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

in #kr6 years ago

노회찬 반올림.jpg노회찬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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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밑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한 해가 가는구나 장탄식을 하며 신문을 뒤적이던 저는 한 기사에 눈이 못박히고 말았습니다. 어느 대학의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송년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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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가 없어서, 정말로 차비가 아까와서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형편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그 처지에 누구를 돕는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겁니다. ‘제 코가 석 자’인 처지에 누가 누굴 돕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역시 신문에 나올 만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3년간이나 노력해 왔던 학생이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을 도와 학교 당국과 싸움도 하고 협상에도 관여했던 그는 마침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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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다음 순간 그는 길어질 대로 길어진 자신의 코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도무지 등록금을 내지 못할 처지임을 깨달은 겁니다.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돈 나올 구멍은 없었습니다. 또 휴학을 해야 하나 한숨을 쉬던 상황.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나섰습니다. 그 박봉을 쪼개고 파지 팔아 모은 돈을 보태어 1백만원을 마련했고, 아주머니들이 막간을 이용해 차린 송년회 자리에 문제의 학생을 초대하여 전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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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은 학생은 제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지요, 박수를 치는 청소 노동자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은 학생이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학생에게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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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역사의 퍼즐을 보게 되지요. 자신의 어려움만큼이나 남의 어려움을 살필 줄 알았던 한 아름다운 청년과 자신들을 도왔던 이의 어려움을 저버릴 수 없었던 아주머니들이 어우러지면서 작은 역사, 작지만 큰 역사, 서로의 인생에 지워지지도 않고 잊혀지지도 않는 연대의 아로새김의 역사를 맞춰 가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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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평생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그와 함께 했던 3년을 망각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 작은 개인의 기억들은 사회적 기억으로 승화될 것이고, 때로는 좌절하고 더러는 기념되면서 역사라는 거대한 돌탑의 일부를 이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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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님. 아니.... 어제 유시민 작가가 그러더군요. 한 번도 못 그래 봤는데 다시 만나게 되면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거기에 용기를 얻어 저도 노회찬 선배님이라 불러 봅니다. 형이라고 부르기엔 제가 너무 파릇파릇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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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원님이 그런 거에 애써 둔감한 거 압니다. 언젠가 우연히 합석하게 된 술자리에서 학교 후배라고 했더니 아 네~~ 하고 끝내 버리시던, 보통 아 몇학번이에요? 하면서 그럼 말 놔도 되겠네 하는 퉁침과는 전혀 관계없이, 소 닭 보듯하던 그 모습 기억하는데 굳이 학연 따질 건 없죠. 뭐 그래도 이젠 나무라지도 못하실 테니 제 맘대로 불러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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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선배님. 선배님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건 선배님이 참으로 많은 퍼즐들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 처음 세브란스에 오시던 날, 그나마 짧은 시간 안에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휠체어에 탄 한 젊은 여성이 너무 서럽게 울면서 빈소로 오는 걸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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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는 느낌은 그런 거지요. 아이고 데이고도 아니고 엉엉도 아니고 그저 헉헉거리면서 눈물이 줄줄도 아니고 간헐천처럼 솟구치면서 가끔 어억어억 소리를 내는. 아마 그녀에게 선배님은 뭔가 퍼즐 조각을 줬던 거겠죠. 거기에 맞춰서 퍼즐 조각을 찾고 하나 하나 완성해 가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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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장애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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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돌아가신 뒤에 선배님은 그 퍼즐을 참 많이도 뿌리고 다니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 반올림 식구들, 장애인들, 그리고 각종 노조원 조끼 입은 사람들, 그리고 선배님이 미지막 메시지를 준비해던 KTX 여승무원들...... 그 모두에게 퍼즐을 뿌리셨잖습니까. 그들이 가슴을 치고 헉헉거리면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신음같은 인사를 토하게 만드신 분이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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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이 가셨어도 그 퍼즐들은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게 퍼즐 조각들을 맞춰 더 큰 덩어리가 되고 또 다른 덩어리와 얽혀져서 성채를 쌓고 보루를 만들겠죠. 선배님은 가셔도, 그렇게 멈추셔도 그 퍼즐들은 팽팽 살아 움직이면서 이 사회 곳곳에서 짝 맞는 조각들을 찾아가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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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회 영결식에서 선배님을 기다리는 청소 노동자들을 보면서 또 한 번 울었습니다. 처음 국회 촬영을 갔을 때 경을 칠 뻔한 일이 있습니다. 위풍당당한 국회의 중앙 계단, 그거 국회의원만 오르내리는 거라면서요. 일반인들은 뒤로 돌아서 후문으로 들어가는 거라더라고요. 의경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쫓아오는데 쪽팔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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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체 높은 국회의원의 장례를 맞아 단정히 청소복 차려 입은 아주머니들이 두 손 모으고 서 있는 모습에 저는 또 한 번 눈물 흘렸습니다. 선배님은 거기도 퍼즐을 뿌려 놓으셨던 거군요. 그분들이 자발적으로 선배님의 마지막을 배웅하고자 서게 만들만큼 튼튼하고 견고하게 퍼즐을 맞춰 놓으셨던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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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청소노동자.jpg

참 큰 인물을 허무하게 보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바뀌었다고 기고만장, 대한민국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헛소리질하는 정치자영업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저질인 송충이가 금강송을 잡아먹었다는 사실에 땅을 치고 발을 구르게 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제를 돌릴 수 없듯 선배님이 다시 이 땅에 발 디딜 수는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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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봅니다. 청소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대학생, 그리고 그 대학생의 등록금을 위해 박봉을 쪼개 봉투를 만들었던 노동자들의 기억 속에서, 선배님은 백 배의 씨앗을 뿌리고 천 개의 퍼즐을 건네고 가셨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마 꽃을 피우고 강고하게 연결될 겁니다. 그렇게 믿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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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할 일이 평생 정해져 있다는데 그걸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하셔서 오늘 이렇게 허무하게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좀 느긋하게 하시지, 좀 게으르시지, 탄식도 나옵니다만 돌이킬 수는 없는 것.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세요. 선배님은 멈추었다고 하지만 선배님이 건넨 퍼즐들은 맞춰질 테니까요. 선배님은 끝났다고 하지만 선배님의 삶은 결코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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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 땅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투명인간들을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 사람의 고마움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서 있는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 선배님을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해 줄 겁니다. 그게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온 과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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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세요 선배님. 이제 마음의 상복을 벗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또 일상을 시작해야죠. 그래도 인사는 많이 남습니다. 선배님이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선배님이 아쉽습니다. 선배님이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선배님을 더 배워야 하는데 왜 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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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습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릅니다. 안녕히 가세요. 돌아보지 말고 가세요. 좀 편히 지내세요. 여긴 남은 사람들이 선배님 퍼즐을 맞추면서 살아갈 겁니다. 신경쓰지 말고 쉬세요. 이미 여기서 할 만큼 한 게 아니라 못할 일까지 다 하셨잖아요. 부디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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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댓글 2개 생각나서 남깁니다.

(미리 안내 드립니다.
다운보팅해서 숨기려 한다면, 끊임없이 재생 될 것입니다.
찬반 양론을 보면서,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서로 평화롭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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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찬반양론이네요 물론 댓글을 읽진 않았습니다^^

찬반 양론을 공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다른 매체들에 비해서 최대의 장점으로 보입니다.

종북 간첩들의 스팀 장악 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 완벽하게 분쇄될 것임.

--

모든 글 읽을 필요는 없지요.
각 독자의 자유 결정 사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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