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배 단배> 마해송 가다

in #kr6 years ago

1966년 11월 6일 마해송 별세

마해송이라는 사람을 아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화 <바위 나리와 아기별>을 쓴 아동문학가이며 그 외에도 여러 편의 동화들로 식민지의 설움과 전란의 고통 속에 신음하던 어린 영혼들에게 위안을 주고, 또 동화를 통해서 현실의 아픔을 드러내기도 했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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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린이의 권리, 아동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된 데에는 그의 독특한 개인사도 한몫을 한다. 그때는 으레 그랬지만 마해송은 열 세 살 나이에 부모의 강요로 장가를 ‘들여’지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다. 서울의 경성고보로 유학 온 것이 1919년. 3.1운동의 뒷끝이라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학교는 툭하면 동맹휴학을 했고 그때마다 마해송은 경의선을 타고 고향 개성에 갔는데 이 기차간에서 4살 연상의 여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순이라는 이름의 그녀 역시 조혼을 해서 남편이 있었지만 남편은 그녀를 팽개치고 일본으로 가 버린 상처받은 여인이었다. 일본 유학을 떠난 마해송과 순이는 일본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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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순이가 남편에게 호적 정리를 해 달라고 보낸 편지가 문제였다. 뜻밖에 나타난 순이의 남편이 다시 그녀와 결혼 생활을 하겠다고 우긴 것이다. 불행은 절대로 단독으로는 행동하지 않는 법, 조선인 유학생들의 모임이었던 ‘철권단’은 마해송이 공부는 뒷전 연애놀음이나 한다는 규탄의 편지를 집에 보내어 마해송의 집을 뒤집어 놓는다. 완고한 아버지는 마해송의 귓방망이를 붙잡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택연금을 해 버린다. 이 체험을 통해 나온 동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화 <바위 나리와 아기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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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피어난 바위나리는 노래를 부르며 친구를 기다렸지만 찾아오는 친구가 없어 울음을 터뜨렸다. 이 울음이 아기별의 귀에 들렸고, 임금님의 허락 없이 바닷가에 내려 와서 바위나리와 놀았다. 어느날 병이 난 바위 나리를 돌보느라 천상 복귀 시간을 어긴 아기별은 혼찌검이 나고 다시는 바닷가에 내려가지 않겠노라 약속한다. 아기별을 기다리다가 병이 깊은 바위 나리는 그만 바다에 날려 갔고, 아기별은 바위 나리를 생각하면서 울다가 쫓겨나 바다로 떨어지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 여기서 말할 것도 없이 임금님은 마해송의 아버지다. 마해송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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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꾸중으로 지금 집에 박혀 있으나 사랑은 끝내는 이길 것이라는 속셈이었다. 어른은 언제까지나 어린이를 소견 없는 철부지로만 생각하지만, 어린이도 사람이며 생각도 지각도 있으니 사람 대접을 하라는 울부짖음은 문 밖에도 못 나가고 갇혀 있을 때의 애절한 기원이었다.” 장가도 가고 연애도 하고 동거도 했다 하니 나이가 꽤 든 것 같지만 그가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발표했을 때는 방년 1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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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에 평생을 바치긴 했지만 그의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면서도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가 소파 방정환을 아끼면서도 방정환의 “눈물주의”를 비판한 적이 있듯, 그는 아름다운 동화 속에 현실의 슬픔을 빗대었고, 그래서 동화이면서도 우화인, 가슴으로 느끼면서도 머리 한 켠을 아프게 하는 동화들을 만들어 냈다.

<토끼와 원숭이>는 동화라기보다는 섬뜩한 예언 같다. 동화 속 토끼 나라는 원숭이들의 침략을 받는다. 원숭이들은 토끼들을 쏘아 죽이고, 토끼들의 귀를 자르고, 검은 칠을 해서 원숭이 흉내를 내게 하면서 또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선다. 뚱쇠(곰)의 나라였다.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센이리(승냥이)의 도움을 받은 뚱쇠에게 밀려나고 토끼 나라는 뚱쇠와 센이리의 지배를 받는다. 이 둘 사이가 또 나빠져 전쟁이 일어나고, 가엾은 토끼들은 죄다 밟혀 죽고 그 위를 하얀 눈이 소복이 덮는다는 내용. 당연히 일본 총독부는 노발대발했고 마해송은 3회차에 연재를 중단당하고 해방 이후에야 이 동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의 동화 하나만 더 되새겨 본다. <호랑이와 곶감> 어느 겁많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다. 거기에 그는 절묘하고도 읽는 이의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를 덧붙여 놓는다. 아버지 호랑이의 유언에 따라 그 새끼 호랑이들은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 곶감인 줄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곶감’들이 호랑이 굴에 나타나고 호랑이들은 벌벌 떨면서 그들에게 먹이를 갖다 바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러다가 호랑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호랑이들은 목숨을 걸고(?) 합심하여 곶감들의 소굴로 쳐들어간다. 그 무서운(?) 곶감을 잡아 보니 그건 소대가리를 뒤집어 쓴 여우였다. 호랑이들의 곶감 공포를 이용하여 여우가 곶감 흉내를 냈던 것이다.

그 외 미 군정 시기 외세에 종속되어가는 나라의 현실을 비꼬았던 <떡배 단배> 등 수많은 작품 속에서 마해송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 유용하고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오늘도 ‘임금님’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뜻을 구속당한 채 눈물을 삼키는 ‘아기별’들이 얼마나 허다할 것이며, 토끼들의 귀를 자르고 검은 칠을 하고선 “나는 원숭이다”라고 외치도록 강요하는 원숭이들은 과연 없을 것이며, 곶감이 무서워서 소대가리 뒤집어 쓴 여우들한테 벌벌 기면서 먹이를 갖다 바친 호랑이들은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기회 있으면 아이들 사준 국내 창작 동화집 같은 것에 끼어있을지 모를 마해송의 동화들을 읽어 보시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현실의 급류에 뜻밖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11월 6일 오늘은 그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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