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의 마지막 tonight

in #kr6 years ago

1990년 10월 14일 레너드 번스타인의 마지막 tonight

... 유태인들은 대개 그 이름에서 티가 난다고 한다. 독일 말로 ‘돌’인 stein이 붙으면 백발백중 유태인이고, 뒤에 ‘버그’가 따라붙으면 역시 비슷하다고 하고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는데 이하 생략. 이 공식(?)을 놓고 보니 아인슈타인, 베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브론슈타인 (트로츠키) 루빈슈타인 등은 죄다 유태인이고 스티븐 스필버그니 페이스북 만든 주커버그니 몽땅 유태인이다. 그 가운데 하나 미국의 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도 유태인이었다.

image.png

그 특출한 재능을 인정받으며 순탄한 음악가로서의 삶을 누리던 그는 스물 다섯 새파란 나이에 일생일대의 호기를 맞는다. 뉴욕 필하모니의 부지휘자로 있던 중 지휘자 발터가 고열로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했고 그 대신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지휘는 대성공이었다. 그 전에 한 번도 리허설을 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휘는 마치 ‘신들린’ 듯 했다. 지휘를 하면서 춤추듯이 온몸을 흔들었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점프까지 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물론 관중들까지도 몰아의 경지에 몰아넣곤 했다.

“지휘자가 될 것인지 작곡가가 될 것인지 나 자신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작곡에도 훌륭한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저 유명한 불멸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음악들도 만들어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를 뉴욕의 빈민가 웨스트사이드로 옮겨 놓은 그 뮤지컬에서 주인공 톰과 마리아가 부르는 환상의 이중창 “Tonight"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고 극적이다. 그 노래를 부르는 나탈리 우드의 모습이 얼마나 오랫 동안 망막에 들어 있었던지.

image.png

이렇게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가로서, 1959년 역사적인 링컨 센터 기공식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다음으로 삽을 뜨는 영광을 누렸으며, 미국의 모든 예술가들 가운데에서도 절정의 지위를 누리던 번스타인은 일종의 ‘빨갱이’로서 FBI가 그 평생 동안 예의 주시했던 사람이었다. 1950년 트루만 대통령은 전 세계의 국무부 산하 기관에서 번스타인의 음악을 일체 금지했었다.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1953년 국가 안보상 문제가 있다며 이 음악가의 여권을 회수했다. 돌려 줄 때에는 자신의 ‘정치적 과오’를 인정하는 진술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을 휘몰아칠 때의 일이었다.

베리 샐즈가 쓴 <레너드 번스타인>을 보면 번스타인은 견결한 투사가 아니었다. 라이프지가 “50명의 대표적인 빨갱이” 명단에 그를 넣은 걸 알고는 매우 자랑스러워하던 그는 막상 영화제작자로부터 “너는 빨갱이라 못 써.”말을 들었을 때 세상 물정(?)을 깨닫는다. 여권을 빼앗은 당국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자신이 좌파단체나 인물들과 의미있는 교류가 없었고, 자신도 사회주의자가 절대 아니라면서 바싹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 말로 하면 자신의 ‘지조’를 꺾고 ‘변절’함으로써 생존의 길을 찾았고, 그러고서야 그는 영광의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개 이런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이전의 반대쪽으로 열심당원이 되기 쉽다. 자수한 빨치산이 더 열심히 빨치산 소탕에 나섰고, 배교자가 더 성심껏 천주학장이들을 찾아다녔던 역사를 보면 그렇고 멀리 갈 것도 없이 김문수 전 지사 나 차명진 의원 같은 분들을 보면 ‘존재 자체가 증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번스타인은 좀 달랐다.

드러내놓고 진보 편에 서진 못했지만 현실 참여의 기회를 놓치지도 않았다. 미시시피에서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을 벌이던 학생들이 죽음을 당한 뒤 루터 킹 목사가 제안한 셀마 대행진, 인종주의자들이 대놓고 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그 자리에 번스타인은 나타났다. “여러분과 함께 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2만5천 명의 하나가 되어 거리를 걸었다.

으리으리한 행사에서 닉슨 대통령의 부인과 거의 동급의 대우를 받는 번스타인이 있었지만, 바로 그 닉슨에게 “베트남전을 끝장내라”고 소리치는 시위대에 끼어 워싱턴을 행진하는 번스타인도 있었다. 심지어 흑인 과격 단체인 블랙 팬더를 지지한다는 오해로 곤욕을 겪기도 했다. 블랙 팬더가 반이스라엘적 사고를 종종 드러냈기에 유태인들은 떼로 몰려들어 번스타인을 성토했다. 이때 번스타인의 말은 참으로 당연해서 감동적이다. “우리가 블랙 팬더의 철학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그들의 민주적 권리까지 부정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리무진 진보’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강남 좌파’와 같은 말이리라. 하지만 세계 어디에 가도 최고로 대접받는 음악가이자 지휘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레이건 이래 보수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조차 표 떨어질까봐 ‘자유주의’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시절, 이에 분노한 명지휘자는 이렇게 신문에 기고한다. “진보 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노예제를 종식시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한 주역임을 상기하라.... 현대의 폭군들은 건강보험이나 문화진흥책같이 사회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희생시켜 군비를 증강한다.”

투나잇 투나잇.... 나탈리 우드의 별의 눈동자를 추억 속에 수놓아 준 번스타인의 음악을 듣는다. 리무진 진보가 아니라 포르쉐 진보도 그 정도면 기꺼이 용납하고 지지하리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Sort:  

우리 보수는 물론 진보들이 종종 잊는 진리네요

“우리가 블랙 팬더의 철학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그들의 민주적 권리까지 부정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9
BTC 58525.64
ETH 1567.34
USDT 1.00
SBD 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