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소셜 벤처 이야기

in #kr6 years ago (edited)

MV5BMWQxMWI3ZmYtYjQzMC00M2MyLTliN2YtMzgyZTQ2OThhZWQ4XkEyXkFqcGdeQXVyNjg4NzAyOTA@._V1_SY1000_CR0,0,666,1000_AL_.jpg

SEAL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초인적인 영웅을 연상하지만, 실제로 접해보면요... 이 양반들, '골병든 아저씨들'입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의 도움이 전혀 없는 곳에 수많은 장비를 갖고 날아서 들어가, 총탄과 폭탄이 터지는 전투를 한 후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데 몸 어디 구멍나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나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아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담은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에 감탄하지만 전 저 장비 매고 들어가서 얼마를 기다려 사진 찍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경험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오지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오지란 TV가 보여주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대한민국의 TV카메라는 멀리 가지 못합니다. 방송사에서 방송 제작비도 제대로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저작권 인정도 제대로 못 받아요. 하여 좀 근성있는 PD라고 하면 관광지에서 10km 정도 더 들어갑니다. 보통은 그냥 관광지 근처에서 적당히 찍죠.

100_3748.JPG
이게 관광지에서 찍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낙타경주하는 라자스탄 사막의 아이들.

TV는 이 외에도 오지에 대한 여러가지 환상을 만든 업보가 좀 깁니다. 여행 좀 해본 사람들은 어느 여성분의 여행기를 판타지 소설 정도로 치부합니다. 그 작가님을 열심히 띄워주신 것도 TV였죠.

한국 방송국들이 워낙 돈을 안쓰기 때문에 옛날 기억하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도 종종 합니다. "듣보잡 방송국이었던 NHK가 세계 유수의 방송국으로 도약하는 신호탄이... 당시 기준으론 어마어마한 돈을 태웠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제작하면서부터였다"고. 어쩌면 이것도 좋은 것을 만들어서 판다고만 생각했던 7, 80년대적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오지에 대해 좀 안다고 하는 인간들은 TV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오지를 정의합니다. 3G 네트워크가 안 터지는 곳이 오지에요.

L1020229.JPG
네팔의 이런 마을들은 3G도 안 터지는 곳입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해발 5364미터 정도 됩니다. 여기도 요즘은 4G 터집니다. 일반적으론 상상하기 힘들죠.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와서 인스타그램과 페북에 사진 많이 올리거든요.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림에서 3G 네트워크가 작동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분들이 있을까요? 하지만 3G 네트워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혁신도 가능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열대우림 보존운동을 하고 있는 Rainforest Connection의 대표 토퍼 화이트의 TED 영상입니다. 이 양반 강연이 영어로 된 것은 많이 찾을 수 있는데, 한글 자막이라도 입혀진 것은 이 영상 밖엔 없더군요. 영상을 클릭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단체는 중고 스마트폰과 머신러닝, 그리고 현지의 3G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불법 벌목을 막는 운동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자막 클릭하시면 한글로 보실 수 있습니다.


Topher White: What can save the rainforest? Your used cell phone

이쯤되면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 도대체 몇 명이나 네트워크를 쓴다고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통신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건가...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가난한 나라인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서도 이제는 4G가 터집니다. 요즘은 가격이 좀 많이 내려서 한달간 1G 쓸 수 있는 페키지가 15500원 정도 합니다.

10.55.31.jpg
ncell 요금표 https://www.ncell.axiata.com/Internet/Rates-and-Information/Packages-and-prices

그런데 실업률이 20~30%를 오고가는 네팔의 대졸 초임이 월 15만원 정도에요. 현지 분들에겐 아주 많이 비싼 거죠. 저게 그나마 몇 년전과 비교하면 거의 1/3 토막 난 요금제도인데도. 그래서 관광객이 많이 쓰는 지역이라고 하면 일단 기지국 세우고 중계기 연결시킵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갈 수 없는 곳은 기지국 안 세우죠. 돈이 안되니까. 그래서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발 5천미터가 넘고, 외국인 관광객이 입산하려면 일인당 5천달러를 입산료로 내야 했던 대표적인 세상의 오지 네팔의 무스탕 지역은 위성전화를 썼습니다.

mustang_report25.jpg
고 이성규 PD 블로그 blog.naver.com/report25

마을 마다 위성 전화기가 한 대씩 있습니다. 그 마을에 전화를 걸면 그 위성 전화가 있는 집의 아이가 전화를 받죠. 아이가 받으면 “누구 집 누구인데 누구랑 몇 시에 통화하려고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집 사람이 그 시간에 와서 대기하다가 전화를 받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정말 말도 안되는 오지에도 2G는 기본적으로 터집니다. 좀 괜찮은 지역이라면 2G와 3G의 중간인 EDGE 정도는 터집니다. 이건 그 나라의 통신사들 때문이 아니고, 소셜 벤처들 덕택이죠. 오픈 소스 덕택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통신사들이 세계의 오지에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5년 5월 5일 판엔 DIY telecoms 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https://www.economist.com/news/technology-quarterly/21645498-fed-up-failings-big-operators-remote-mexican-communities-are-acting

사실 이들의 이야긴 1년전인 2014년 5월 16일 블로터의 윤나리님이 기사화한 적 있습니다. 오픈소스로 이동통신사를 직접 차린 주민들이라고. http://www.bloter.net/archives/192540

컴퓨터의 성능이 워낙 좋아졌기 때문에 조금 고급 사양의 데스크탑 몇 대를 갖고 기지국을 만들 수 있는 오픈 소스가 개발된지 좀 됐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인지네트웍스의 오픈BTS 인데, 요즘은 이런 형태의 오픈소스를 제공하는 곳이 더 늘어났죠...

