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길었던 날
일본의 가장 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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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쇼 코너리, 리처드 버튼, 로버트 미첨, 헨리 폰다 등 초호화 배역진이 나왔던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의 원제는 'The longest day'다. ‘가장 긴 날’ 이 말의 저작권자(?)는 ‘사막의 여우’ 롬멜이다.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해 거대한 해안 방어망을 구축했던 이 명장은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 “the first 24 hours of the invasion will be decisive...the fate of Germany depends on the outcome...for the Allies, as well as Germany, it will be the longest day..” (침공 첫날 24시간이 결정적이 될 것이다...독일의 운명이 24시간의 결과에 달려있다...독일 뿐 아니라 연합군에게도 가장 긴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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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The longest day’는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종종 도래한다. 1950년 6월 25일 별안간 터진 전면전에서 악전고투한 사람들에게 그날은 엄청나게 긴 하루였을 것이고 1987년 6월 10일도 뜨거운 거리의 사람들도 그랬으리라. 2차대전 당시 일본 수뇌부들에게 8월 14일은 무척 기나길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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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고 같은 날 소련군이 만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군부의 미치광이들은 1억 옥쇄를 외치며 항전을 고집했다. 1억 옥쇄 운운하는 소리를 범연히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당시 일본 인구는 7천만 정도였기 때문이다. 즉 조선과 대만 사람 전부를 갈아넣자는 굉장한 광기였다. 그러나 사정이 사정이었으니만큼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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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뇌부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원폭을 두 방 맞고 또 하나의 대국 소련까지 적으로 돌아선 판에 전쟁을 계속하자는 건 누가 봐도 광증이었다. 하지만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조선 도공의 후예로 박무덕이라는 조선 이름도 있었던, 그를 평생 콤플렉스로 지녔던)도 독을 품고 있었다. “포츠담 선언을 즉시 수락합시다.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군부의 고집불통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항전을 주장했다. 2.26사건 등에서 보듯 일본의 광기어린 군인들은 민간인 관료 따위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었던 바, 도고 시게노리의 항변은 결사적인 저항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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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언쟁과 호통과 고함이 오갔지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자는 쪽과 항전하자는 쪽은 그래도 동수(同數)였다. 스즈키 간타로 수상이 천황에게 고개를 숙인다. “천황 폐하. 성단(聖斷)을 내려 주시옵소서.” 천황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천황은 본디 다 결정된 것을 ‘승인’하는 사람이지 의견을 내는 쪽이 아니다. 천황이 허수아비여서가 아니라 결정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을 꺼려해서다.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해군 대신은 수상에게 속삭인 바 있었다. “다수결로 하면 안됩니다. 폐하의 성단이라는 명분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히로히토는 이 미련한 균형을 허문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외무대신의 안(案 )에 찬성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의 표정이 어땠을까 싶다. 천황의 의견은 애매한 구석이 없었다. “ 본토 결전에 돌입하면 어떻게 되는가.....일본 민족은 모두 죽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무슨 방법으로 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견디기 어렵고 참기 어려운 것은 알지만 이 전쟁을 그만 둘 결심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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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결전을 주장하는 군부 미치광이들을 달래기 위해서 외무성은 “천황의 국가통치 대권을 변경하는 요구를 포함하지 않는다” 는 것을 조건으로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정부에 타전한다. 미 국무장관 번즈는 중국과 소련의 동의를 받은 ‘번즈 회답’을 보내게 되는데 여기에 따르면 “항복 후 일본에 대한 통치권은 연합군최고사령관의 ‘제한 하’(subject to)에 둔다는 것을 명시하고 천황의 통치대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패전 후 일본 정부의 형태는 ‘일본국 국민이 자유롭게 표명하는 의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여 천황제를 존속시켜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일본의 패전과 천황의 전쟁 책임>,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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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subject to'의 해석을 두고 군부 강경파가 반발한다. 