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동메달

in #kr3 years ago

영상을 보고 오셔도 좋습니다


기적의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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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경탄하며 말했습니다. “한국은 여자 DNA가 월등한 것 같아. 구기종목만 봐도 그래. 야구 빼고 (이건 여자가 없으니까) 여자가 하는 구기종목에서 남자가 세계 제패한 적 있나. 여자는 일찌감치 세계 정상권이었어. 박신자 때 농구 2등, 몬트리올 올림픽 배구 동메달, LA 때 여자농구 은메달, 여자 핸드몰 금메달..... 요즘도 남자는 쪽을 거의 못쓰고 여자는 올림픽에 자주 등장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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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누가 아는체를 했습니다. “음 그건 한국 여자가 우월한 게 아니라..... 원래는 남자들만 하던 걸 여자들도 하게 된 역사가 짧고, 그래서 서양이나 동양이나 여자들 수준이 비슷해서 그렇게 보이는 걸 거야.” 그러자 술자리에 있던 친구들 전부가 입을 모아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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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한국은 여자가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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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소리 아니고 술자리 우스개 소리니 “응 웬 남혐?”하며 눈 부라리는 사람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여자들은 남자에 비하면 훨씬 발군의 성적과 결과를 보였고 그 와중에 실로 감동적인 사연도 많았습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의 한일전을 보면서 저는 45년 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한국 여자 배구팀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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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에 패해 동메달을 놓친 뒤 한국 배구팀은 강훈련을 거듭했습니다. 급기야 1964년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을 세계 정상으로 올렸던 다이마쓰 히로부미를 코치로 초청해 선수들을 말 그대로 반 죽여 놓는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켰죠. 서브 리시브 훈련을 하다가 선수들이 졸도할 정도였다니 말 다했죠. 이 와중에 국내 배구 선수 중 최대의 거포라 할 박인실 선수가 엔트리에서 아웃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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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주공격수 조혜정 선수보다 키가 훨씬 컸고 그 시절에 서울대 사범대학을 나온 (특기자가 아니었음) 유능한 선수였던 그녀는 다이마쓰의 막무가내식 나만 따르라 지옥 훈련에 반발했고 결국 선수촌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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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가는 엄청났습니다. 박인실은 배구계에서 영구제명됐고 때아닌 세무조사까지 받았으며 교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취업에도 한참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런 시기였습니다. 박인실의 아픔을 바라보며 선수들은 더욱 이를 악물었을 겁니다. 그리고 박인실의 공백은 ‘날으는 작은 새’ 키 164센티의 공격수 조혜정이 메워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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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실은 비인간적인 훈련에 반발해 훈련소를 뛰쳐나올 수 있었지만 대개의 선수들은 그에 뜻을 같이 하더라도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이유는 동영상에 나오는 백명선 선수의 사연을 들어 보시면, 그리고 그 사연을 들은 조혜정 선수가 어떻게 했는지를 보시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한국은 그런 나라였고, 당시 우리 대표 선수들은 그런 선수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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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이 실황을 손바닥만한 흑백TV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제게는 첫 올림픽이었던 셈입니다. 양정모가 금메달을 따던 그 올림픽이었죠. (그 얘기도 유튜브로 한 번 풀어볼까 합니다) 그때 한국이 ‘빨갱이 나라들’ 즉 동독, 쿠바, 소련과 맞붙을 때 어른들이 빨갱이들 이겨라고 부르짖던 것도 눈에 선하고, 일본에 질 때는 “역시 일본에는 안되는구나.”한탄하던 기억도 귀에 쟁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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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로부터 45년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동독과 소련은 없어졌고 더 이상 일본은 “일본에게는 안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한국 여자 배구팀의 투혼과 고참 언니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 같습니다. 1976년 나는 작은 새 조혜정과 2021년의 슈퍼 언니 김연경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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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몬트리올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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