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 이야기(1)

in #kr7 years ago (edited)

전 다 부쳤습니다.

저희 집은 원래 여자가 집안일 할때 남자가 누워서 TV를 보던가 고스톱을 치면 경을 치는 집안인지라 모두가 일을 다 해야 합니다. 뭐 사실 제사 음식도 간단하게 만들어서 같이 나눠 먹고 나눠서 갖고 오는 수준입니다(그래도 집에 가져오면 보통 4~5일 반찬은 됩니다만). 여튼, 다 마쳤으니 그동안 써보려고 벼르기만 했던 시리즈를 써보려고 합니다.

뭔 일이 있을때마다 나오는 ‘홍위병(紅衛兵)’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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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유리. 반항에는 이유가 있다(나에 대한 반항 빼고)

이걸 쓰기로 맘먹었던 것은 본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우파라고 생각하면서도 근현대사 공부라곤 죽어도 안한 바보들이 걸핏하면 ‘홍위병’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좀 짜증나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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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이런 바보 말입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구분이 안되는 공영방송 (전) 이사.

뭐 이전의 글에 쓴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70년대 후반에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컸습니다. 문화대혁명(aka 문화대동란)이 끝난 즈음부터 서구 선진국들에서 인민복을 입은 동양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키도 좀 작고, 저보다도 패션 센스 없는 인민복을 입었던 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당당하려고 애쓰는 똘똘하고 눈빛 초롱초롱한, 저와 비슷하게 생긴 형들은 아무래도 인상적이었죠. 이들은 중국 공산당이 보낸 유학생들이었습니다. 마오쩌뚱(毛澤東)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장악한 다음 똘똘한 중국 청년들을 모아 구미 선진국에 대거 유학생들을 파견했지요.

사실, 지금 따지고 보면 체제경쟁은 이 즈음에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공산당 지도자들이 자신의 조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자들, 아니 제국주의자들의 심장부로 청년학생들을 ‘공부하고 오라’고 보냈다는 것만큼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게 당대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까지 우리가 딱히 북한보다 낫다는 자신감 조차 없어서 그랬는지 이걸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뭐 사실 지금도 우리가 북한보다 못하다는 것을 믿는 분들이 꽤 되잖아요? 태극기 흔들면서 애국 하시는 어르신들 말입니다.

여튼, 덩샤오핑이 주도했던 이 유학생 보내기를 보면서 어르신들 사이에선 이런 도시 전설이 돌았다고 합니다.

“쟤네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다 그 나라에 정착하게 될텐데, 그러면 어쩔꺼냐고 누군가 이야기했다는거야. 그런데 덩샤오핑이 이랬다는군. 그러면 더 많이 보내면 된다”

사실 그들의 눈빛을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농담은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구미 선진국으로 유학갔던 유학생들은 붉은 중국의 탄생 이후 수십년동안 인민이 밥을 제대로 먹는 세상 만들겠다고 해놓고 30년간 사람만 갈아넣었던 자신들의 조국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잠재성에 대해 크게 신경 썼던 이들도 딱히 없었습니다. 가끔은 영화 등에서 전지전능한 정보조직으로 묘사되는게 CIA지만, 전통적으로 미국의 정보기관 책임자들은 제3세계에 대해 상당히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쿠바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은 이들을 포섭했다고, 이렇게 많은 협조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경고가 꽤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책임자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뭔가 성과를 바로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망신만 제대로 당했죠. CIA가 포섭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쿠바 방첩대 소속 요원들이었거든요. (이 이야긴 어네스트 볼크먼의 ‘SPY 스파이’에서 성공적인 기만작전의 사례로 언급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장에서 중국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던 이들은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서구의 사회주의자들은 문화대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이 거쳐야 하는 단계로 이해했었습니다. 하지만 CIA 지역 책임자들은 이 모든 것이 마오쩌뚱이 권력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대소동으로 처음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2009년 기밀해제되어 이젠 누구나 PDF파일로 볼 수 있는 1970년에 작성된 “문화대혁명과 새로운 중국의 정치체제”라는 보고서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죠. (https://www.cia.gov/library/readingroom/docs/CIA-RDP85T00875R001000010040-2.pdf)

우리는... 정보기관부터 망쪼였습니다. 어느 나라든 간첩은 그 나라 권력의 정점에 투입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진짜 필요한 정보는 거기 있으니까요. 그런데 안 민주정부 시절에 잡히는 간첩은 항상 ‘야당’ 혹은 ‘재야’ 혹은 ‘학생’이었죠. 거기에 북이 원하는 뭔 정보가 있다고.

