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총수가 언론인이라면

in #kr4 years ago

김어준 총수가 '언론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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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문제적 인물 가운데 김어준 총수가 있다. 20세기 말 딴지일보를 접하며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따발총처럼 얻어맞았던 기억이 생생한지라 그 천재성에 대한 경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또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나꼼수’같은 신박한 수단으로 사람들의 정치적 무기력의 벽을 무너뜨리고 탐욕스런 정권의 발목에 부지깽이를 내리치던 통쾌함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 여전하다. 그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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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공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그는 이른바 진보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통틀어 손꼽히는 빅 스피커로서 활약하고 있고 공영방송의 마이크를 쥐고 있다. 뭇 정치인들이 그의 방송에 못나가 안달을 하고 불러 주시면 출동하겠다며 신발끈을 붙잡고 있다. 모금 한 번 하면 단번에 수억 원이 모이고 뭔가를 언급하면 실검 랭킹은 금세 수직 상승하여 천정을 뚫는다. 그가 쌓아올린 공은 대개 대중에 대한 영향력에서 기인했으며 동시에 영향력의 극대화로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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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영향력 확대 과정에서 그의 과(過)가 없었을 리 없다. 아니 적지 않다 잡다한 허물들은 접어두자. 성현들도 실수를 하고 고승대덕들도 실덕을 하는데 하물며 ‘세상의 똥꼬를 찌른’ 딴지 김어준, 세상을 향해 수없는 주장을 쏟아낸 총수가 그 정도 허물이 없을리야. 그러나 나는 두 가지 허물은 절대적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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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더 플랜>. <더 플랜>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강용석이나 기타 극우 유튜버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 플랜> 속에서 김어준이 내세운 전문가들도 자신이 성급했거나 오해했다고 이미 인정했지만 그 ‘가설’은 많은 사람들을 쓸데없고 허무맹랑하며 해롭기까지 한 믿음에 빠뜨렸다. 지금의 강용석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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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알만한 대기업 이사님이 나에게 “혹시 강용석 말이 진짜 아닐까?” 라고 조심스레 물어서 입을 벌린 다음, 나는 강용석과 함께 김어준에게 지탄을 퍼붓고 있었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안마신다는데 강용석 앞에서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그러나 동시에 기시감에 젖어들었다. 몇 년 전 더 플랜 보고 와서 부정선거 열변을 토하며 ‘수개표’ 주장 안하면 역적이라고 우기던 똑똑하고 진보적인 내 친구 동그란 얼굴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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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큰 하나,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하나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그의 천재적인(?) 구라들이다. 세월호 선원들이 모종의 거대한 음모 속에서 세월호를 침몰시키기로 결심하고 유심히 해저 지형을 관찰하다가 “지금이다!” 외치며 닻을 기가 막히게 때려 박고 그 닻을 축으로 6천톤짜리 배를 급회전시켜서 자빠뜨렸다는 앵커 침몰설을 비롯하여 그가 펼친 ‘구라’의 해악은 실로 크고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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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다.”는 의심을 믿음으로 전화시키고 ‘진실’이라는 단어를 ‘내가 원하는 진실’의 축약어로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전문 기관까지 동원해서 가져온 결과를 조사위원회가 끝내 수용하지 못하고 ‘복수 결론’을 내밀었던 건 결국 김어준 류의 음모론외 포획된 결과였다. “뭔가 있어.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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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을 펴는 자체가 문제긴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B급 매체, ‘황색 저널리즘의 선두 주자’ 딴지일보 총수가 무슨 말을 못할까. 연예인인데 말이다. 그런데 김어준 총수가 ‘민주시민언론상’을 수상할 때 나는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웃지 못했다. ‘언론인’이라고 시민 사회가 공식 인정한다는 인증샷 아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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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제는 180도로 달라진다. 음모론을 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음모론이 명확하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거나 턱없는 주장으로 판가름났음에도 사과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내 배 째라고 배 들이미는 것은 언론인으로서는 최악이며 최저의 행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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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그 공에 비해서 허물은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역사적인 인물이든 현재적 인물이든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공과’(功過)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 공과는 단순한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고 여긴다. 공만을 들어 과를 덮거나 과오만을 부각시켜 공까지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아울러 공과를 플러스 마이너스로 계산하려 들거나 (즉 어느 쪽이 크냐에 매몰되거나) 한 사람의 행적에 대한 사회적 함의를 무시하는 경향 역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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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는 조중동이 더한데 왜 김어준에게만 가혹하냐고 한다. 역으로 말하면 김어준 총수의 거짓과 왜곡을 밝히지 못하는 이들이 무슨 깜냥으로 조중동의 왜곡을 시비걸 수 있겠는가. 사소한 오해와 허물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자신의 머리 속의 상상과 집착을 통해 허위로 재구성한, ‘언론’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했다. 비교한다면 “광주에 인민군이 왔었다.”고 주절대는 이들과 비슷한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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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인민군설을 주장하는 이들도 어디서 허접한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동원하고 잡다하고 조잡한, 하지만 부분적으로 사실인지 모르나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허위인 ‘근거’들을 조합해 냈다. 단언컨대 세월호 앵커 침몰설은 광주 인민군 설만큼이나 황당하고 비과학적이며,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쁜’ 상상이었다. 그 ‘상상’을 연예인이 해도 문제인데 심지어 ‘언론인’이 하며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스피커 중 하나를 쥐고 있다? 이것은 문제를 넘어서 비극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이랄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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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에게 최승호 PD같은 언론인이 있음에 위안을 삼는다. MBC 사장 정도 지낸 분이면 고고하게 지내시다가 어디 비례 대표나 지역구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도모하거나 품격있는 정부 유관 단체 이사장이나 공직을 맡아 유유자적하시면 될 것이다. 그 분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역할을 자임하며 그리고 누구도 대놓고 하기는 껄끄러워하는 발언을 숱한 맹신도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해 주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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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총수 (나는 그의 천재성에 대한 경의로 가급적 ‘총수’를 붙일 때가 많다)가 황색 저널리즘의 농담따먹기 총수가 아니라 ‘언론인’으로 자임한다면 최승호 PD에게 큰절하고 그 가르침을 경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똥꼬 깊숙이’ 찔릴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똥꼬’도 무척 아프게 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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