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b and Dumber'와 '벌거벗은 임금님'

in #kr8 years ago

넘어진 사람은 밟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철학이다. 이미 탄핵되어 구속된 전 대통령의 지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리 점잖은 일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일로 그치지 않고 전 국민의 생존과 나라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지나간 일이라 하더라도 한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지난 2015년 10월 온 나라가 K-FX 사업으로 들썩거렸다. FX사업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이전 받으려고 했다는(?) 기술을 미국이 이전하기를 거부함으로써 K-FX 사업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우선 여기서 FX는 무엇이고 K-FX는 무엇인지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방산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무기 체계는 커녕 용어조차도 생소해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선 전투기는 운용 개념상 하이급, 미들급 그리고 로우급으로 구분한다. 즉 작전 범위와 빈도 그리고 전략적 중요성에 따라 비싼 것과 싼 것으로 나누어 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F-15K와 개량된 KF-16 정도가 하이급이고 T-50을 개량한 FA-50이 로우급에 속한다. 미들급은 개량전 KF-16이나 F-5 정도인데 노후화된 전투기는 로우급으로 낮춰서 운용하기도 한다. (전투기의 분류 기준은 자료마다 달라서 정답은 없고 대략 그렇다는 뜻으로 이해바람)

FX 사업은 하이급에 해당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고 K-FX 사업은 미들급에 해당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다. (F는 Fighter, X는 eXperimental, 보통 아직 전력화되지 않은 무기체계에 X를 붙인다.) FX 사업에서 처음에 F-15SE로 선정되었으나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정무적 판단으로 F-35로 변경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정부는 FX 사업의 패키지 딜로 K-FX 사업에 필요한 4대 주요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이전받고자 하였으나 F-35로 선정된 이후 미국이 쌩까는(?) 바람에 난리가 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뼛속까지 아마추어적인 면을 목도하였다. 우선 어떤 무기체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술을 어떠한 문서로 된 계약도 없이, 동맹국이니까 아낌없이 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는 것. 아니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처음부터 이런 얘기를 꺼내면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할까봐 제대로 말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국가도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데 필수적인 핵심기술을 그렇게 내어주지 않는다. 프랑스의 다국적기업인 탈레스는 삼성탈레스의 50% 주주로 있으면서도 삼성탈레스에 어떤 기술도 이전하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FX 사업 선정 과정에서 4대 주요기술을 이전하기로 하였다면 응당 계약서에 명시해야 했을 것이나 정부는 그 계약서라는 걸 국민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미국 사람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은 매우 충실히 지키는 편이다.) 미국의 'NO' 한마디에 국내 개발로 미련없이 돌아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장명진 방사청장에게 '미국이 기술을 주지 않으면 우리가 개발하면 되잖아요? 왜 그렇게 고민하세요?...'라는 취지로 국내 개발로 방향을 선회하도록 했고 이에 '그러면 되겠네요!...'라는 취지의 방사청장의 화답을 들었을 때 순간 필자의 머리는 하얘져버렸다. 그렇게 간단한 거면 왜 애초부터 국내 개발로 계획하지 않았는지? 'Dumb and Dumber' 누가 더 Dumb한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방향을 결정한 뒤에 누가 토를 달 것인가? 기술 도입사업이 국내 개발사업으로 변경되자 국방과학연구소는 국내 개발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앞다투어 증언하였고 국내 방산업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들어 사업은 급속도로 추진되었다. 함정용으로 개발된 IRST와 아직 카트를 벗어나지 못한 AESA레이더가 아직 있지도 않은 전투기에 금방 달릴 것처럼 광고되었다. 이미 개발된 기술이 있으니 크기만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세번째로 기절할 뻔했다. 체계 통합이라는 어려운 얘기는 꺼낼 필요도 없이 부체계 단위에서 그 크기를 줄인다는 것 자체가 기술 장벽이라는 걸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일부러 말 안하면 잘 안 드러나는 것.

기술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짚을 필요는 없겠다. FX 사업에서 F-35를 선정하게 된 그 '정무적 판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도가 잘못되면 아무리 디테일이 좋아도 그림이 이상하게 된다는 것. 참으로 상식적인 얘기이기 때문이다.

방산 기술 개발에 평생을 바친 연구원들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다. 기술 도입보다는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교시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생각나는건 K-FX 사업이 완료될 2025년엔 모두 은퇴하고 없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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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kfx사업 관련하여 한국항공우주에 투자하여 쓴맛을 본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애초에 KFX를 굳이 시행한 이유를.. 너무 모든 부분을 국산화하려는데 문제가 있는듯합니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죠. FX 사업에서 주요 기술을 이전받아 진행하려고 했던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문제는 기술 이전을 위한 절차상의 하자가 있었다는 것과 그것이 무산되었을 때의 대응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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