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신약성서

in #kr5 years ago

전태일의 일기 –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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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청계천에서 한 노동자가 노동 조건 개선을 호소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는 뉴스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전태일의 분신 뉴스가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 11월 14일 경향신문은 사회면 톱이 아닌 짤막한 기사로 노동자 전태일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있고 조선일보는 그 반도 안되는 지면을 할애했으며 동아일보는 좀 크게 싣긴 했지만 사회면 톱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태일의 외침이 점차 세상 사람들의 귀를 뚫고 알려지면서 세상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가 된 것 중 하나는 전태일의 일기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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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사망 후 빈소는 북새통이었습니다. 동료 노동자들,추모객들,공무원들,경찰들,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혼란 그 자체였죠. 당시 주간조선의 2년차 올챙이 기자 이상현은 그 악다구니 속에서 뭘 어떻게 할지 몰라 줄담배만 피우다가 누가 문상을 왔나 문상객 명단이라도 보자 하고 조의금 노트를 뒤적이게 됩니다. 깔끔한 새 노트가 아니라 누군가 쓰다 남은 푸른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트였죠. 그냥 하나 새거 살 돈도 없나 혀를 차던 이상현 기자는 그 노트를 들추다가 묻습니다. ”이게 뭐요?“ 그러자 조의금 받던 전태일의 동료가 대답합니다. ”태일이 일기장이에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현 기자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악명 높던 동대문파 소매치기보다 더 빠른 솜씨로” 일기장을 움켜쥐고 달려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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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상현 기자는 세기의 특종을 했습니다. 그 어떤 특종보다도 인간적이고, 감동적이고, 그 후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 대한민국 현대사상 최대, 최상의 특종이었다고나 할까요. 제 개인적으로 이 ’발견‘은 특종을 넘어서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사해 문서‘였고, 전태일의 일기는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문익환 목사의 표현처럼 ’전태일이야말로 예수‘임에 동의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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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장렬한 죽음으로서가 아니라 그 치열한 삶으로 기억돼야 할 것 같습니다. 서 있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건만,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간이건만 그는 자신보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둬 본 적이 없었고, 그 시선에서만 멈춘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피 토하고 시들어가는 ’평화시장의 동심‘들을 위하여 그는 주민등록증 가지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그가 ’인간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계획하면서 그를 이룰 초기 자본을 갈구하면서 한 말에 저는 소름마저 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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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력이 없으므로 대학 동창이 없다. 또한 집안 친척들 중에도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댈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나의 가진 것 중에서 사회에 내놓을 것이라고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즉 한쪽 눈을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눈을 사회에 봉사하고 나는 사회로부터 자금주를 소개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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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은 참으로 바빴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절박하게 쳐다보고 이글거리는 분노를 내뿜던 그의 눈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눈을 정말 아낌없이 사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970년 3월 10일, 그러니까 그가 불꽃이 되기 8개월쯤 전 중앙일보에는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한 청년의 편지가 날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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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2월 23일자 중앙일보에는 연세대 음대 작곡가와 성악과를 졸업한 시각장애인 둘과 그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 선배의 미담이 실려 있었습니다. 전태일은 그 기사를 읽고 자신의 눈 하나를 기증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던 겁니다. 그런데 그 편지 내용이 마음 한편을 내려앉게 만듭니다. “발전해가는 조국 건설의 웅장하고 믿음직한 여러 아름다운 실제들을 (그분들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짓밟히고 좌절하고 꺾이고 벽을 문이라고 두드리면서도 전태일은 조국의 발전과 ’아름다운‘ 현실을 보여 주고 싶어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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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 보는 소리‘라고 치부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태일은 그럴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의 짧은 인생에서 그는 꿈을 꾸었으되 비현실적인 적은 없었고, 수많은 말을 남겼지만 빈말로 허공에 날린 적 또한 없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라면 시다들에게 버스비로 풀빵 사주고 수유리까지 걸어가지 못합니다. 돈 없어 자기는 굶으면서도 나이 어린 여공들 감자탕 사먹이고 주인이 너도 먹으라고 기껏 내미는 밥을, 시다들 무안할까봐 “나는 먹었다.”고 애써 손 내젓지 못합니다. 보면 볼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전태일은 우리 사이에 온 예수였다는 생각이 머리를 감아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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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은 전태일 추모가입니다. 이 노래를 처음 배울 때 선배에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노래 끝이 이상해요. 그날이 오면~~~~ 이건 끝나는 느낌이 아니잖아요 도 도 레 레 미...... 이러면.” 그러자 질문을 받은 선배가 이런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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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와도 그날은 끝나지 않는다. 그날은 항상 현재진형이다 뭐 그런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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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석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다리는 그날은 있을 겁니다. 그날이 오면 짧았던 젊음도, 피맺힌 그 오랜 기다림도 헛된 꿈은 아니게 되는 날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래도 또 다른 ’그날‘이 우리를 기다리겠죠. 오늘은 전태일의 날입니다. 이날을 앞두고 전태일의 동상이 경찰에 포위된 모습에 또 한 번 서글픔을 곱씹으며 <그날이 오면>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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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태일은 그 작은 눈을 반짝이며 오늘의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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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1월 11일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되는데 11월 13일은 전태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넘길 수 없다는 아내의 권유로 날짜 맞춰 올리는 전태일의 이야기 유튜브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시대의 신약성서> 좋아요와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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