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마지막 3일 -그의 마지막날

in #kr5 years ago (edited)

이순신의 마지막 3일 - 그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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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함대는 곧 혼란에 빠졌다. 일본군은 잡다하게 달려드는 명나라 군선들을 무시하고 진린의 배에 달라붙었어. 진린은 악을 쓰며 병사들을 지휘했지만 이미 등자룡의 죽음으로 한풀 꺾인 상황. 일본 배들 곳곳에서 갈고리가 날아들었고 어둠 속에서 포격은 정확하지 못했다. 읏샤 읏샤 일본군들이 칼을 빼들고 사다리를 밟았고 명나라 군은 공포에 질렸다. 한 명이라도 올라오면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지. 그때 육중한 소리가 나면서 진린의 배에 달라붙은 일본 배 한 척이 깨져나갔다. 이순신의 대장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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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진린의 위기를 보고 진린마저 전사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으리라 판단한 것 같아. 그래서 직접 진린에게로 뛰어들었던 거야. 지자 현자 황자 가능한 모든 총통을 쏘아대고 후퇴할 때 주로 썼던 조란환 (새알같은 포탄으로 밀집된 적을 쏘거나 추격을 막는데 쓰는)을 갈겨대고 불붙은 섶과 나무, 화염병의 일종으로 보이는 화호(火壺)까지 던져 대면서 조선군은 진린에게 달라붙은 일본군을 쓸어 나간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이순신의 칼에 새겨진 명문(銘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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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전멸시켜 조선수군 공포증을 좀 극복하긴 했지만 일본군은 이순신에 대한 공포증만큼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어. 이순신의 대장선이 떨쳐 나서자 다른 조선 수군들의 배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고 과거는 멀리서 포를 쏘아대던 얄미운 조선 배들이 이제는 곰같은 덩치로 때려눕히겠다고 달려들자 일본군은 머지않아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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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과 명나라 함대는 다시 진형을 갖추고 일본함대를 남동쪽으로 계속 몰아 부친다. 북서풍은 한없이 거셌고 일본 배가 하나 불타면 그 불똥으로 여러 배에 불길이 오르는 상황이 됐어. 하지만 이순신은 목놓아 바라는 것이 하나 있었어. “조금만 더 밀어부쳐라.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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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풍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싸우며 기진맥진하던 일본군의 눈에 넓은 바다로 향하는 통로가 눈에 들어왔어. “수평선이노 보입니다. 넓은 바다입니다.” “길이 있으면 빠져나가라데스. 무슨 말이노 필요하소까.” 일본군은 ‘넓은 바다’로 몰려 들어갔는데 곧 여기 저기서 비명이 들려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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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아닙니다! 대해가 아니라 만(灣)입니다.” “들어오지 마라! 여긴 사지(死地)다.” “대체 누가 여기를 들어가자고 했나” 바로 관음포였어. 조선 수군이 매복하기도 했던 남해도 서쪽의 큰 만. 그래서 입구에서 언뜻 보면 수평선이 있는 넓은 바다로 보이기도 하는. 일본군 수백척은 그 만 어귀에서 갈팡질팡한다. 배를 돌리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충돌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모두의 머리 속에는 ‘이제 다 죽었구나.’가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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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머지않아 날이 밝아올 때였어. 조선군에게 당할 대로 당했던 화포 사격의 맛을 또 봐야 할 때가 온 거고 만 어귀에서 글자 그대로 사격장 사격지가 될 판이라. 거기에 등자룡을 잃은 명나라군과 복수심에 불타는 조선군은 상어떼처럼 달려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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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장수들도 마찬가지였어. 포격으로 부수다가는 이내 달려들어 불을 지르고 일본군을 보이는 대로 죽여 버렸다. 그 와중에 조선군 장수들이 해전 사상 최다수가 죽어나가게 돼. 해남 현감 유형은 여섯 번이나 총알을 맞으면서도 지휘를 포기하지 않아. 몸뚱이 여섯 군데에서 피를 흘리며 돌격을 부르짖는 장수들 앞에서 어느 졸병이 꾀를 부리고 겁을 한 조각이라도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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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희생자도 많이 났지. 병사들 뿐 아니라 가리포첨사 이영남. 왕년의 거북선 돌격장으로 수없이 공을 세운 이언량, 고득장, 방덕룡 등 수군 장수들이 판옥선 누각에서 북을 치고 전투를 지휘하다가 집중사격의 대상이 돼 쓰러진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동안 단일 해전으로는 최대의 희생이야. 이건 뭘 말할까? 조선 함대는 승리가 아니라 복수를 위한 전투를 벌였던 거야.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얘기지만 뼈를 베려면 살을 내줘야 하니까. 확실히 죽이려면 다가서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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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포 입구에서는 최대의 격전이 펼쳐졌어.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고 만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일본군과 그를 가로막은 조선과 명나라 함대는 마치 배들 하나 하나 서부의 총잡이들처럼 1:1로 겨루다가 불타고 부서지고 침몰해 갔다, 거의 승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일본군의 조총 집중 사격이 불을 뿜었고 그 총알 중 이순신의 가슴을 꿰뚫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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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본군 댓뽀(조총)의 위력은 이순신도 체험한 바 있어. 임진년 사천 해전에서 총알이 그의 어깨에 박혔으니까. 아마 가슴에 총을 맞는 순간 (겨드랑이라고도 하고) 이순신은 죽음을 직감했을 거야. 이순신이 쓰러졌다. 이건 그걸 목격한 아들 회와 조카 완. 그리고 몇몇 군관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지. 미친 듯이 덤벼드는 일본군을 막고 죽이느라 다른 병사들은 경황이 없었지만 순간 이순신의 좌선은 지휘능력을 잃는다. 북소리도 멈추고 작전을 지시하는 호령도 멎었어.

