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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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 어느 날, 엄마가 이번 주말은 꼭 시간을 비워달라고 하더구나. 네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다고. 그렇게 일을 미룬 토요일 오전,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서 노닐고 있는데 이상한 뉴스가 떴어.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투신은 중태로, 이어 사망으로, 서거(逝去)로 바뀌었지만 아빠는 그다지 큰 느낌이 없었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형을 비롯한 가족의 돈 문제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는 등 철저하게 망신을 당하고 있었기에 저 자존심 강한 양반이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빠는 그렇게 큰 동요 없이 차를 몰고 으리으리한 건물로 가서 네가 흰색 드레스를 입고 예쁜 티아라를 쓴 채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걸 지켜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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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일요일이었지만 아빠는 일을 나갔지. 돌아오는 길에 시내를 통과하면서 아빠는 덕수궁 앞에서 내려달라고 했어. 서울 덕수궁 앞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세운 분향소에 들렀다가 목욕탕이라도 갈 참이었지. 하지만 아빠는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줄이 덕수궁 돌담길 끝까지 늘어서서 아빠가 빈소 앞에 서기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렸거든. 그런데 지루한 기다림 끝에 노무현 대통령 영정 앞에 이르렀을 때 아빠는 뜻하지 않은 경험을 했어.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던 거야. 어,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의아했지만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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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코를 팽팽 풀면서 아빠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어. 내가 왜 이럴까. 노무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한 건 아니었고 되레 정책에 고개를 저은 적이 많았으며 주변 인물의 행동에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던 나였거든. “당신도 별수 없군, 흥!” 그러던 아빠가, 왜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무참히 허물어졌고 그 후 1주일을 눈물바람을 하며 지내야 했을까. 왜 그랬을 것 같으니? 오늘은 아빠의 과거 흔적을 통해 답을 찾아보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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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다음 날, 그러니까 2008년 2월26일, 아빠는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네. “님에게 보내지는 마음들도 꽃다발 모양부터 화살 형상까지 다양각색일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님의 행보에 유감없는 박수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님은 제가 님에게 붓뚜껑을 갖다 댔던 이유에 부응해주시지 못하셨습니다.” 팔짱 낀 채 입술 삐죽이는 아빠를 거울 속에서 보는 것 같다. 더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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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 하여금 무관심의 담장 위에 성큼 올라서게 했던 것은 결국 당신 아니 당신을 떠받친 사람들의 물결이었기 때문입니다. 담장 너머의 세상과 담장 이전의 세상을 깨우쳐준 사람이 당신으로 대변되는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 사회에 나온 이래 아빠는 그야말로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야 했지. 일도 가장 많을 때였고, 결혼도 하고, 오빠와 네가 태어났고 너희들의 옹알이에 즐거워했지만 또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치기도 했고. 그 탓에 사회적 이슈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못했어. 그런데 네가 돌이 막 지났을 때쯤, 2002년 월드컵만큼이나 아빠를 흥분시킨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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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서 나왔던 대사 기억나니? “바위는 아무리 단단해도 죽은 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은 기라꼬.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 기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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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계란 같은 머리로 바위를 들이받은 사람은 흔치 않을 거야. 그런데 노무현은 몇 번씩이나 자신에게는 최악에 가까운 선택을 하며 자신의 원칙을 지켰던 사람이었어. 오죽하면 별명이 ‘바보’였겠니. 아빠 역시 그 바보에게 감동한 사람 중의 하나였단다. 그리고 그가 있음으로 해서 아빠는 돌아보지 못했던, 아니 잊고 있었던 부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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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저질러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습니다.”(노무현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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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빠의 모습이었거든. 우리 가족이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까를 고민하는 게 절대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남의 가족이 어떻게 먹고사는지는 나랑 상관이 없었고,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누가 뭘 해먹든 내가 뭘 할 수 있으랴’고만 생각하며 종종걸음 치던 사람 중 하나였다는 뜻이야. 그런 사람들의 가슴에 노무현은 불을 질렀어.

