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책, 현대인의 자화상

in #kr7 years ago


Feces_72.jpg

베어그릴스의 스컹크 고기 시식평에 대한 번역은 이러했다.
"누가 제 스테이크를 가져다가 개 얼굴에 문지른 것 같은데요."
물론 이는 오역이다. 원문에 사용된 단어는 "개 얼굴(dog face)"이 아니라
"개똥(dog feces)"이다. 즉 "개똥에 문지른 것 같은데요"가 올바른 번역이다.

'face'와 'feces' 는 발음과 철자가 서로 상당히 비슷하다.
어쩌면 얼굴과 똥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은 예상치 못하게 심각해지는데,
그 이유는 영어권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고전언어인,
라틴어로 똥이라는 단어가 'faeces'이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귀찮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소시민들의 권리를 침투하며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데, 누
구나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권력자들에게
계속해서 따뜻한 미소를 보낼 수 밖에 없다.
웃는 얼굴은 상대의 권력 폭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훌륭한 방어책이자, 긍정 그 자체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웃음을 강요당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우리의 모습은
사실 이미 오래 전 부터 인식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권력자들에게 상냥한 얼굴을 들이밀며 아첨하면,
주위사람들로부터 "똥꼬를 빤다"는 비아냥이 뒤따른다.
혹은 스스로가 "똥꼬를 빤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미소라는 긍정의 힘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하는
우리의 참을성을 드높이기 보다, "똥꼬를 빤다"는 표현으로
냉혹한 자조적 풍자를 더욱 일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화답해야 할 일이 많은 우리의 삶이 그토록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권력자에게 미소를 짓는 것은 똥을 핥는 것만큼 괴롭다.
똥을 핥는 자는 필연적으로 얼굴에 똥이 묻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에 똥이 묻는다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아주 치명적인 일이기에 더더욱 싫다.
사회생활 속에서 쉴 새 없이 권력자를 상대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은 그렇게 똥찌꺼기로 얼룩져 간다.
그리고 곧 똥인지 얼굴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해진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현대인들은 고통스러운 하루 일과가 끝난 후 곧장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 이는 하루종일 똥냄새를 풍기며 굴러다녔던
자신의 얼굴과 몸을 정화하는 일종의 성스러운 세레모니다.
샤워가 끝나고 나서, 페이스북에 자신의 오늘 하루 자신의 얼굴 씀씀이를
기록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장문의 포스팅은 생각보다 쉽게, 순식간에 완성된다.
직장상사에 대한 욕, 진상 고객들을 만난 경험 등은
글로 쓰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페이스북에는 이런 류의 포스팅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페이스북은 얼굴이 온통 똥으로 뒤범벅된
현대인들의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가득한 "똥책"이 될 것임을
마크 주커버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그것의 이름이 "페이스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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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무섭지만,,의미가 있는거 같네욤ㅋㅋ

President Lyndon Johnson's beagles were named Him and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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