여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 농담으로도 패러디하는 이순신의 명언이 나온다.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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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맞은 뒤 무슨 연설을 하듯 기나긴 유언을 남기고 죽는 건 영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고 실상 총알 한 방을 정통으로 맞으면 사람은 비명도 제대로 못지르고 절명하는 게 대부분이야. 이순신의 유언은 편안히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던진 소리가 아니라 꺼져가는 생명줄을 붙잡고 마지막 힘까지 쥐어 짜낸 절규에 가까워. 그리고는 이순신은 바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아들과 조카는 아버님 숙부님을 부르다가 목이 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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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군관들도 이순신의 최후를 알았어. 이때 상황은 여러 기록마다 엇갈리지만 큰 흐름은 비슷해. 이순신의 죽음을 숨기고 누군가 이순신을 대신하여 북을 치며 독전을 했다는 것. 아마 그 대역(?)은 있는 대로 북을 세게 두드렸을 거다. 자신의 울음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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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도 전투는 계속됐어. 관음포를 탈출한 일본 함대는 겨우 1할에 불과했어. 거의 9할의 일본 배가 노량 앞바다에 쓰레기가 됐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일본군들이 고기밥이 됐다. 살아남은 일본군들은 그들이 왔던 길 노량해협 동쪽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쳤어. 그 가운데 시마쓰 요시히로도 있었지. 후일 일본의 역사적 전투인 관원전에서 시마쓰 요시히로는 불과 2천 명 밖에 동원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이 노량해전의 타격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이 설은 그리 유력한 설은 아니지만) 괴멸적인 타격을 받은 뒤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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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죽었다. 승전 후 이 말도 안되는 전투와 승리에 들뜬 진린은 이순신의 죽음 소식을 듣고 세 번을 넘어지면서 달려왔다고 해. 평소에도 이순신을 존중했다고 알려진 진린이지만 듣도보도 못한 전투를 함께 치른 전우의 죽음에 얼마나 황망해 했는지를 알 수 있지. 알다시피 사람은 놀라면 다리부터 힘이 빠진다. 그래서 주저앉아 버리는 거고. 소식은 전 함대에게 전파됐다. 승리의 환호는 곧 망연한 침묵으로 그 다음으로는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어. 그건 병사들만이 아니었어. 당시 순천까지 내려와 있던 한음 이덕형의 장계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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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하던 날 식량을 운반하던 인부들도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과 어린아이까지 달려나와 통곡하다가 서로를 위로하니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은 일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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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휘하던 부하들 뿐 아니라 인부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의 어린이와 애들까지 우리 장군님을 외치면서 땅을 치고 울면서, 극락왕생하셨을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다는 거다. 장계를 더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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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순신을 본 적도 없고 말을 섞은 적도 없습니다. 다만 원균의 말을 듣고 재능은 있어도 용맹하지는 못한 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해안 백성들이 입을 모아 그를 칭송하고 진실로 섬기는 것을 알았고 불과 몇 달만에 민가와 군량이 과거의 한산도 (통제영) 수준을 능가한 것을 보고 비로소 뛰어난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덕형은 그제야 알았지만 백성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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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의 거의 모든 백성이 상복을 입고 곡을 했고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해. 