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 이반의 광기

in #kr5 years ago

1581년 11월 16일 뇌제 이반의 광기

러시아에는 체첸이라는 이름의 지방이 있다. 이 지방의 피의 역사를 주워섬기자면 그것도 이틀거리 일이다. 가끔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인질극이나 테러의 주인공이 이 체첸 사람들일 때가 많고, 러시아 군대가 체첸 영내에서 수시로 작전을 펼치고 있는 바, 이런 구도는 수백년 전부터 면면히 내려온 것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아두자. 그런데 이 체첸 지역의 수도는 ‘그로즈니’다. 러시아 말로 하면 ‘무서운 곳’ 정도가 되겠다. 오죽하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마는, 이 이름이 도시가 아니라 사람에게 붙으면 그 위인은 또 어떤 위인이겠는가. 바로 그 사람이 러시아의 짜르 이반 4세다. “이반 그로즈니”가 영어로 “이반 더 테러블”이 됐고 이걸 이름 짓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뇌제(雷帝)이반’으로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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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제 이반은 수백 년 간 지속된 “타타르의 멍에” 즉 몽골의 러시아 지배를 종식시킨 영웅 이반 3세의 손자였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일찍 죽은 탓에 몹시도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야르라고 불린 귀족들은 공식 행사에서는 머리를 조아렸지만 따로 만나서는 가련한 어린 아이를 윽박지르기 일쑤였고 아예 외딴 성에 가둬 두기도 했다. 어린 이반은 절친한 친구 하나 지켜주지 못해 그 친구가 모스크바 광장에서 생가죽이 벗겨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고립무원의 왕이었다. 외로움과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의 탈출구는 대개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학대다. 이반은 병아리나 강아지같은 동물들을 높은 성 망루에서 떨어뜨리는 놀이를 즐겼고 13살쯤에는 벌써 사람도 죽인다. 이반이 익힌 잔인함과 잔임함이 가져다 주는 비정상적인 쾌락은 그의 세포 속에 깊이 새겨진다.

17세 이후 친정에 나선 이반은 ‘모스크바 대공’의 칭호 대신 이후 러시아의 황제의 칭호가 되는 ‘짜르’를 사용한다. 할아버지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의 딸을 아내로 맞으면서 자신도 ‘시저’라면서 러시아 식 발음의 ‘짜르’를 호칭으로 삼은 적이 있긴 하지만 공식화한 것은 이반이었다. 일단 짜르 이반 4세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군주였다. 러시아 동부에 남아 있던 타타르의 유산인 카잔칸국을 격멸시켰고 볼가강의 수로를 장악하여 러시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귀족들의 횡포를 억제하고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세포 깊숙이 드리워져 있던 광기가 스멀스멀 돋아나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부인 아나스타샤의 죽음이었다. 이반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고 아나스타샤 역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반을 포근하게 감싸며 왕으로서의 중심을 잡고 그가 지닌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죽었던 것이다. 그것도 귀족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반은 ‘이반 그로즈니’의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이 설을 굳게 믿은 이반은 연루(?) 가능성 있는 자들이나 그렇다는 소문이 퍼진 자들을 모조리 죽인다. 하지만 그건 이 유능한 살인자의 행적의 첫발에 불과했다.

1864년 이반은 갑자기 왕좌에서 사라진다. 졸지에 왕을 잃은 러시아는 혼란에 빠지고 도대체 폐하가 어디 계시냐는 질문이 나올 즈음 그의 거처가 밝혀진다. 귀족이고 평민이고 죄다 그리로 몰려가 환궁을 청원했을 때, 그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건다. 자신을 위한 특별 영지와 ‘반역자를 다룰 전적인 권리’ 이반은 자신만의 영지에서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근위대를 창설하는데 ‘오프리츠니크’라 불린 이 근위대는 말에 두 가지 상징물을 달고 다녔다. 하나는 빗자루. 하나는 개의 머리의 휘장. 빗자루는 반역자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뜻이었고 반역냄새를 맡는 임무를 상징하는 개였다. 그들은 가히 빗자루처럼 러시아를 쓸고 다녔고 개처럼 사람들을 물어뜯었다. 이반 4세가 즐긴 시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소녀들을 발가벗긴 뒤 손을 붕대로 감고 닭을 잡게 한다. 그 와중에 궁수들을 늘어세우고 소녀들을 쏘게 하는데 화살의 먹이가 되기 전에 닭을 잡는 소녀는 살려주는 경기.

그 최고의 광기는 역시 러시아의 화가 레핀이 그린 “1581년 11월 16일 이반 그로즈니와 그의 아들”이라는 그림 속에 구현된다. 러시아에서는 옷을 세 겹 이상 입는 것이 예의였고 옷 하나 걸친 것은 속옷 격으로 무례한 차림이라고 여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만삭의 왕세자비가 그 불편한 몸 때문에 그 예의를 지키지 못했고 뇌제 이반은 그가 들고 다니던 왕홀로 왕세자비를 구타한다.

이에 왕세자가 항의하여 언쟁을 벌이는 와중에 이반은 아들을 때려죽이고 만다. 레핀은 광기에서 깨어난 한 노인이 자기가 한 일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순간,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한 아들의 비참한 얼굴, 유능한 왕이었지만 또한 사람을 죽이는 데에도 천재적이었던 이중적인 인물의 딜레마를 세심하게 포착하여 화폭에 담는다. 검은 옷의 왕, 황금색 옷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왕자. 내 보기에 이 그림의 핵심은 이반의 눈이다. 자신의 잔인함을 가장 먼저 드러냈으되 그 결과에 대한 낭패감 또한 쏟아져나올 것 같은.

꼭 그래서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레핀의 이 그림 이후 뇌제 이반, 무서운 짜르 이반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바뀌었다고 한다. 잔인한 것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자식을 죽인 광기 앞에서 스스로 어쩔 줄 모르는 한 가련한 인간이자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실감나게 대중에게 파고든 것이다. 그 포악함보다 러시아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왕으로서 인정하는 분위기도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스탈린 치하에서 에이젠슈타인이 제작했던 <뇌제 이반>은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아 있거니와, 스탈린은 에이젠슈타인에게 스탈린다운 지침을 내린다. “짜르가 잔인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 주라.”

다시 레핀의 그림을 본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광기가 있다. 스스로의 통제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모를만큼 과격하고도 기이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때 자신의 눈을 보고 싶다면 이 그림의 이반의 눈을 보면 된다. 하지만 또 이반의 최후에는 엇갈리는 이야기가 전한다. 궁중의 예언자들에게 “내가 언제 죽을지 알아맞춰라.”고 닦달을 하며 광기를 계속하다가 죽음을 맞았다는 쪽과 아들의 죽음 후 참회하며 수도사처럼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그 눈에 다시 광기가 스며들지 회개의 더운 빛이 깃들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레핀의 그림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저런 눈을 가질 일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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