멋지지 않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멋진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분이라면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외교부 산하에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줄여서 KOICA)죠. 코이카에선 2015년부터 CTS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성은 코이카가 만든 이 홍보용 동영상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네요.

남아시아의 허브 공항들, 그러니까 싱가포르 창이공항이나 태국 방콕의 스완나품 공항 로비에 앉아 있으면 먼지 잔뜩 묻은 아웃도어 옷을 입은 분이 서류 뭉치를 옆에 두고 정신없이 랩탑을 만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국제구호 NGO 혹은 소셜벤처 등에 적을 두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뛰어다니는 분들이죠.

못 믿으실 분들도 많겠지만요... 이 분들 중에 한국분들도 꽤 많습니다. 네팔에서 만난 어느 분은 정년퇴직 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다가 저 위에 링크한 블로터 기사를 보고 필리핀의 오지 마을에 저런 식의 주민자체 통신사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시고 계시더라구요. 그게 2015년의 일이었습니다.

현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분들은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을 쉽게 가집니다. 현지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빈곤은 사회경제적, 제도적 문제라고 파악하지요. 뭐 누가 지적으로 게으른건지 좀 빤한 겁니다만, 원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들이죠. 문제를 정의해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최적화된 해법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니까요. 이걸 문제 제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가능한 자세인거고 말입니다.

Sort:  

멋진 글 감사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통신사들이라니 멋지군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이렇게도 활용이 되는군요.

한국의 젊은 이공계인들이라면 학자금 대출에 숨통이 좀 트게 만든 다음, KOICA 프렌즈로 뭔가 해법이 필요한 나라에 직접 날아가 현지 사정들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CTS 사업들을 추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빚 갚는게 녹녹한게 아니긴 합니다만;;;;

가슴 뛰는 글 감사합니다. 예전에 현실적 문제 때문에 소셜벤처를 하려던 생각을 접었는데, 언젠가 세상에 도움되는 일을 다시 하고싶네요.

KOICA로 국방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었을땐 이공계인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그게 막히고 또 학자금 대출금을 감안하면 이런 뽐뿌글을 쓰기가 좀 그랬습니다;;; 근데 CTS 프로그램도 생기고 뭐 그래서... 실제로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사실은 저도 군복무를 KOICA로 하려고 하다가 지원을 한달 앞두고 제도가 폐지돼버렸어요. 지금은 다른 길을 찾아서 나름 잘 지내고 있지만 좀 아쉬운건 사실입니다..

ㅎㅎ 주니어 단원들이 그간 사건사고를 좀 많이 치고 댕기긴 했지만;;; 하필 스리랑카에서 비번일때 밖에 나갔다가 낙뢰로 돌아가신 분들의 부모님들이 '국가유공자 지정 소송' 내시는 바람에;;; 그 제도가 없어졌죠;;;

세계로 눈을 돌리면 참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_+

정글에서 3G 네트워크와 중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불법 벌목을 잡아낸다는 것, 데스크탑 몇 대로 통신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모두 놀라운 이야기들이죠. 그런 혁신의 세계에 우리도 한 발 담그고 있구요.

세상을 바꾸는 건 기술이지만 그 기술은 인간이 만듭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타인을 위해 기술을 만드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런 곳 굴러다녀본 사람들은 한국 청년들이 밖에 나오면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꼰대 의식이 생기기도 하죠;;; 정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학자금 대출에 숨도 못 쉬는 친구들은 장기적 관점이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문제가;;;

오지는 정말 낭만적이지 못하죠, 자연은 더럽고 위험하고 태양빛은 인간의 피부를 초고속으로 노화시킵니다. 저는 맨다리로 풀 자란 곳을 걸어다니기만 해도 독이 올라 며칠간 다리가 죽음의 가려움에 휩싸입니다.

제대로 망해서 가진 것 별루 없는 제가 꽤 비싼 아웃도어 의류와 신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이유입니다;;;

오픈소스로 기지국 세우는 것은 예전에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네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국가의, 한번 도 써본 적 없는 통신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새삼 새롭네요. 세상은 참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2G 기지국 세우는 것은 2014년에 블로터에서 처음 다뤘죠. 위에서도 쓴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인 선교사 그룹들이 필리핀에서 이를 확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더군요.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5
JST 0.028
BTC 60327.79
ETH 2348.25
USDT 1.00
SBD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