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짓에 갇힌 사랑 - 록 허드슨의 슬픔
록 허드슨 , 클로짓 안에 갇힌 사랑
<사랑도 발명이 되나요 >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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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은 명배우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떠들썩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추모특집’으로 추억의 명화들을 무더기로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지요. 요즘처럼 영상 매체나 콘텐츠가 넘쳐나지 않았고 극장 개봉이 끝난 영화들을 TV에서 보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옛날 영화들을 감상하려면 <토요명화>나 <명화극장> <주말의 명화> 시간만 손꼽아야 했던 시절, <자이안트> <왕과 나> <9월이 오면> <황야의 7인> 같은 영화들이 소나기처럼 브라운관에 쏟아졌던 며칠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배우들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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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당시 돌아간 헐리웃 스타들이 누구였냐구요. 10월 2일에는 록 허드슨이 죽었고 10일에는 대머리의 제왕 율 브리너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율 브리너는 폐암으로 죽었는데 시한부 삶을 살던 1985년 10월 초, 자신의 사후에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금연 캠페인을 촬영합니다. 거기에서 부쩍 초췌한 모습의 율 브리너는 이렇게 얘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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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담배만은 제발 피우지 마세요. 여러분이 지금 이 광고를 보고 있을 때 저는 이미 폐암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주변 친구들이 슬슬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던 중3 때였던지라 학교에서 율 브리너의 금연 캠페인을 틀어 주었습니다. 그때 한 녀석의 멘트는 무척 짖궂었지요. “율 브리너 말하면서 손을 책상 밑으로 넣어서 더듬거리면서 뭘 찾고 있재? 그거 담배 찾는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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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 브리너는 담배(?) 때문에 폐암으로 죽었다지만 록 허드슨의 죽음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름의 질병 AIDS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지요. 아마 제 귀에 AIDS라는 이름이 들어와 박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이안트>에서 처음 봤던 조각 미남은 그의 친한 친구였던 도리스 데이의 토크쇼에 송장같이 야윈 병자가 되어 출연한 바 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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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무엇이 사람을 저렇게 만든단 말인가. 약도 치료법도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AIDS에 관한 음산한 이야기들은 공포를 더욱 부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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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허드슨의 본명은 로이 해롤드 쉬어러 주니어. 카센터 직원이었던 아버지와 전화교환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미국 하층 노동자들 삶이 대개 그랬듯 ‘단란한’ 가정에서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록 허드슨이 대사를 못 외워서 고생했다는 후문을 보면 부모에게서 총명한 머리를 물려받은 것 같지도 않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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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록 허드슨의 부모는 그에게 그의 삶의 굴곡과 단점과 약점을 너끈히 덮고도 남을 만큼 창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바로 그의 외모지요. 193센티미터의 키에 아폴론 신(神) 같은 얼굴, 그리고 남자다우면서도 달콤한 ‘네 귀에 캔디 같은’ 목소리까지.
록 허드슨도 자신의 외모를 믿고 헐리우드에 도전합니다. 주중에는 트럭운전사나 정비공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주말만 되면 영화사 앞에 트럭을 세워두고 영화사를 기웃거리고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박았다지요. 그러다가 캐스팅 전문가 헨리 윌슨에게 발탁돼 ‘록 허드슨(Rock Hudson)’이라는 새 이름으로 배우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지브롤터의 바위(Rock)과 허드슨 강(River Hudson)에서 딴 이름이니 가명 치고도 무척 거창한 가명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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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가 어찌 외모만으로 완성되겠습니까. 록 허드슨의 데뷔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첫 촬영 첫 대사 때 NG를 38번을 냈다고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재연 프로그램 연출자 노릇 하던 즈음, 어느 단역배우에게 “너 죽고 싶어?” 이 멘트 하나를 맡겼다가 장장 두 시간을 잡아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 시간 동안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엉성하기 짝이 없는 “너 죽고 싶어?”를 들으며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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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허드슨을 처음 데뷔시킨 감독도 분통을 가누지 못하는 가운데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저 멀대는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거야. 너 배우 못하겠다. 집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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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서부영화에서 터프한 서부의 사나이 역을 주로 맡았는데 그의 미모는 서부영화에서보다는 로맨틱 멜로물에서 더 큰 빛을 발했죠. <마음의 등불>(1954)에서 대부호의 망나니 아들이지만 사랑 앞에서 지고지순한 남자가 되는 밥 메릭 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낸 록 허드슨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1956년에는 그의 인생작이라 할 <자이언트>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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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손꼽는 추억의 명화로서 <자이언트> DVD를 짬짬이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엘리자베드 테일러의 한창 때 미모와 제임스 딘의 반항적인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록 허드슨의 20대에서 60대까지의 연기를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지요.
미국 동부 미인을 아내로 맞아 자신의 거대한 농장으로 데리고 오는 자신만만한 농장주 젊은 닉은 눈이 시릴 정도의 싱그러움으로 빛납니다. 기나긴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고,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는 키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한 팔로 감싸안는 록 허드슨의 눈빛은 형형하고 자신만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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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자들끼리의’ 정치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고, 차별받는 멕시코인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아내를 만류하는, 완고하고도 촌스런 텍사스 남자이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은 물러섬이 없고 그 사랑 속에 대농장주 닉은 아내에게 되레 동화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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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의 아들이 멕시코인 며느리를 데리고 왔을 때 황망해 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이는 닉. 그러나 어느 날 식당에서 자신의 며느리를 모욕하는 백인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리게 됩니다. 물론 나이를 고려하지 않은 객기였기에 반격을 당해 큰 키가 구겨져서 식당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지만 말이죠.
뭇 여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마초적 미남. 수천 마리의 소떼 속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카우보이. 하지만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서서히 변화해 가는 건실한 남편, 또 자신의 며느리를 모욕한 이에게 서슴없이 주먹을 날리는 시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우직한 매력남 록 허드슨은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수천만 여인들의 가슴을 뛰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광하는 여성 팬들에게 차마 밝힐 수 없는 그만의 비밀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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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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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허드슨의 비밀이란 성적 소수자였다는 거지요. 50년대 미국에서록 허드슨이 이후 어떤 풍파를 겪었는지, 괴롭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신간 <사랑도 발명이 되나요> 책 속에 있어서 이만 줄입니다만.
명색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신문이란 데에서 '동성애자 연쇄살인범 존 웨인 게이시' 를 들먹이며 그가 '(동성애자용) 심리치료를 받았더라면 살인범이 되지 않았을 것' 따위의 언설을 퍼붓는 '의사'의 칼럼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