2002년 대통령 선거 전날이었다. 노무현 후보와 후보단일화 합의를 하고 물러섰던 정몽준 의원이 별안간 노무현 지지를 철회한다는 선언을 했지. 그날 아빠는 전화와 문자를 수십 통 받았다. 마치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평범한 아빠의 친구들로부터. 그 가운데 압권은 아빠의 선배에게서 온 이메일이었을 거야. 한 번 얼굴 마주친 적이 있을까 말까, 근 10년을 전화 연락도 한 적 없는 증권사 직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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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였어. 거기에는 노무현이 ‘전라도당’으로 낙인찍힌 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했을 때, 사람들의 외면 속에 꼬마들과 강아지들을 앞에 두고 피 토하듯 연설하는 동영상이 첨부돼 있었어. 이렇게 계란으로 바위에 돌진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자고, 선배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던 거야. 모르긴 해도 그 선배는 수백 개 명함을 뒤적이며 메일 주소가 오타 날까 봐 또박또박 타이핑하면서 울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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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 뿌려진 조선일보 사설.... 대한민국 언론사상 가장 비열한 사설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새벽에 줍고 다니면서 눈물흘린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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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수백만 통 문자와 전화와 인터넷 포스팅이 대한민국의 허공을 갈랐을 거야. 새벽 1시에 아빠에게 전화한 아빠 후배처럼. 그는 숫제 통곡을 했어. “어떡해요 선배님.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하냐고 잠이나 자라고 타박하긴 했지만 아빠도 비슷한 마음이었지. 그날 밤 그 간절함과 뜨거움의 기억은 노무현만의 것도 아니었고, 노무현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노무현에 의한 것도 아니었어. 최소한 세상은 이래야 한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의 일어섬이었고 손 모음이었고 터져나오는 함성이었던 거지. 노무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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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덕수궁 앞에서 아빠가 별안간 눈물을 쏟아낸 것은 노무현 개인의 비극을 슬퍼했다기보다는 그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끌어올렸던 수많은 손들의 ‘희망과 용기’가 무참히 꺾이는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 그리고 다음 날 아빠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네. 그로부터 6년, 아빠는 오늘도 그 내용을 주문처럼 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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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으로 상징되었던 상식의 세상, 잔머리 굴리고 눈치 보지 않아도, 돈과 거리 멀고 ‘빽’ 아주 없어도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최소한의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보장받는 그런 상식의 세상을 위하여,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서주도록 그곳에서도 밀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숨이 끊어진 당신에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미워하던 사람들을 미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당신만을 사랑하노라 목 놓아 울 것이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서 당신이 가끔 보였던 오류와 실수를 극복하고 당신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을 일구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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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젠장.... 또 사무실에서 눈물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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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9년이나 되었군요.
부채를 많이 남겨주고 가셨으니, 잊지말고 부지런히 갚아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 부채를 좀 줄여야 .... 오히려 그에게 빚을 갚기보다는 우리 후손들에게 그가 맞섰던 벽의 높이를 줄이면 좋겠습니다.

그랬죠... 재임 기간 동안 그렇게 미워하고 욕하던 사람의 영정 앞에서 펑펑 울어야 했던 이유가 저도 참 궁금하고... 저 자신이 의아했더랍니다.

비슷한 마음이셨군요.... 참 우리 마음에 많은 여운을 남기고 간 인물 같습니다

이메가 잡넘....진실이 밝혀지길...내년 10주년때..

사필귀정.....

9년전 오늘 믿을수가 없어서 기사를 보고 또보고...
처음부터 지지했던 사람으로써 얼마나 슬펐던지요..
그립네요 ;;

정말 뜨겁게.... 또 바람처럼 살다 갔다고나 할까요..... 노사모 열풍..... 그 해 12월.. 참 여러 가지가 떠오릅니다

벌써 돌아가신지 9년이나 흘렀네요
깊게패인 주름살이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귓가에 맴돕니다

저 덜에 푸러런.... 솔잎얼 보라..... 참 ㅋ

아직도 눈물나서 사진도 똑바로 못 보겠어요..
부끄럽고 죄송하고..
나경원보좌관 녹음 파일 듣고 분노와 한숨만 나네요. 아직도 이런데 당시에는 어땠을지..
이후 10년동안 시궁창으로 빠지는거 보고..에휴..
꼭 쥐와 메이저 언론의 거대한 거짓프레임을 벗겨내야해요.

그 비서 자식은 정말 턱이라도 돌려 주고 싶더군요.. 나쁜 넘의 자식 같으니.

눈물흘리며 읽었습니다. 리스팀 할께요.

네 그 눈물 기억하시자구요

다음 달 선거에서 힘을 보태주시겠죠?

^^ 그러기를 바랍니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존경스러운 대통령이시죠.

그러나 그 마지막이 너무 가슴아팠군요....

아직도 트라우마가... 정말 자살 하신건지도 믿기지도 않고요...

자결하신 거 맞습니다.....그 유서만 봐도 그가 쓴 게 맞구요....... 명문입니다. 모든 거이 다 담긴

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는걸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고...

아 뭐야........ㅠㅠ
제가 쓴 글 같아요

  ·  last year (edited)

당시에 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던 무지한 아이였는데요
이렇게 당선되시던 날의 상황부터 서거하신 때의 생생한 모습과 감정들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연설하시던 장면을 보게 되거나 할 때면
이유없이 눈시울이 붉거질 때가 있더라고요 보팅이 끝난 글이라 최신글에 미약하나마 보팅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