남해안에서 고향 아산까지 그 영구가 옮겨지는 동안 백성들은 지나는 고을마다 마을마다 몰려들어 통곡을 했다고 해. 그 외침이 울컥할만큼 슬프다. “"참말이지 공께서 우리를 살리셨는데, 이제 공은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그렇게 울부짖는 백성들 때문에 관이 움직이지 못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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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순신이 박정희 대통령 등을 위시한 이들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과대 평가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동시에 “이순신의 공이 아니라 손바닥이 벗겨지도록 노를 젓고 목숨을 걸고 싸운 병사들의 공”이라는 말에는 반만 동의한다. 아무리 병사들이 열심히 싸워도 원균은 그 병사들을 죽였고 이순신은 살렸는데 어떻게 그 공을 별 것 아니라 할 수 있겠니. 동시에 그의 훌륭한 점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게. 워낙 다 아는 얘기니까. 하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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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승리는 이순신의 뛰어남만으로 이룩된 건 아니야. 당시 조선이 허약하게 무너지기는 했다 해도 국가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었고 전쟁 다음 해쯤 되면 17만 명의 병력을 동원할 만큼의 역량도 있었고 개인화기를 제외한 각종 화력, 군사적 기술면에서도 일본군을 앞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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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순신은 이러한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유능함을 발휘한 사람이었어. 무슨 말인가 하면 국가적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용이 파산 상태에 이르렀던 구한말이라면 이순신이 열 명이 나왔다 한들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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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이순신을 기다린다. 그런 ‘위인’을 기다리고 그 영웅담에 취해 멸사봉공 진충보국하면서도 백성을 위하고 그러면서 백성들 일을 알아서 다 해결해 주는 정치인을 열망하고 툭하면 혜성과 같이 나타나는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고 바램을 맡기지. 하지만 이순신은 정도령이 아니라 사람이었어. 단지 그 시대에 충실함으로써 그 시대를 넘어선 사람이었을 뿐이었지. 사실 가전사 끄적이면서 노량해전 얘기는 할까 말까 했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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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래도 이순신의 마지막 날은 되짚어보고 싶었어. 조금은 불경스럽고 더 많이 식상할지라도 말이지.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 이순신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 맞을 수도 있지만 뭣보다 당시의 조선이 빚어낸 작품이고 불꽃이라는 것. 영웅도 위인도 감나무에 매달린 감은 아니어서 그 밑에서 입벌리고 있는다고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결국 우리가 노력해서 따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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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봤습니다. 울컥하네요
당시 조선의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고 전쟁 다음 해에 17만 명의 병력을 동원할 만큼의 역량도 있었다니 ....

그때 조선이 개혁으로 나아갔다면 역사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죠. 그러나 조선은 극단적인 보수화로 나아가므로..... ㅠㅠ

아 정말 잘 봤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뭔가 멋진 감동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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