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수와 무리수

in #kr9 years ago (edited)

요즘 가장 핫한 용어 중에 코인이 있다. 가상화폐 시대를 연 것이 비트코인이고 비트코인 이외의 다른 가상화폐를 알트코인이라 불러서 그런지 근래에 갑자기 친숙해진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영어로 coin은 동전이라는 의미 외에 '어떤 용어를 만들다'라는 뜻으로도 자주 쓰인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 질 때는 그 용어로 전달하고자 하는 많은 함의들이 그 용어에 함축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용어를 새로 만들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 때 뿐만 아니라 그 용어를 번역할 때도 신중해야 함은 마찬가지다. 결국 영어는 외국어이고 우리는 한국어를 훨씬 더 많이 쓰니까...

유리수와 무리수. 정의는 잘 몰라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는 용어다. 유리수의 수학적 정의는 '두 정수의 비율로 표현이 되고 분모가 0이 아닌 분수로 표시할 수 있는 수'이다. 무리수는 실수 중에서 유리수가 아닌 수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리수는 有理數, 무리수는 無理數이다. 한자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理性이 있는 수, 없는 수이다. 숫자와 理性이 무슨 관계가 있나?

이것은 명백한 오역에 의한 오류이다. 유리수는 rational number, 수학적 정의에 따라 해석하면 ratio 즉 비율이 있는 수라고 명명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rational은 ratio(비율)의 형용사임과 동시에 ration(이성)의 형용사이다. 근대 수학은 일본을 거쳐 들어왔고 일본은 영어로 된 책을 번역하였을 것인데 모두 알다시피 일본이 영어에 강한 나라가 아니라서 rational을 ration의 형용사로 번역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60권의 영어책을 번역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를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번역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숲으로 표현하려면 wood가 아니라 woods가 되어야 한다는건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영어다.

어쨌든 근대 문명을 거의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인 한국은 이웃을 잘못 만난 덕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멍에를 쓰게되었다. 유리수를 유비수(有比數)라고 표현했으면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도 학생들이 배우기에도 얼마나 편했을 것인가? 사실 필자는 유리수를 처음 접할 때 도무지 용어와 그 뜻이 부합하지 않아서 고민아닌 고민을 한 기억도 있다.

국어는 그 나라의 국력과도 같다. 일본어로 된 문서(책)가 영어 다음으로 많다는 건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일본의 국력과 외연을 알려준다.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한 한가지만 고르라면 그건 단연코 한글이다. 나는 한글만큼 아름답고 과학적인 글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외연이 커지는 것 만큼 한글이 커지는 지는 잘 모르겠다. 외국 사람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우리 한글을 제대로 쓰고 있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사실 가장 바빠야 되는 사람은 다름아닌 국어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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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일본에게서 배워야 할 점으로, 일본은 전공서나 여러 도서들을 자국의 언어로 번역 혹은 재해석한 편역한 책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냥 원서를 가져다 쓰거나, 일본 책과 용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들을 많이 쓰고 있지요....

KMS 나 KPS 에서 우리말 용어들을 몇번이고 펴냈긴 했는데, 그 용어에 대한 어감과 일본풍을 아직 다 벗지 못해서 쓴소리를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옳으신 말씀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상실의 시대로 바꾸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한국에서 정식발매가 아닌 책(문학사상사)에 '상실의 시대'란 타이틀을 단 걸로 있습니다. 지금 민음사에서 정식으로 나오는 책은 '노르웨이의 숲'으로 나옵니다.

유명한 얘기인데 아직 모르셨군요.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앵커 브리핑 코너에서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아래에 링크합니다. ㅎ

상실의 시대란 타이틀을 붙여 다시 출간한 건 우리나라 출판사 이야기 입니다. 일본에서 상실의 시대로 책이 출간된 건 아닌 거 같습니다.

yoon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가 소설의 제목을 바꿨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네요. 국내에서도 문학사상사를 제외한 다른 출판사에선 계속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판되고 있고요. 2010년일본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원작으로 '상실의 시대'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로 와전된 것 같습니다.
앞으론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고 글을 올리도록 하고 본문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도처에 상수들이 계시는군요. 또 한가지 얻고 갑니다. ㅎㅎ

저분이 금시초문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키는 제목을 바꾼 적이 없거든요. 심지어 2011년인가 2012년에 낸 잡문집이라는 에세이에 실린 글에서는 왜 노르웨이의 숲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당연히 안 바꿨으니까요.
한국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위해 상실의 시대라고 바꾸고 부제로 작가가 만든 원제를 붙여서 냈습니다.
글에 넣은 이야기는 재밌는데, 도대체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판을 이기지 못해 제목을 바꿨다는 건 어디서 읽으셨지요? 선생님께서 잘못알고 계십니다.

번역 중요성은 이해가 가는데, 글 반응이 좋다보니 이상한 사실이 퍼질까봐 댓글로 알려드립니다. 번역만큼 이야기 전달도 신중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원제를 똑같이 차용하지 않았는 것은 작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나무가 하나가 아니라 세개가 붙은 森이어야 하는지요. Norwegian Wood는 실제로 노르웨이산 가구, 노르웨이 여자, knowing she would로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여자가 원나잇 섹스할 생각으로 남자를 방에 끌고가는 거거든요. 심지어 그 방에는 (의자로 나오는)가구가 없습니다. 노래가사 자체가 여러 암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것을 하나로 정하고, 오역이다 아니다 하는 것이 정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풍부하게 읽으면 아름답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폄하할 이유가 없지요. ㅎㅎ 제목이 오역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지엽적인 것입니다. 소설의 내용이 중요하지요.
다만 이 소설의 제목에 대한 논란은 팩트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글을 공유합니다.

The original Japanese title, Noruwei no Mori, is the standard Japanese translation of the title of The Beatles song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written by John Lennon.[9] This song is often described in the novel, and is the favorite song of the character Naoko. Mori in the Japanese title translates into English as wood in the sense of "forest", not the material "wood", even though the song lyrics clearly refer to the latter. Forest settings and imagery are significant in the novel.

당연히 위키피디아는 무라카미하루키가 비틀즈의 노래를 제목 그대로 번역했다는 전제를 깔고 글 썼기 때문에 저렇게 말을 하지요. 그리고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로 바꾼 적도 없습니다.

엄청난 분이 오신 것 같네요. 역시 인생도처유상수.

정말 유리수가 유비수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명확하네요. 국력과 외연에 의해 언어가 형성되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저도 한글을 사랑합니다. 아름답고 과학적일 뿐 아니라 자유롭고 역동적입니다.

번역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가져오고
용어는 중국의 한문을 쓰고..
이러니 알아듣기가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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