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23일 이오지마의 성조기
<산하의 오역> 1945년 2월 23일 이오지마의 성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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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겨레에 만평 하나가 실렸습니다. 바지를 벗어던진 다섯 명의 양복쟁이들이 정의, 자유, 진리, 예술 민주 등등이 쓰여진 깃발을 휘날리는 모습이죠. 모자 쓴 고은이나 이윤택은 분명히 보이는데 나머지 인물들은 옆모습이나 뒷모습만 등장해서 누군지 적시하지 않은 듯 하여 그 인물이 누구냐는 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경 쓴 중년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그린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작가 자신도 부인했거니와 맥락상 한국의 중년‘개저씨’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만화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진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바로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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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의 상징같은 사진이며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부근에 동상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역사적인 사진이죠. 여섯 명의 미군 병사가 이오지마 섬의 최고봉 스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세우는 이 감도 최고의 사진이 1945년 2월 23일 촬영됐습니다.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요새화해 놓은 태평양의 섬들을 하나 하나 점령해 가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오지마는 미군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고 일본군의 잔존 무력과 역량이 집결해 있었죠. 1945년 2월 19일 미군은 이오지마에 상륙합니다. 그런데 전투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습니다. 일본군은 상륙하는 미군을 공격하지 않았고 거미줄같이 파 놓은 땅굴에서 미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사전 포격도 일본군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고 이오지마 수비군 사령관 구리바야시는 향용 일본군들이 전개하던 ‘반자이 돌격’ 즉 죽음의 돌격을 금지하는 등 효율적으로 미군에 맞서 큰 피해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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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이오지마 상륙을 개시한 나흘 후 미군은 이오지마의 가장 높은 곳 스리바치 산을 장악하게 됩니다. 상륙 첫날 해안가에서 막심하 피해를 입은 것을 고려하면 스리바치 산 정상은 어렵지 않게 미군의 손에 넘어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리바치 산을 지키던 수비대는 자결하거나 거미줄처럼 구축되어 있던 지하 기지로 철수했던 겁니다. 즉 산 정상은 장악했으나 그 발 밑에는 일본군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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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0시 20분 미군 해병의 정찰대가 스리바치 정상에 이르렀고 성조기를 게양했습니다. 이오지마 앞바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미 해군 장관은 감격에 겨워 부르짖습니다. "저 성조기는 5백년간 해병대의 영광이 될 거요." 모든 함대의 장병들이 갑판에 몰려 환호성을 질렀고 침대에 누운 부상병들도 몸을 일으켜 성조기를 보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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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바치에 성조기를 세운 대대장은 이 성조기가 역사적 의미를 가진 깃발이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일개 대대의 소유로 끝나지 않을 터, 대대장은 그 깃발을 대대 금고에 넣는 대신 보다 더 크고 폼나는 성조기를 다시 스리바치 산 정상에 게양하기로 결정합니다. 새로운 성조기는 해병대 장병들에 의해 다시 스리바치 정상까지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무대 세팅이 끝나고 소품 (진주만의 가라앉은 군함에서 꺼내 왔다는)까지 준비해서 깃발을 세우는 모습이 종군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의 사진으로 남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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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성조기는 처음으로 스리바치에 세워진 그 성조기가 아니었고 성조기를 세운 여섯 명의 병사들도 최초로 스리바치 산에 기어오른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전투의 끝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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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극적인 사진이 시쳇말로 대박이 나면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뒤바뀌게 됩니다. 우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리바치 산을 기어올라 처음으로 성조기를 꽂았던 병사들의 존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죠. 