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순대국집을 위하여

in #kr8 years ago

알래스카 순대의 숨구멍

2000년 6월 15일, 저는 을지로 4가 언저리의 한 순대집에 있었습니다. 그 집의 상호는 '알래스카 순대'였지요. LA갈비같은 그런 거냐 물으니 전연 아니랍니다. 답인즉 한때 함경도 지역을 두고 알래스카라 칭할 때가 있었답니다. 미군정이 각 도를 구분할 때 대충 자기들 지명을 붙였던 거죠. 평안도는 텍사스였다고 하고 함경도가 알래스카였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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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블로거 <대구의 사랑> 사진

이른 아침 가게에 먼저 도착한 것은 저였습니다. 사장님은 친구들과 만나 함께 오신다고 좀 늦으신다더군요. 얼마간 기다린 후 함경도 '아바이 순대'와 가자미 식해 (식혜가 아닙니다)를 수십 년 동안 팔아 왔다는 주인 할머니가 여러 명의 할머니들과 함께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서셨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꽃단장하고 왔지."
"에고 뭐 방송 출연한다고 꽃단장까지......"
"예끼 여보쇼. 오늘 대통령 평양 가는 날이잖아. 간만에 이북 친구들 보기로 했다구."

선심이라도 쓰듯 아주 잠깐 촬영에 응한 후 할머니는 서둘러 TV가 있는 방 안으로 향하셨지요. 이미 할머니의 친구들은 TV 앞에 진을 치고 있었구요.

잠시 뒤 순안 공항에 내린 특별기 안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딱히 표현할 길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트랩 아래 북녘 땅을 돌아보았지요.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의 수도에 발을 디딘 남의 대통령, 그리고 아래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북의 국가원수... 한동안 쥐죽은 듯 고요했던 식당 방 안에서 작은 박수와 말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안..... 저기가 내 고향이야."
"와 저리 서 있기만 하는 거이가? 뭘 보는 거이가?"
"너 같으문 감개가 어드렇겠냐. 나도 저기 서면 얼어붙을 것 같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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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지요. 김대중 대통령의 동작 하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표정 하나에 일일이 토를 달던 중 한 할머니가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김대중 대통령이 서 있는 평안남도 순안이 고향이라는 할머니였지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중매선 사람이 김일성 아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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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김일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 사람이 내 앞에 앉은 평범한 할머니의 부모님 혼사를 성사시켰다는 것이 왜 그리 우스웠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얘기를 처음 듣는 건 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야 그 얘기 나 오늘 처음 듣는데? 너 이때껀 그런 얘기 일절 없었잖아?"
"뭔 자랑이라고 그 얘기 하간. 오늘같은 날이니까 하는 거지."

허기사 김일성 아버지가 중매 선 부부라면 남한에서 자랑거리는 커녕 험악한 시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렇게 별 것도 아닌 이야기도 가슴 속 깊이 숨겨두어야 했던 시절이 끝나고, 늙은 몸이라도 맘 놓고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이었을까요. 할머니들은 50년 전, 또는 그 이전의 젊음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오전의 친구들이 돌아간 후 우두커니 방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 고향 생각 많이 나시느냐며 말을 붙였습니다.

"부모 형제 다 이북에 있구요. 장남을 못데리고 나왔어요. 장손이라고, 할아버지랑 같이 있어야 된다 해서. 곧 볼 줄 알았지요. 50년 동안 이리 지낼 줄은 몰랐지요.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나도 그 아이 생각만 하면 복장이 터져요."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지 할머니는 부리나케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가마솥 안에서는 스물 몇 가지 재료로 그득히 채워진, 소시지 네 개쯤 되는 굵기의 순대가 펄펄 끓는 물에서 헤엄치고 있었고 할머니는 벽에 걸린 대꼬챙이로 순대를 푹푹 찌릅니다.

