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가 해낸 것

in #kr5 years ago

양정모가 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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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무대에서 남북대결이 처음 펼쳐진 건 1972년 뮌헨 올림픽 때였습니다. 처음 출전한 북한은 단번에 금 1, 은1 동 3를 따내 은메달 하나에 그친 남한을 무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무안한 정도가 아니었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도 북한은 복싱의 구영조 선수가 자그마치 ‘미제’ 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수확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폐막 몇 시간 전까지 노 골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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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한테 또 지나 했는데 폐막을 얼마 남기지 않고 벌어진 레슬링 페더급 자유형 경기에서 양정모가 몽골의 오이도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건국 후 최초의 금메달이었죠. 1948년 런던 올림픽 이래 줄기차게 도전했던 한국팀이지만 28년 동안 금메달을 가져온 적은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스포츠만큼은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나라였고 대회마다 금메달이 확실하다는 선수들은 많았지만 도무지 금메달을 따오지 못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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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보스톤 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했던 서윤복과 1950년 보스톤 마라톤에서 3위를 하게 되는 최윤칠을 앞세운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마라톤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무위에 그쳤고 최윤칠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도 도전했지만 무위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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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올림픽에서 송순천은 다 이겨 놓고도 판정의 농간으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고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역시 복싱의 정신조는 승승장구했지만 예선에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결국 금메달을 코앞에서 놓쳤죠. 레슬링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장창선도 올림픽 금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멕시코시티 올림픽의 지용주도 근소한 차로 판정패했고 뮌헨에서의 오승립도 다 잡은 금메달을 놓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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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모의 금메달은 그 모든 한을 풀어주는 쾌거였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들뜬 것도 예외가 아니죠. 그런데 저는 또 다른 의미로 이 금메달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왜 그 금메달이 더 소중한지.... 영상을 통해서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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