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위설경
“설위설경(設位說經)을 일반적으로 ‛설경(說經)’이라한다. 한자로는 ‛設經’ 또는 ‛說經’을 혼동하여 쓰고 있는데, 앞의 ‛設經’은 설위설경(設位設經), 즉 위패를 세우고 경문(經文)을 읊조림의 준말이며, 설경은 ‛경문(經文)을 읊조림’으로 해석된다. 한편 ‛경청(經廳)’을 세우는 ‛설위(設位)’를 설위설진이라 하는가 하면 줄여서 ‛설진’이라고도 한다.
이와는 달리 ‛앉은굿’이란 호칭도 요즘 일반화되고 있는데, 주로 앉아서 하는 대목이 많아 ‛선굿’에 대비하여 붙여진 것인가 한다. 그러나 행술인 들은 보통 발음 나오는 대로 ‛설경(設經)’이라 하며 규모에 따라 ‛대설경’, ‛홑설경’으로 나누기도 한다.” (심우성,「충청도 설위설경(設位設經=앉은굿) 큰잔치에서 퍼온글
충청남도 지방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태안설위설경(泰安設位說經)’은 경청(經廳) 주위를 한지(韓紙) 종이로 각종 형상을 장엄하게 만들어 장식하고(종이 바수기) 경문(經文)을 독경하는 앉은굿을 하는 행위를 말하며 행하는 이를 정쟁이 정꾼이라 부르다 근래에는 법사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법사는 시월상달이나 정월 집안에 안녕을 비는 안택(安宅)과 아픈 사람을 낳게 해주는 치료를 위한 병경(病經)등의 굿을 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이화산 암자에 사셨던 절집 할머니가 매년 정월에 안택(安宅)을 하셨다. 집안이 편안하고 자식들 건강하게 해달라고 부엌 부뚜막에서 조왕신께 축원하고 뒤안 장독대에서 터주 신을 축원하셨다. 안방에서 성주신과 조상님들께 제를 올렸다. 그날은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밤새 정 구경하고 새벽녘에 대잡이가 대를 잡고 가족들의 한해 운세를 공수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법사는 신령(神靈)의 명호를(名號)을 쓴 위목과 그림이나 무늬 혹은 부적(符籍)등으로 수문(囚門)을 만들고 천장에는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陳)을 늘어트리고 독경을 한다. 1일 경을 읽을 경우에는 경청(經廳)에 가택신령 위목만을 써서 붙이고 독경을 한다 , 3일 읽을 경우에는 신장의 위목과 철망을 만들어서 경청에 장엄을 한다. 또한 5일 경을 읽을 경우에는 위목과 소철 망까지는 장엄을 하고 , 7일 할 경우에는 천장에 팔문금쇄진까지 장엄을 하고 환자의 귀신을 쫒아 가두는 행위를 설위라 한다. 태안설위설경(泰安設位說經)’은 토착신앙이자 전통문화로 경문과 부적문화 바탕위에 구성된 설위설진은 접신에서 풀이의 과정을 거쳐 해원작업을 함으로서 치유기능을 수행한다.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4호 보유자 장세일 법사는 어릴 적 글 읽는 것을 좋아했다. 읽을 책이 귀했던 시절에 경문을 베끼고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는 행운이 자주 없었다. 경문 속에 담겨져 있는 심오한 뜻과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는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을 모를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양반들은 경문을 읽으면서 삶의 지혜를 깨우치고 세상을 내다보는 지혜와 안목을 넓혔다. 글을 알면서도 읽을 책이 없었던 시절 유명한 법사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달려가 경문을 베끼거나 경문을 빌려다 읽었다.
그 속에는 세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세상의 묘미가 숨겨져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천대 받는 직업을 할까봐 말류도 했지만 점점 경문에 큰 매력을 느끼고 온 정신이 경문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많은 경문을 탐독하고 법사들이 하는 행술을 보고 들으면서 법사로 가는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40세에 신병이 크게 왔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담담한 마음으로 신풀이를 하고 집안에 당을 만들고 본격적인 법사의 길은 시작되었다. 원북면 일대 법사들의 스승이었던 한응회 법사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스승이 하시는 행술과 경문 및 굿하는 형식을 열심히 익혔다. 장세일 법사는 남다른 예리한 감각으로 한지(韓紙)가 가지고 있는 섬세한 결을 잘 이용해서 경청에 장엄으로 새로운 창조의 공간을 만드는 유능한 법사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손끝을 가지고 있었다. 종이를 접고 종이를 까수고 그러면서 신과 접신하는 과정에서 병든 사람 치유를 도와주고 복을 빌어주는 법사로 일생을 살아왔다.
신화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결합에서 시조가 탄생되고, 그 시조가 나라와 문화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설위설경 사무실에서 전수교육 보조사 정해남 법사를 만났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9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이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시절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19살부터 신의 스승을 만나 20살에는 운명으로 알고 신을 받았다. 그때부터 50여년 법사의 길을 걸어왔다. 글을 배운 적이 없어 경문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경문을 읽고 그 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뜻을 알고 느낄 수가 없었다.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는 자세로 한 길을 걸어 온 정해남 법사의 눈동자는 어린아이 같이 맑고 바르게 살아온 법사로 보여진다.
