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네가 동성을 사랑한대도

in #kr5 years ago

퀴어 축제날 기념 리바이벌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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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네가 동성을 사랑한대도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면서 아빠는 조금 걱정했어. 나치 독일의 정교한 발명품이었던 암호 기계 ‘에니그마’의 비밀을 풀어낸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주인공이라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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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이라는 사람의 특성, 즉 엄청난 괴짜이면서 성적 소수자라는(너는 동성연애자라고 불렀지만 올바른 표현은 아니란다) 사실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몰라서였단다. 내가 네 나이 때 성적 소수자들을 “변태”라고 불러 마지않았듯, 너도 혹시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다고나 할까.

영화 속에서 앨런 튜링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너 쪽을 흘낏흘낏 바라보았어. 아빠의 공연한 걱정은 영화 감상 후 네가 쓴 글을 읽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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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가 뭔지 잘 몰랐지만 후에 설명을 듣고 나서 욕이 나올 뻔했다. 호르몬 약을 주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면서. 동성애는 병이 아니다.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이성이 아닌 동성한테 가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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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그래 맞아. 성적 소수자는 환자가 아니고 그들의 성적 정체성은 질병이 아니야. 그러나 아직도 네 생각은 일반적인 상식이 못 돼.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야. 아니 세계적으로도 네 발언 수준의 합의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오랫동안 범죄시되고 탄압받고 때로는 사회적 왕따가 되고 죽임까지 당했지만 성적 소수자가 사라지지 않은 건 네 말대로 자연스럽기 때문일 거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동성한테 가는 걸” 어쩌란 말이야.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앨런 튜링처럼 환자 취급, 죄인 취급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했어. 네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장식하는 스타만 해도 무지하게 많아. <반지의 제왕>에서 위풍당당한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 역을 맡았던 이언 매켈런이 그렇고, 엄마 아빠가 밤새워서 봤던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이클 스코필드’ 역 웬트워스 밀러도 그 하나이며, 네 오빠가 열광적으로 봤던 영화 <양들의 침묵>의 주인공 조디 포스터는 동성 결혼을 한 사람이니까.

여기에 한 사람을 추가해보자. 록 허드슨이라는 1925년생 미국 배우(아래 사진 가운데). <자이언트>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이 배우는 키 190㎝에 실로 조각 같은 미남이었어. 미남 좋아하는 네가 보면 탄성을 지를 만큼 잘생겼지. 그 역시 성적 소수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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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할리우드에서 성적 소수자임을 밝힌다는 건 앨런 튜링의 지옥을 반복하는 일이었지. 그래서 록 허드슨은 물론이고 영화사와 매니저도 필사적으로 그 비밀을 숨기려 들었어. 소문이 흘러나오자 매니저는 자기 여비서를 록 허드슨과 결혼시켜 버렸다니 알 만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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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여자의 팔짱을 끼고 매스컴을 장식하며 활짝 웃는 록 허드슨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연히 둘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어. 록 허드슨은 그 후로도 자신의 평생 친구라 할 사람들에게까지도 자신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았단다. 얼마나 가슴 졸이는 지옥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아빠는 중세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을 떠올리게 돼.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성적 소수자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의 비를 맞으며 끝없이 걷는 형벌을 받아. 여기서 단테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옛 스승 브루네토를 만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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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브루네토에게 물어. “이 무리 중 선생님만큼 유명한 분이 또 누가 있나요?” 그러자 브루네토는 이렇게 대답해. “서넛은 말할 수 있다. 그 이상 말하지 않겠다. 모두 말할 시간이 없다. 모두 성직자나 학자였고,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세상에서 같은 죄로 더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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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황제보다 힘이 센 시대를 살았던 단테의 처지에서는 그들을 ‘죄인’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아빠는 이 질문에서 수많은 ‘위대하고 유명한’ 성직자와 학자들이 그 ‘죄’(?)를 저지르는 데 대한 단테의 의아함과 놀라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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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와 브루네토가 헤어질 때 브루네토는 자신의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한 다음 ‘축제 때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 나가. 어쩌면 당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뒷모습을 단테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와도 같이.” 아마 단테는 너처럼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이건 죄가 아니라고! 왜 저 사람이 죄인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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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화 감상문을 보다가 또 한 대목에서 아빠는 폭소를 터뜨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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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지옥에 가야 합니다’라는 둥의 소리를 들으면 헛웃음부터 나온다. 학교에서 뭘 배웠나 하는 생각뿐이다… 사람이 누굴 좋아하건 싫어하건 당신네들이 무슨 상관이야? 서로 좋아 죽겠다는데, 굳이 우리가 끼어들어서 헤어지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몰상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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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브라보. 그래 맞아. 자유로운 한 사람의 감정과 지향을 다수의 편견으로 억압하는 건 부당한 일이고, 그들을 죄인이나 환자 취급하고 경멸하고 고립시키는 건 범죄에 가깝다고 봐. 네 말대로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득한 구약 시대의 구절을 들고 나와 성적 소수자들을 범죄자 취급하지만, 정작 예수는 유대인이 그렇게 무시하고 죄인 취급하고 접촉조차 싫어하던 사람들, 나병 환자들, 세리(稅吏)들, 사마리아인들에게 기꺼이 다가서고 그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아. 그들이 인용하는 레위기대로라면 삼겹살도 구워먹을 수 없고 바람피우는 남녀는 다 때려죽여야 하는데 그분들은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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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고 있긴 하지만 아빠도 한때는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가졌고 지금도 완전히 불식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워. 네가 훗날 웬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서 “아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라고 한다면 과연 ‘멘붕’을 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 일로 닥칠 때는 질감이 달라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여기서도 네가 아빠에게 답을 주는구나. 너는 이렇게 얘기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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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 친구가 ‘나는 성적 소수자야!’라고 커밍아웃 했을 때 손을 꼭 붙들고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의 멘탈은 가진 것 같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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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편견의 벽이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노력과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해 점점 더 낮아지는 거겠지. 오늘은 우리 딸이 아빠를 가르치는구나. 아빠도 네가 말한 지점까지 가려고 노력해볼게.

아까 말했던 단테의 <신곡> 중 단테의 스승이자 성적 소수자였던 브루네토가 단테에게 남긴 얘기를 전하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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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별을 따라 가거라. 여전히 내 눈은 틀림이 없으니, 너는 영광의 항구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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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유로운 성정을 누르는 완고한 편견 따위 없고, 사람마다 가진 특수성을 차별의 이유로 삼는 교만한 계명이 없는 영광의 항구에 네 발길이 닿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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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anha88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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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닮아가는 딸의 모습이 보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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