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와 7인의 여포로

in #kr3 years ago

7인의 여포로와 설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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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그마는 도전받습니다. 그 도그마가 얼마나 옳든 그르든 그것과는 관계없습니다. 그 도그마가 얼마나 신성한 가치가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과도 무관합니다.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든 독립운동에 대한 폄하이든 이순신에 대한 모욕이든 세종 대왕에 대한 불경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그것이 사실이면 수용되고 거짓이면 산산이 가루져 공중에 흩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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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게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된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밀턴의 말입니다. 하지만 대개 권력자들이나 도그마의 엄중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은 이 말에 반대합니다. "철모르는 소리! 그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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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심지어 자신들의 도그마에 그리 위배되지 않는 주장이나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몽둥이를 드는 일도 발생합니다. 그 배경은 역시 도그마입니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의 절대화이고, 그 절대성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넘치는 정의감으로 응징에 나서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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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예가 1964년 12월 18일 반공법으로 입건된 이만희 감독에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가 반공영화로 만든 <7인의 여포로>에서 인민군이 "멋있게 나왔다는 이유" 그리고 "인민군이 여자들 성폭행을 막기 해 중공군을 쏘아 죽이는 설정 자체가 불온"하다는 이유였다. 당시의 반공 도그마는 고작 그 정도의 설정조차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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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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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때 "빨갱이도 싫고 이기붕도 싫다."고 데모하던 나라고, 80년 광주에도 김일성 오판말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은 나라입니다.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수시로 제2의 한국전쟁을 가상하고 살던 나라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신성불가침의 도그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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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절대 '교리'는 도전받게 돼 있고 희화화될 수 있을 뿐더러, 스스로의 내부에서 자기 분열을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7,80년대의 불바다가 이뤘던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가 도그마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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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폄하할 수도 있고 왜곡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이상, 그 삐딱선들은 궁극적으로, 장기적으로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 희생자들의 아픔이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것을 좌시할 수 있느냐. 일면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의 비참함을 겪은 이들의 고통 역시 살아 있는데 우리는 그들과 다른 생각을 나누면 안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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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검열하는 것하고 자발적으로 국민들이 중단과 금지를 호소하는 것과 같으냐 하는 문제 제기도 있겠습니다만, 그 기저와 발상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번 설강화 사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은 쉽사리 '민의'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더하여 민의 또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건전한 민의를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민의'에는 찬성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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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여포로 사건> 한 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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