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과 심상정, 구로동맹파업

in #kr5 years ago

오늘의 썸데이TV – 구로동맹파업 그리고 김우중과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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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참 다양한 면모를 지닌 사람 같습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전쟁을 거쳐 절대 가난 속에 뿌리 내리고 성장할 때 수많은 선악호오의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 중의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면모 뿐 아니라 그에 대한 평도 구름 위와 땅 아래를 넘나들었습니다. 제 지인과 친구들 사이에도 그의 평은 극단으로 엇갈렸으니까요.. 그렇게 정반대의 의견을 피력한 사람 둘이 똑같이 비유를 든 것이 ‘자전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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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자전거 같은 사람이다.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페달을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 같은 사람이라 언젠가는 벼랑에 떨어질 거야.”(90년대 중반 우리 회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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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같은 사람이야. 머리건 몸이건 쉴 줄을 모르고 계속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가고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야. 정체(停滯)를 모르는 사람이지. 천성적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사람이야. (그즈음 만난 학교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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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전거라는 말에 그의 긍정성도 부정성도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우중은 특출하게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멈출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극은 너무나 컸습니다. 때로는 노동운동가들과 교류하고 그들 역시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자신의 차 트렁크에 노조 간부를 싣고 경찰의 포위망 밖으로 빼내 준 적도 있는 그이지만 1986년 대우 어패럴에서는 약속 뒤집기부터 납치,회유,폭행 등 별의 별 노조 와해 공작을 다하는 악덕 기업주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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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24일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3명이 구속된 이틀 뒤, 대우어패럴 공장에서 파업의 깃발이 솟습니다. 그리고 이 파업은 주변 공장에게로 파급됩니다. “대우어패럴이 깨지면 우리도 깨진다.”는 절박함, 그리고 저들을 구해야 한다는 이심전심이 뭉쳐진 연대파업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지금도 쉽게 볼 수 없는, “남의 일을 내일처럼” 여긴 이들의 동맹파업이었습니다. 그 파업 이야기를 돌이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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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게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냐.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다 자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대우 근로자들은 한 달에 두 번밖에 안 논다. 일요일에도 제대로 못 논다. 한 달에 이틀밖에 안 놀리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간에 한 세대의 희생이 없이 그 나라가 잘된 나라가 없다..... 우리 세대가 진짜로 희생하는 세대 아니냐. 이런 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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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그의 공장에는 서울대 국사교육과 출신 심상정이 노동자로 들어와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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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미싱기, 다리미, 프레스기 등 각종 기계열에 시달리면서 모피를 만들었는데 1시간 정도 일을 하면 가운이 다 젖었고 오후까지 일하면 발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사업장은 먼지가 날린다며 선풍기도 틀지 않았고 양동이에 공업용 얼음을 넣고 가루주스를 풀어 음료수를 만들어 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일해서 받은 돈은 8만원이었다. 그러던 김우중 회장이 노조에 1000만원을 주면서 회유를 시도했고, 직접 노조와 합의를 마친 뒤 뒤집는 일도 있었다..... 노동착취와 정경유착을 통한 특혜 속에서 재벌이 성장하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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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쉽게 도식화할 수 없습니다. 사악한 자본가와 옹골찬 노동자와의 대결로만 그 시대를 파악할 수는 없을 겁니다. 김우중 역시 역사적인 역할을 넉넉히 했던 사람일 수 있겠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입니다. 그의 말에서 “희생하는 세대”에 마음의 방점이 찍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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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결국 그렇게 싸워 준 세대, 잡혀 가면 죽도록 고문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밥먹고 살 일이 암담했고 쥐뿔만한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남의 공장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연대할 줄 알았던, 내 것이 앞서는 현실보다 가망없는 미래에 몸을 베팅했던 사람들이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연대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후 폼나게 살지도 못했고, 무슨 정치에 입문한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평범하게, 또는 더 불행하게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 희생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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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잡혀 가면 죽도록 고문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밥먹고 살 일이 암담했고 쥐뿔만한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남의 공장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연대할 줄 알았던, 내 것이 앞서는 현실보다 가망없는 미래에 몸을 베팅했던 사람들

아직도 술만 먹으면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오십대들 많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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