어릴 적 총기가 있었던 정해남. 어느 날 부터 세상이 평범하게 보이질 않고 잘 모르는 일들이 자주 눈에 나타나고 보여졌다. 먹고 사는 일이 너무 어려운 가정형편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15살 때부터 특별한 병명도 없이 몸이 시름시름 아팠다. 아푼줄만 알았지 치료를 해 볼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소문을 듣고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웃마을에 사시는 이내황 법사를 찾아갔다, 아픈 것을 상의 드리러 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은 문하생으로 받아주셨다. 그날부터 날이 밝으면 스승댁에서 살았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학교를 가 볼 생각조차 못했고 어디서 글 문을 깨우칠 기회도 없어 문맹으로 살고 있는 제자에게 스승은 글 문을 깨우쳐 주셨다. 글을 알아야 경문도 읽고 굿을 할 수 있다고 차근차근히 가르쳐주셨다.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따라했다. 한문을 몰라서 경문을 읽을 수 없는 것을 아시는 스승은 한글로 토를 달아 주시면서 가르쳐 주셨다. 법사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한자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스승의 일거일동을 어깨 너머로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흉내를 내면서 내것으로 만들었다. 스승의 가르침은 법이였다. 그 법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청춘을 바쳤다. 글 문을 깨우치고 3년 넘게 배워서 완벽한 수제자로 만들어주셨다. 기대하던 제자로 만들어졌는지 18세 되던 해 칠성신을 모시도록 신을 받아주시고 ‘대성북두칠원성군(大聖北斗七元星君 )’이라고 칭해주셨다. 스승님께서는 금륜당‘(金輪堂)’이라는 당호까지 주셨다. 그 후 20살이 되면서 스승을 따라 정을 배우고 경문의 참뜻을 배워나갔다. 부정풀이는 지성을 드리는 공간을 깨끗이 하는 것을 말하고, 신에게 비는 행위를 축원이라 한다. 잡귀를 쫒기 위해 축사경을 외우다 보면 집안에 잡귀들을 단지에 잡아가두어 땅에 묻는 것을 귀신 착수라 말한다.
축사경을 읽다보면 귀신이 항아리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것이 보이기도 하였고 단지에 세워놓은 신장대가 흔들리는 방향과 강도에 따라서 감지를 하고 단지 안으로 몰아서 가두기도 하였다. 청년시절 스승 따라 경객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지가 50년이 되었다. 이제는 되돌려 놀 수 없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이른아침 사무실에 나와 깨끗한 마음으로 청수를 올리고 향을 공양하면서 하루 일을 시작하신다 한다.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정해남 법사의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 설위는 평면적으로 펼쳐 놓은 최고의 공간예술작품이다.
옛날에는 농사를 지어 볏가리를 마당에 쌓아 놓고 탈곡할 때 개상질을 하였다. 탈곡이 끝날 무렵 대개 수확이 많이 나오라고 개상 제를 지냈다.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갈퀴, 빗자루, 죽가래 등 농기구들을 등에 지고
“이 집에 터주지신 왕림하시여
곡두장군 하강하시고
동서남북 이십사 방 신령님이
도와주셔서 베 많이 나게 해주십시오.” 하고 개상 앞에서 어린 해남이가 개상제를 지내면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풍년농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을 바슴 철이면 동네 바심하는 집마다 다니면서
개상제 지내주는 것을 어느 날 스승님이 보시고 “해남이는 영험한 정꾼이 될 거야,” 하시던 스승의 말씀이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같은 신화, 같은 꿈, 같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의 단군신화가 있듯이…….
오래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탄 사람들이 믿고 있는 마나스의 신화에 대한 취재를 다녀왔다. 이 나라에는 마나스 공항, 마나스 대로, 마나스 동상 등 가는 곳마다 같은 이름이 붙은 건축물이나 기념물 따위를 볼 수 있었다.
키르키즈인의 영웅인 마나스는 1,000년에 걸친 중앙아시아의 역사·문학·철학·민속이 녹아있는 그들의 교주였다. 박물관에 쌓여있는 자료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 등 많은 자료들을 일일이 찾아보면서 그 민족의 정신적 교주가 누구인지를 볼 수 있었다. 나라에서 인정받고 있는 전승자들을 만나서 그 행위를 기록하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나 볼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대받고 무시하는 직업을 이 나라에서는 전통적인 문화예술로 인정하고 보호받고 있는 문제였다. 또한 흥미로웠던 사실은 경문을 외우고 노래하는 구연자들이 학식이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문맹자라는 일이다. 그들은 대개 꿈에서 현몽을 하거나 스승에게서 구연으로 전승 받아 그런 신비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한다. 촬영에 임해준 구연자들 대부분은 남자 마나스치였다. 여자 마나스치를 만나고 싶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곳을 찾아 갔다. 최고의 학벌을 갖추고 은행에서 능력 있는 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꿈에서 현몽을 하고 자주 신병을 알았다. 본인이 신병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해서 선택할 수가 없었다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해서 마나스치로 살고 있던 그 여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장세일법사와 정해남법사를 만나면서 키르키스탄의 나마스치들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태안설위설경(泰安設位說經)’은 토착신앙이지만 전통적인 문화예술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많은 영역이 남아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더 발전시켜 태안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보존되어지기를 기대해본다.
Woff, woff!
Hello @saifuk, We have met 20 times al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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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Unfortunately, Google Translate is terrible at translating English into Korean. You may think you wrote in perfect Korean, but what KR Steemians read is gibberish. Sorry, even Koreans can't understand your post written in Google-Translated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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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ff, woff! 🐶
good post 👍 good luck for all
kr-guide!
KRWHALE태그하셔서 왔어요^^
항상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krwhale 태그 하시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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