"이렇게 숨구멍을 내야 순대가 잘 삶겨요. 순대도 답답하면 복장이 터져서 풀어진다고."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수십 년간 숨구멍도 없이, 부모 형제 피붙이들과 완벽히 차단된 가마솥 안에서 터져나는 속을 다스려야 했던 할머니의 50년이 떠올랐습니다. 그 세월 속에는 실낱같은 숨구멍이라도 뚫리나 기대에 찼던 나날도, 이제는 맘 편히 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 보다 하고 가슴 벅찬 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또 그 숨구멍이 다시 냉혹하게 틀어막혀 기대가 체념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악몽도 여러 번이었을 겁니다.

그 기나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다다른 2000년 6월 15일은 할머니를 가둬 왔던 가마솥이 다시 한 번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터질 듯한 복장에 숨구멍이 나는 날이었습니다. 김일성의 아버지가 부모님의 중신을 선 사실을 이제사 조심스레 털어놓은 할머니처럼, 동병상련의 이북 또래들과 함께 하고자 '알래스카' 순대집으로 몰려든 분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그날 손님들은 유난히 백발이 많았습니다. 함경도 뿐 아니라 평안도 황해도를 망라한 이북 출신 노인장들이었지요. 고향을 물을 때마다 저에게는 생경한, 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 살가운 이름들이 가게 안을 울렸습니다. 함경북도 무산, 함경남도 영흥, 평안남도 강서, 황해도 은율, 평안북도 신의주..... 원래 손님이 많은 집이긴 했으나 그날은 온 홀과 방이 가득 찰만큼 큰 인파가 몰렸습니다. 검은 머리로 떠나와 백발에 이르도록 닿지 못한 고향이 오늘의 경사로 인해 단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졌음을 축하하며, 그리고 더 큰 발걸음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그들은 술잔들을 부지런히 비워 댔지요.

그때 알래스카 할머니는 폭주하는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순대를 거듭거듭 삶고 계셨지요. 그리고 아침보다도 더 기운이 들어간 몸짓으로 순대의 숨구멍을 내고 계셨습니다. 그게 벌써 18년 전이군요.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인지 알래스카 순대집도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근처에 볼 일 있어 갔다가 분명히 이곳이 맞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에 누군가 알려 주셨지요. "거기 없어진 지 꽤 됐어요."

전쟁이 끝나고도 예순 다섯 해, 그때 홍안의 젊은이들이었다 해도 이제 거의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힘겨웠던 생을 돌아보며 삶을 정리하실 연배죠. 아마 순대국집에 모였던 꽃단장 할머니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중매 선 커플의 따님을 포함한 그분들도 대개 세상을 뜨셨을 겁니다. 그때 이미 여든을 넘으셨으니까요. 그분들이 눈에 이슬 맺힌 채 선반 위에 놓인 TV 응시하며 넋을 놓던 모습이 떠올라 옵니다. 18년만에 다시 그런 날이 다가오는데 만약 지금도 생존해 계신다면 또 얼마나 가슴이 떨리실지요.

참 길었습니다. 이제는 좀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맞아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통일이 안되면 평화로운 공존의 길로라도, 자유로이 왕래하고 전화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비자 받아 여행도 가고 하는 그런 나날이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복장 터진 순대처럼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일 없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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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서 http://egloos.zum.com/urlkn74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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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북한음식을 많이 보게될것같네요.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려봅니다.

이제 이틀 남았씁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열리는군요. 빨리 하루라도 빨리 통일까진 아니더라고 지금보단 더 가까이에 북한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제뜻도 꼭 같습니다... 통일이야 때 되면 되는 거고.. 우선 자유왕래라도

개성-평양, 백두산도 육로로 가보고 싶어요

배고픔에 딴소리
순대먹고 싶어요.

어 오늘 저녁 메뉴는 순대국으로 ㅋ

한때는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는 절대 안된다고 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비슷한 형태로라도 통일이 되어 글에서 쓰셨던 것처럼 비자받아 서로 왕래도 하는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와이프랑 저랑 가끔 농으로 하는 얘기가 개마고원으로 피크닉 가자는 말을 하는데 그런 날이 곧 오겠지요.
보수쪽 사람들은 절대 그런 것은 용납 못한다고 하시는데, 그럼 전쟁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러면 그 분들은 모두 전쟁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분들이신가 보네요. 제아무리 전쟁이 나도 본인들은 아무런 위험없이 살아 나실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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