만 듣고 끝낸다. 그래서 음악을 모르는 놈이라고 힐난도 듣지만 어쩌랴. 분위기에 맞는 사연이 있거나 멜로디가 그날 따라 와서 박히지 않는 한 내 노래가 아니고 내 음악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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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차를 바꾸고 좋았던 것은 블루투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테이프와 CD만 있었다.) 그나마 살아오면서 ‘귀에 꽂혔던’ 음악과 노래들을 모을 수 있게 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나 가끔 아내와 커피 마시면서 요긴하게 써먹었다. “어떻게 이런 노래들을 다 모아 놨어. 추억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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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꽂혔던 노래들은 대개 내가 뭐에 홀린 듯 수백번을 들었거나 가사를 노트에 적어 놓고 외우고 목구멍에서 설탕냄새 올라오도록 부른 노래들이다. 그래서 가사가 자동 재생되고 그 노래를 배울 때, 들을 때, 인상 깊었을 대의 기억들이 눈앞에서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 해바라기의 <지금은 헤어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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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이 노래에 완전히 꽂혔었다. 고딩 주제에 헤어질 여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 애틋한 첫사랑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하다못해 헤어진 것으로 가정할 사람도 없었지만 그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처연함에 나름 반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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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그저 뒷모습이 보였을 뿐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아무런 약속은 없어도 서로가 기다려지겠지요./행여 소식이 들려올까 마음이 묶이겠지요./ 어쩌면 영원히 못 만날까 한번쯤 절망도 하겠지만/ 화초를 키우듯 설레이며 그날을 기다리겠죠./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모든 것 그대로 간직해둬요/ 다시 우리가 만나는 날엔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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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학습 끝나고 돌아오면서 노다지 이 노래를 흥얼거렸고 인적 드문 골목길이면 좀 소리를 높여서 가사를 씹어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는 형 만나면 “문디 지랄한다.” 소리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뭐 어쩌라고 한 며칠 그러다 말겠지.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 동네 골목길 평상에 잠시 앉았다가 이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갑자기 동네 형 하나가 말을 걸었다.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어디 공장에 나간다던.
“그 노래 함 제대로 불러 볼래?”
“노래 잘 못하는데 와요.”
“못하는 거는 알고 가사가 좋아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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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이것도 ‘초청’ 가수 아니겠는가. 나름 목청을 가다듬고 분위기도 있는 대로 잡아가면서 가사를 또박또박 발음해 가며 불러 주었다. 기타를 뜯었으면 오죽 좋았겠냐만 기타도 없었거니와 있어도 C코드도 모를 때였다. 그 형은 노래를 듣더니 가사까지 적어 달라고 했다. 주섬주섬 샤프 꺼내서 적어 주면서 물었다. “아니 뭐 애인이랑 어떻게 됐어요? 군대 갔다 와서도 여자가 고무신 안바꿔 신었다고 형네 엄마가 자랑하드마. ”
“어데. 가는 잘 있고.”
“근데 와 이 노래를 그래..... 부를라 캅니까.”

동네 형은 담배 한 대를 빼물더니 군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방 몇 사단에 근무했고 고생을 얼마나 했고 무슨 훈련을 했고 하는 남자들 18번을 한참 엮은 뒤에야 본론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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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밑에 쫄다구가 하나 들어왔어. 첨 들어와서 호구조사 시키니까 아 아버지 어머니가 없다네. 고아라네? 근데 니 군대를 와 왔노 하니 호적상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기야. 근데 어째 버려져서 고아원에서 컸는데 주소지는 불명이고 연락도 당연히 안되고. 어찌됐던 사망 신고가 안돼 있었다 카대. 고아는 고안데 고아가 아인기라. 그래서 군대를 왔다 카더라고. 가족은 혼인신고 안한 ‘동생’이 있다카대. 마누라면 마누라고 애인이면 애인이지 뭔 동생이고 카이 고아원에서 같이 커서 나온 딸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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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슥이 참 밝았어. 뚜드리 맞고 소대 분위기 개판돼도 글마가 몇 마디 하면 다 배꼽 잡고 웃었거덩. 군 생활 열심히 하고. 언젠가 그 동생이라 카는 아가 면회를 왔더라고. 마침 우리도 외출 껀수가 있어서 같이 만나 놀았는데 참..... 이쁘더라고. 생긴 게 아니고 사는 게. 둘이 참박복한 애들끼리 만나서 이쁘게 산다 싶더라고. 제대하자마자 결혼할 거라고 제대하는 날이 결혼 기념일이에요 하는데 배꼽 잡았지. 내가 막 그랬다. ‘제대하는 날이 올 거 같나 빠져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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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갑자기 말이 끊겼다. 다시 말을 잇는 동네 형의 목소리는 약간 습기에 차 있었다. “씨바. 내가 그 말은 한 게 참 후회되는 게..... 내가 제대하기 두어 달 전에 글마가 타고 가던 60트럭이 벼랑으로 굴러 버렸어. 다른 애들은 다치고 말았는데 아 글마는 고마 죽어버린 거야. 목이 부러져서. 아.... 병원으로 옮기는데 벌써 죽은 거 알겠더라. 장례라고 뭐 올 사람이 있나. 그 딸아하고 친구들 몇 명 왔는데...... 말년 병장이라고 내하고 두어 놈이 화장터까지 따라갔지. 근데 그 딸아가 혼잣말로 그러는 거야. 관 보면서. ”오빠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잘 있어.“ 그때까지 인상만 쓰고 있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고마 눈물 콧물 흘리면서 내가 울어 버렸다. 서럽게. 지금도 쟁쟁하다. 그 서울말씨. 오빠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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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흥얼거리는 그 노래 들으니 다시 그 서울말씨가 막 쟁쟁거려서 함 들어보자 캤다. 제목이 뭐라고?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딱 그 딸아가 부르면 좋을 노래네. 그 아가씨가 이 노래 들으면 많이 울겠다. 지금 내가 눈물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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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에 가서 나는 길보드에서 샀던 ‘해바라기 골든 베스트’를 카세트 테이프에 듣고 또 들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나랑 마주칠 일도 없는 여자 하나가 이 노래를 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노래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무망한 기원으로. 그 ‘딸아’는 이풍진 세상에서 또 좋은 사람 만나 살아갔겠지만 그들이 언제고 다시 ‘만날’ 순간이 있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로부터 35년 뒤 다시 이 노래를 듣는다. 거의 환갑이 되었을 왕년의 ‘딸아’가 행복한 인생을 살았기를.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 화초를 키우듯 설레는 마음으로 ‘오빠’를 기억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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