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고의 스파이 조르게 체포

in #kr8 years ago

1941년 10월 18일 20세기 최고의 스파이 체포되다

20세기를 통틀어 시골 밤 하늘의 별처럼 많았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에는 악당도 부지기수였지만 자신의 이상을 위해 충직하게 헌신했던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 중의 한 명으로 리하르트 조르게라는 사람을 들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20세기 최고의 스파이이고 20세기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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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할아버지는 맑스와 엥겔스의 동료로 지냈던 프리드리히 조르게였지만, 유전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그에 반발해서인지 매우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 여자와 결혼했고, 유전 기술자로 파견된 러시아의 유전 도시 바쿠에서 리하르트 조르게를 낳았다. 하지만 리하르트는 철저한 독일인으로 자라났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젊은이들처럼 군대에 자원하여 자신의 고향인 러시아 군에 맞서서 용감히 싸우다가 세 손가락을 잃는 등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여기까지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용맹한 상등병 아돌프 히틀러의 경험과 유사하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한 간호사가 리이하르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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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트라우마에다가 일종의 격세유전 (할아버지가 맑스의 친구였으니) 탓이었을까. 그는 공산주의자였던 간호사의 설득에 완전히 빠져들고 그 이후 자신의 일생을 공산주의자로 보내게 된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던 그는 이내 사회주의 조국 소련행을 택한다. 코민테른에서 일하면서 그가 발군의 능력을 보인 것은 어학 분야였다. 독일어 외에도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무하마드 깐수 정수일 교수가 생각나는 건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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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력에 주목한 사람이 소련 정보국 GRU(KGB 의 전신)의 얀 베르친이었다. 그는 조르게를 정보원으로 발탁하여 세계 각국을 돌며 정보활동을 시키다가 종국에는 동양으로 보낸다. 그는 일본에 잠입하여 ‘프랑크푸르트 자이퉁’ 기자 노릇을 하면서 전설적인 스파이망을 구축한다. 독일에 구축한 소련 정보망이 일망타진되면서 정보에 목마른 소련에게, 독일과 동맹국이던 일본은 오아시스같은 존재였고 조르게는 정력적인 스파이 활동을 통해 소련의 갈증을 풀어 준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독일의 소련 침공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여 전달했으나 스탈린은 그를 무시한다. ‘대원수’ 스탈린은 자신의 충직한 스파이보다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을 더 믿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전면전이 터진 것을 보고받고는 “우리가 독일에게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얼뜨게 묻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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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조르게를 믿지 못했던 것은 그가 트로츠키와 부하린 계열의 공산주의자인데다가 혈통적으로 독일인이기 때문이었다. 조르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상관인 베르친도, 그 후임자인 우리츠키도 스탈린의 대숙청 때 목숨을 잃은 대숙청이 휘몰아치는 소련에서 트로츠키 계열이란 딱지는 곧 사형 대기장과도 같았고 자신의 혈통 또한 언제 머리에 떨어질지 모를 칼이었던 것이다. 그는 “일본에 있었기에 숙청을 면했다.”라고 회고했다. 조르게는 몰랐지만 그의 아내도 유형지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적은 자신의 조국을 집어삼킨 나찌즘이었고 그 동맹국 일본의 파시즘이었다. 세계 혁명을 꿈꾸던 공산주의자로서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나찌와 파시스트들의 전횡을 가로막을 정보를 캐내 자신을 불신하는 사회주의 조국으로 실어 날랐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일본의 관심은 동남아시아에 있지, 소련과 전쟁을 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조르게를 신뢰하게 된 소련은 만주- 몽고 국경에 배치되어 있던 백만 대군을 독일전에 투입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병력이 신속히 움직이지 않았다면 소련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된 몽골계 소련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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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좌파 여성 언론인 스메들리부터 주 일본 독일 대사의 부인까지 여자를 유혹하는 재주도 (개인적으로 언어 능력보다는 이쪽 역량이 무척이나 부럽다) 탁월했던 그는 끝내 애인으로 지내던 일본 여성과의 관계 때문에 그 꼬리를 밟히고 만다. 일본 헌병대의 수사망이 좁혀오던 즈음 조직원이 전달한 피신 요구 쪽지를 받고도 애인과의 마지막 밤을 기다리던 남자의 초조함 때문에 그 쪽지를 소각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공산주의자 간호사 때문에 택했던 혁명가로서의 인생은 그렇게 일본의 무희로 말미암아 추락하고 만다. 1941년 10월 18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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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체포된 뒤 흡사 십자가 위의 예수같은 말을 남긴다. “일본에서 빼낼 정보는 더 이상 없다.” 스파이이면서 1천권이 넘는 일본 서적을 탐독했던 일본 연구가였던 그가 보여 준 견결한 신념과 태도는 일본 검사로 하여금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찬탄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를 알아주지 않은 것은 오히려 평생 충성을 다한 사회주의 조국이었다. 일본은 소련에서 체포된 자국 스파이와의 교환을 제안했지만 소련은 그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된 날, 문득 20세기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그 숱한 공산주의자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 가운데에는 얼치기도 허다했으며, 공산주의의 탈을 쓴 봉건 통치배들도 있었고, 오히려 그 이상을 파괴했던 피에 굶주린 폭군과 그 졸개들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출신과 배경, 나라와 민족을 넘어서서 인류의 한 발 더 나아간 이상을 위해 몸 바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술 좋아하고 열 여자 마다 않으며 오토바이 타고 동경을 질주하던 자유로운 영혼 리하르트 조르게는 1941년 오늘 바가야로를 외치며 들이닥친 일본 헌병대 앞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거의 접근하고 있었던 일본의 진주만 기습 정보? 소련에 있던 아내? 일본의 애인? 낫과 망치의 붉은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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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헌신했지만, 그 나라로부터 배신당한 조르게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ㅠㅠ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역사를 바꾼 스파이로서의 본인을 알고나 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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