물론 여느 종교처럼 이 땅은 다양한 종교가 자체적으로 수입됩니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에 ‘적의 적은 우리의 동지’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하에 주체사상을 탐구하고 북한 방송을 청취하는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지요. 그런 조직이 생겨나는데 이런 분들이 거꾸로 역할들을 하셨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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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치니까 억. 하지만 김윤석씨가 분한 박처장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튼, 사회주의 한다고 30년동안 사람만 갈아넣었던 중국이 사회주의 GG치고 자본주의의 기초부터 공부해보겠다고 서구 열강으로 유학생 보내기 시작한 한참 뒤에 대한민국에선 기묘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이 사건은 이 나라가 얼마나 외부의 상황 변화에 대해 둔감한가를 보여주는 지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서 소개합니다).

어느 한의사분이 중국 전통 의학이 궁금해서 알음 알음을 통해 중국 한의학 책을 홍콩에서 구해왔답니다. 그런데 이 중의학 책의 70%이상이 마오쩌뚱 찬양이었던거에요. 문화대동란 시기에 출판되었던 모든 책들은 그 정도로 마오쩌뚱 찬양을 하지 않으면 반혁명도서라고 불태워지거나 책을 출간한 책임자나 책을 쓴 사람 모두 아주 심각한 고초를 겪을 수 밖에 없었거든요.

이 내용을 보고 얼척 없어서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던 한의사 선생님, 어느 날 보안수사대에 끌려가게 됩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 소지 및 찬양고무였답니다.

머리가 좀 있는 인간들이었다면 이 중의학책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얼마나 미쳐서 돌아가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책으로, 체제 우위의 증거를 위해 썼을텐데... 탁 치니까 억 하고 죽더라는 소릴 하던 분들에겐 그럴 머리 정도는 없었죠. 그래서 지금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수정주의적 세계관이 아직도 세를 확보하고 있지요.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집권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물리적으로 갈아넣어서 집권해온 이들입니다. 몇 년전에 기밀해제된 중국 공산당 문서들을 기반으로 나온 ‘인민3부작’(열린책들)은 마오쩌뚱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얼마나 정교하게 ‘공포’를 이용했는지를 고발하죠.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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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공산당 유학생들이 궁금합니다. 그들의 삶과 현재, 지금 중국에 그들이 끼치는 영향.. 아마 덩샤오핑 키드라고 검색하면 나올까요?

우리 학번으로 치면 77학번 이후에서 90학번까진 주로 유럽을 갔고, 92학번 이후가 미국을 갔죠. 중국 경제성장의 핵심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들인데 우리나라에선 이 양반들을 한 덩어리로 놓고 연구한걸 못 봤던 거 같음요.

흠.. 그들이 세계 사람들한테 주었던 인상이 무척이나 강했을꺼 같아요, 중국으로 돌아와서 성공 거둔 사람도 많았을꺼구요

돌아가신 정운영 선생이 한겨레에 썼던 글에도 이 양반들 이야긴 나오죠. 당연히 중국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건 이들이구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국통이라고 하는 양반들은 "마오의 아들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것은 많지만 민폐 덩어리였다." 같은 가십 정리하는데 열을 올리는 인간들이라;; 작년 초에 책 같이 하려고 했던 출판사에서 '르뽀의 형태'로 추천을 해줬던게 '13억분의 1의 남자' 더란;;; 아니 도대체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첩들이 LA에 많이 산다는게 뭔 정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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