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록 나인과 밴드 오브 브라더스

in #kr3 years ago

리틀록 나인과 밴드오브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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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9월 25일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 101 공정부대원들이 아칸소 주의 리틀록 고등학교에 투입됩니다. 인종 분리 교육 철폐를 선언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리틀록 고등학교에 지원한 흑인 학생들을 호위하고 그들의 교육권을 지켜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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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백인들의 돌팔매와 욕설에 더하여 아칸소 주지사가 동원한 주 방위군의 총검까지 직면해야 했던 흑인 학생들에게 101공정부대원들은 하늘나라 군대 같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호위 아래 아홉 명의 흑인학생들은 끝까지 버텨 인권운동의 새 역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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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어긋나는 질서를 형성하고, 그것이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믿음‘을 훼손하는 무기가 될 때, 법은 신성함을 잃고. 그 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역사와 질서를 창조하는 영웅들로 정의의 갑옷을 입게 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항의하고 일어섰던 수많은 선각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걸음은 역사의 새 길을 열었습니다.
리틀록 나인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의 취임을 감개무량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취임식에 초청되었지만 그 감격의 현장에 가지 못하고 TV로만 함께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액퍼드는 리틀록 사건 때 당한 폭행과 압박의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를 앓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 자신을 상실했던 겁니다. 오바마의 취임식은 그들의 아픔으로 장식되고 그들의 이름으로 수놓아진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그들이 없었으면 오바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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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한 인간들의 집단이 그들과 다른 인간들의 집단을 차별하고, 그들과의 분리를 정당화하고, 그들과 동일한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을 거부하고 모욕하는 나라는 그 자체로 야만이라는 칭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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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9월 25일 미국 아칸소의 리틀록 고등학교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야만을 물리치는 정의의 군대였습니다. 아울러 그런 야만은 이후로도 세계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저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런 야만이 없가를,있다 해도 사라지기를, 그리고 뭇 사람들이 그를 야만으로 인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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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영상의 말미의 한 컷 때문에 아내와 작은 언쟁을 했습니다. 대구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성원 건립을 둘러싼 충돌 문제를 두고 생긴 이견 탓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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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음을 일으키는 새벽 예배 등을 하지 말라든가 치안을 강화해 달라든가 하는 요구는 할 수 있지만, 인종차별적 구호를 내세우고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의견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아내는 그 뜻은 충분히 알겠으나 단순한 인종차별의 문제로 ’선언‘해 버리는 것 또한 섣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죠. 저는 이해할 부분은 있더라도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이 영상의 마지막 컷이 그에 해당하며 꼭 넣어야 한다고 우겨서 관철시켰습니다. 한 번 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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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은 무관심의 야만을 무찌르는 일이요, 좋아요는 정의에 대한 응원이며, 댓글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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