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별 장재성
광주의 별 장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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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인가 그제인가 웬 '좌파' 학생운동 단체가 윤석열 지지 선언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운동권 족보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당 재집권 저지와 윤석열 지지를 표방한 전국학생행진은 예전의 대장정의 후신이라고도 했다. 하도 그 논리가 궁금하여 그 성명서 내용까지 들여다 봤는데 그다지 설득력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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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은데 거기에 나까지 보탤 마음은 없다. 어차피 욕먹을 건 각오한 듯 보이고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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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는 그저 신기했다. 조직적 학생운동이 몰락한 지 오래인 터에 그런 식으로 조직을 유지하는 '좌파' 학생운동단체가 존재하고 그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나 할까. 한국 현대사에 수시로 몰아닥쳤던 스튜던트 파워, 즉 학생운동의 태풍이 거의 위력을 잃었으나 가끔 이렇게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소슬바람을 낼 만큼은 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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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다. 대학생 시절 11월 3일은 즐겨 '총궐기'의 날이었다. 아니면 '민중대회'와 겹쳐서 하여간 데모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그런 운명이었던 게 학생의 날 자체가 1929년의 광주 학생운동을 기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929년의 광주 학생운동은 3.1항쟁과 함께 국내에서 벌어진 대규모 항일 운동의 양대산맥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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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시위는 전국으로 이어졌고, 해외에도 널리 전파됐다. 쿠바의사탕수수농장에서 중노동으로 생을 이어가던 한인들도 광주학생운동 후원금을 모금할 정도였다니 그 파급력을 짐작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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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주학생운동의 발화점을 역사에서 배운다.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했고 이에 조선 남학생들이 주먹을 날리면서 시작됐다고 말이다. . 주먹을 날린 박준채와 일본인에게 희롱당했던 그 사촌누이 박기옥의 사진은 광주학생운동을 소개할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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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류의 감정 싸움이나 주먹다짐은 조선 반도 어디에서든 일어났다. 광주 뿐 아니라 부산도 예외가 아니었고 신의주나 회령에서도 어김이 없었다. 하다못해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일본인 깡패들과 조선인 깡패들도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주먹다짐이 역사에 남을 광주학생운동으로 전화한 데에는 다른 사람들의 활약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장재성이다. 그의 얘기를 잠깐 엮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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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에서 걸출한 사건으로 평가받는 광주학생운동의 배후조종자이자 지도자이자 기획자였던 그는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했다. 좌익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투철한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북한에 갔다 오긴 했지만 북한 쪽 사람들에 대한 회의도 드러냈다. 그러나 전쟁과분단의 소용돌이 속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좌익이었고....... 비참한 최후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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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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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한테 게으르다고 혼났다. 유튜브를 안하면 모를까 어쨌든 3천명 구독자가 있는 사람이 업로드에 게으르다고. 그러자 "만 명도 안되는데 무슨 3천명 가지고...." 했다가 더 혼났다. "3천명에게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1만명한테 부지런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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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와 구독을 꾹꾹 누질러 주시기 바란다. 나의 책임감을 키우고 그래서 마누라한테 깨지는 일이 없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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