외무성은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제한 하에 둔다’라고 표현했지만 영일사전 좀 뒤졌는지 일본 군부 강경파들은 “예속된다.”는 뜻이라며 길길이 날뛴 것이다. 하지만 8월 14일 항복 발표 하루 전날, 천황은 다시금 항복의 의사를 밝히고 외무성은 천황의 재가를 받아 포츠담 선언 수락 사실을 연합국 쪽에 통보한다. 즉 8월 14일에 일본은 항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황이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이 충성파 미치광이들이 천황을 거역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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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신 아나미 고레치카는 하타나카 소좌를 비롯한 일단의 장교들의 방문을 받는다. 쿠데타를 일으켜 내각 관료들을 쓸어버리고 본토결전에 나서자는 것이었다. 아나미는 거부한다. “성단을 거부하는 자는 내 시신을 밟고 가라.” (위 박진우 논문) 그리고 그는 자택으로 돌아가 자결한다. 그러나 미치광이들은 그가 시신이 되기 전에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데타에 필요한 것은 우선 병력이었다. 근위 1사단장 모리를 찾아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모리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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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메이지 신궁에 참배하고서 마음을 새로이 정하겠다.” 즉 내일이면 상황 끝이니 버텨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미치광이들은 여지가 없었다 모리 사단장의 속내를 알아채고는 가차없이 권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그 참모까지 죽여 버렸다. 비겁한 자식..... 그들의 머리 속에서 모리는 ‘대화혼’을 저버린 ‘변절자’였으리라. 소련은 2천만 정도 죽여서 독일을 이겼는데 우리도 그 정도 죽으면 이길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두뇌에 들어찬 우동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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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버린 사단장의 명령서를 위조하여 미치광이들은 근위 1사단 병력을 동원해 황궁을 장악하고 항복 테이프를 찾아 눈에 불을 켠다. 그러나 황궁은 정전으로 어두웠고 궁내성 깊숙이 감춰진 테이프를 찾지 못했다. 또 한 패의 충성파 미치광이들은 수상 관저를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새벽이 밝아오면서 사람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쿠데타 군의 동참 제의를 받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호통쳐 돌려보냈던 동부군관구 사령관 다나카 시즈이치가 미치광이들에게 원대복귀를 명령한다. 안 그러면 쓸어버리겠다고. 자기네 사단장의 비참한 최후를 들은 근위사단 병력들도 속속 제 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서푼도 안되는 미치광이들 몇 뿐이었다.
하타나카 소좌는 방송국에 뛰어들어 자신의 뜻을 밝히는 연설이라도 하겠노라고 설쳤으나 이마저 방송국 직원들의 목숨을 건 사보타지에 막힌다. “아 참 방송을 모르시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니까요.” 간밤의 일을 보고받는 히로히토가 몸소 “병사들을 설득하겠노라.”고 나서자 하타나카 등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냥 제 손으로 방아쇠를 당겨 제 머리에 총알을 박을 밖에. 아니면 칼로 제 배 따고 거품 물 밖에. 8월 14일에서 15일로 이어지는 날은 그렇게 길었다.
영화 <일본의 긴 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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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 그리고 항복에 이르는 기간 일본인들이 보여 준 국가적 광기는 실로 지대한 역사적 교훈이라 할 것이다. 자신들에 대한 확신과 그에 거스르는 이들에 대한 적의로 무장한, 그리고 누군가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한다며 목숨을 건답시고 설치지만, 결국 그 충성 때문에 충성의 대상을 거역하게 되고, 자신들의 충성의 대상을 ‘참기 힘든’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던 오소리같이 미련한 이들의 질주가 어떤 과정을 겪어 무슨 결말을 맞는지는 정확하게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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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들의 주동자 하타나카 겐지는 근엄한 폼은 있는 대로 잡다가 죽었다. 그가 남긴 시. “요시다 쇼인 선생의 뒤를 좇아 자결하고, 무사시의 들판에서 썩어가고 싶도다. 적(敵)으로 인해 내 영혼도 나라의 도(道 )도 잠시 멈출 수 있지만 그러나 백 년 후에는 반드시 도와 함께 다시 태어나리라. 호국의 신으로 나라와 함께 반드시 다시 태어나리라.” 모름지기 미치광이들은 자신의 영혼 뿐 아니라 나라의 도를 망치는 법이다. 아울러 자신이 충성을 다하는 대상의 콧구멍에 흙을 뿌리게 된다. 그래서 뭔가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충성을 돌아봐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나친 건 아닌지. 엇나간 건 아닌지. 일본 현대사의 가장 긴 날 중 하루가 남긴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