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불의의 담을 넘다

in kr •  13 days ago

1990년 9월 23일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싸안고 있던 새벽 2시, 한 젊은이가 숨죽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머리는 길고 옷도 사복이었지만 그는 이등병으로서 복무 중인 군 부대에서 탈영하려 하고 있었다. 품 안에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 엄청난 폭탄을 숨기고 있었다. 그 폭탄의 정체는 대한민국의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종교계 인사 등 1300여명의 개인 정보와 사찰 기록이 담긴 디스크와 관련 서류였다. 탈영병의 이름은 윤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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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년 전, 대한민국 보안사령부는 친위 쿠데타 등으로 인해 계엄령이 내려질 때 미리 검거해야 할 인사들의 명단을 추려 놓고 그 인적사항과 도주로, 예상되는 은신처까지 파악했으며 실제 검거 훈련까지 거치고 있었다. 윤석양 이병이 갖고 나온 디스크들은 그 치밀한 도상훈련과 계획의 결과물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후 대통령이 되는 세 명이 모두 그 리스트에 들어 있었고,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계, 박현채 교수 등 학계와 그 외 각 분야의 인사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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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터졌을 무렵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얘기가 들렸다. “윤석양 그 사람, 속해 있던 조직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군.” 말인즉슨 윤석양이 보안대의 협박에 못 이겨 조직을 다 부는 바람에 조직이 와해되다시피 했고, 그 동료 선후배들이 굴비 엮듯 저 악명 높은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아니 그래도 사형선고라니? 공(?)도 세웠는데......”

“그만큼 용서가 안된다는 얘기 아니겠어?”

그랬다. 윤석양은 프락치 노릇을 했다. 80년대 경찰과 보안대와 안기부가 앞을 다투어 대학 내에, 재야 단체에 심으려고 했고 성공리에 잠입시켰던 하고 많은 프락치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80년대 내내 프락치라는 단어는 뭇 사람들의 신경을 강철검처럼 날카롭게 곤두세우는 단어 중의 하나였다.

80년대 중반 학생운동 지하 조직 구학련을 말아먹었던 전설적인 프락치 서울대 83학번 배정한은 우연히 마주친 동료에게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힐난을 듣자 “운동 자체가 반사회적인 것이고 나는 반운동권이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라고 대들던 확신범이었고, 고대 법대 사회부장까지 역임했던 윤혁이라는 이름 쓰던 프락치처럼 아예 학적이 없는 유령 학생인 경우도 있었지만, 윤석양과 같이 보안대나 기타 공안 기관의 압박에 못 이기거나 약점이 잡혀 어쩔 수 없이 프락치 노릇을 해야 했던 경우도 허다했다.

이들은 자신의 양심이 쥐에 쏠리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 영혼의 점진적인 파괴를 경험해야 했다. 더하여, 공안당국이 가외로 올린 소득은 운동권 내부의 불신과 공포, 그에 대한 경계를 빙자한 또 하나의 폭력이었다.

프락치의 공포는 프락치 공포증을 불러일으켰고 프락치 공포증은 진짜 프락치보다도 더 무서운 부작용으로 되돌아왔다. 89년 연세대학교에서 프락치로 지목된 전문대생 설인종이 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던 사건은 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어떤 이들, 아니 많은 이들이 민중후보로 출마한 백기완을 미제의 프락치로 몰았다.

더 어이없기로는 범민련을 비롯한 친북세력은 통일운동의 모세라고 해도 무방할 문익환 목사마저도 자신들의 논리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락치로 몰아가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주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주류의 ‘단결’에 동참하지 않을 때 심심하면 내던져지는 표창이 ‘프락치였고, 심장에 박힌 채 썩어가는 프락치라는 오명의 화살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가슴을 움켜쥐고 몸부림쳐야 했던 것도 우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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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양은 정확하게 탈영 2년 후, 1992년 9월 23일 헌병대에 체포된다. 조직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을 정도로 이왕 버린 몸, 보안 부대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서 신관이나 편하게 지내다 제대하면 좋았을 그 시점에 그는 수형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수형 생활 중에 만난 왕년의 동지는 윤석양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퍼부었으며 출옥한 뒤에도 어떤 이들은 그에게 극언을 쏟아내며 무시하고 질타했다고 한다. 윤석양 역시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없어 은둔에 가까운 세월을 오랫 동안 보내야 했다.

윤석양은 실제로 프락치 노릇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무너져 가던 양심의 대들보를 일으켜 세움으로써 인간의 존엄함을 구현했다. “양심의 소리는 아주 작고 고요하지만 때로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듣기조차 거북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는 토로에서 나는 윤석양의 고뇌와 갈등이 그 내부에서 얼마나 치열했을까를 짐작할 수 있다. 끝내 그 소리에 귀를 막을 수 없었던 그가 보안사령부를 탈출하던 오늘은 인간의 존엄함의 빛이 어둠을 가르는 순간이었고, 인간의 존엄함을 기본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의 승리의 시간이었다. 인간의 영혼을 도구로 삼는 어둠의 세력에게 끝내 왜 너희들이 어둠인가를 가르쳐 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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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양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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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볼때마자 저 인물들과 그들에 엮인 인물들이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윤석양씨는 작년의 인터뷰 내용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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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습니다..... .... 궁금하죠.. 다양하게 변한 사람들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