그리고 엉뚱한 사람이 성조기를 게양한 병사로 끌어들여지는가 하면 진짜 성조기를 게양했던 병사는 제외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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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할론 블록이라는 해병으로서 사진 게양 후 2주만에 전사했지만 사진 속의 인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사진 속 아들의 뒷모습만으로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았고 의회 조사 결과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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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6명의 병사 중 살아남은 3명은 '영웅'이 되어 미국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하지만 로젠탈의 사진처럼 만들어진 영웅이었던 그들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고, 전쟁의 열기가 가신 뒤 그들의 인생은 헹가레를 받다가 땅에 떨어진 선수처럼 내동댕이쳐지고 말았습니다. " 적당한 때 적당한 장소에 있었을 뿐" (조 브래들리)이었고, "우리 소대 중 5명이 살아남았고 중대원 중 27명만이 사상을 면했는데 왜 내가 영웅인가?"(아이라 헤이즈)라고 반문했던 그들은 일생 동안 그 트라우마를 갖고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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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인디언이었던 아이라 헤이즈의 삶은 기구했다. 그는 스리바치 산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사람입니다. 단지 로젠탈이 사진을 찍는 현장 근처에 머물러 있다가 게양을 거들었을 따름이었죠. 사진 속 맨 왼쪽 깃대에 닿지 않고 있는 손을 내뻗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인디언 출신으로서 미국의 영웅이 된 그는 인디언이었기에 더 큰 환호를 받았지만 인디언이었기에 그 뜨고 짐의 낙폭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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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스타들과 어울려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축배를 든 다음날 "영웅이라 하더라도 우리 집에서는 유색 인종에게는 술 안 판다."는 거리의 술집 주인과 마주쳤을 때 그에게 닥친 혼란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헤이즈가 로젠탈에게 던진 한 마디는 이랬습니다. "영웅 영웅 그럴 때마다 나는 진절머리가 나요. 죽어간 사람들이 생각나서.....나는 영웅이 아니오. 당신이 그 사진만 찍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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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버지의 깃발> 중 아이라 헤이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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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로움과 어지러움을 술로 해결하려 들었던 그는 곧 알콜중독자가 됐습니다. 고향에 주유소를 차렸지만 그 앞에는 이오지마의 영웅들의 동상이 섰고, 그는 기름 넣으러 온 사람들 뿐 아니라 몇 달러를 주고 영웅과 사진을 찍으려는 호사가들과 만나야 했으며, 그들은 어김없이 술 한 잔을 권했습니다. 영화 배우 딘 마틴이 그를 애써 고용하기도 했고, 선반공으로서 새출발을 해 보기도 했지만 그는 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음주로 인한 사고로 50회 이상 경찰에 체포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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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가운데에도 가장 아픈 추억이라면 역시 옛 이오지마의 전우와 마주쳐 '거짓말쟁이'라는 욕설을 들으며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은 일일 겁니다. 그때 헤이즈의 심경은 어땠을까요. 거짓말을 한 것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으나 어쩌다 보니 거짓의 중심에 섰고 그 덕에 인생이 통째로 뒤바뀌어 버린 사람의 심경이 말입니다. 점차 폐인이 되어 가던 아이라 헤이즈는 그의 나이 서른 셋이었던 1955년 겨울, 들판 배수로에서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엎드려 죽은 그의 시신 주변에는 토사물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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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자니 캐쉬가 아이라 헤이즈의 비극적 생애를 노래로 담았습니다. 그 노래는 직설적이지만 역사 속에서 미아가 되어 버린 헤이즈의 최후 10년을 가장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전쟁이 터졌을 때 아이라는 지원입대를 했지/ 하지만 백인의 탐욕을 잊어버렸어.../ 아이라 헤이즈는 영웅으로 돌아왔고 전국적인 환영을 받았지/ 와인을 마시고 연설을 했고 명예훈장을 받았어/ 모든 사람들이 그와 악수했지/ 하지만 그는 단지 피마 인디언이었어/ 음식도 친구도 기회도 없었지/ 아무도 아이라가 무엇을 했는지 인디언들이 언제 춤을 추는지 신경 쓰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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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이 높건 낮건, 역사 속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고, 다이나믹 코리아에서는 특히나 많은 영웅들이 명멸합니다. 진실로 기리고 본받아 마땅한 영웅들도 있겠으나 행여 헤이즈같이 그 무게에 짓눌리다가 영웅이라 떠받들던 손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비참하게 사라져가는 사람들도 있겠고, 진정한 영웅인 줄, 존경해 마땅한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천하의 개차반에 쓰레기였던 이들도 빈발합니다. 그들이 ‘이오지마의 성조기’ 대신 자유 정의 예술 진리의 깃발을 든 패러디의 주인공으로 돌아온 풍경은 스산하고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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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뜻깊게 보았기에 이글도 뜻깊게 다가옵니다.
ㅅ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좋은하루보내세요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연출된 사진 한장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