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으로 끝난 상처뿐인 승리 - 뉴욕 증권거래소의 결투: 스터츠 vs. 공매도 세력 2부

in #kr6 years ago



뉴욕 증권거래소도 같은 편

라이언이 주식을 매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매도 세력은 뉴욕 증권거래소에 압력을 가해 라이언을 파멸시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위원회는 스터츠를 상장 폐지시키겠다고 위협했고, 라이언은 주당 1,000달러를 요구하겠다고 맞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권거래소의 결정은 스터츠 주식의 전면적 거래 중지였다. 이런 식으로 주식 거래 금지한 선례나 규칙은 없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래소 대변인은 "거래소가 한다면 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던 와중 4월 5일 엄청난 발표가 나왔다. 뉴욕 증권 거래소 법률 위원회가 "계약 당사자가 스터츠 주식을 입수할 수 없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므로, 이를 인도 불이행으로 처리하지 않을 방침이다."라고 밝힌 것이다.

사실상 뉴욕 증권거래소가 공매도 세력의 계약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공매도 물량을 커버해야 할 법적 책임을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래소는 라이언에게 이번 조치를 법원으로 가져가던 마음대로 하라고 전했다. 라이언은 이에 대해 공매도 세력과 협상할 마음이 없으니 거래소가 공매도 세력과 합의해 가격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가 간에 의견이 맞지 않으면, 전쟁에 돌입하고, 기업 간에 의견이 맞지 않으면,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전에 돌입한다. 공매도 세력은 증권 거래법에 정통한 로펌 도스 파소스 브라더스를 고용했다. 존 랜돌프 도스 파소스는 1882년 증권 거래법 관련 서적 "Treatise on the Law of Stock Brokers and Stock Exchanges"를 펴냈고, 1901년 펴낸 "Commercial Trust"에서 셔먼 독점금지법을 맹렬하게 반대한 바 있다.

그의 아들 존 로드리고 도스 파소스는 나중에 자본주의를 옹호한 그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사회주의 3부작인 "U.S.A."를 펴냈다. 재미있는 일은 1950년대가 되자 도스 파소스는 정치적 시각으로 180도 바꿔, 배리 골드워터와 리처드 닉슨의 선거 운동에 나섰다.

라이언이 고용한 로펌은 스탠치필드 & 레비였다. 이 로펌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처럼 소규모였다. 사실상 라이언 대 뉴욕 증권거래소 간의 싸움이 된 상황에서, 거래소가 공매도 세력에 유리하게 규정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라이언은 거래소 회원에서 물러났다. 오히려 회원 자격을 버림으로써 더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거래소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식 매매에 대한 거래소의 규제에 구속받지 않게 되었다.

라이언은 뉴욕 월드 기자에게 스터츠 주식 공매도에 참여했으면서, 이 사건을 담당한 위원회에 소속된 뉴욕 증권거래소의 임원들의 이름을 전달했다. 거래소의 회원들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주 또는 연방의 규제에 따르면, 분명한 이해 상충 관계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고, 공매도 세력이 계약을 위반한 소지가 있고, 라이언과 공매도 세력 간에 원만한 해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4월 20일 보호 위원회 또한 라이언과 공매도 세력 간에 합의된 가격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55개 회사가 5,500주에 상당하는 스터츠 주식 공매도에 관여되어 있었다. 한편 여기에는 라이언이 스터츠 주식을 방어하는데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 또한 관여되어 있었다.

협상은 며칠 동안 계속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라이언은 4월 24일 토요일까지 장외 거래소에서 거래 중인 모든 스터프 주식을 매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니치 스트리트에 뉴욕 커브 거래소 건물이 세워졌던 1921년까지 장외 거래소는 자체 건물이 없었다. 따라서 장외 거래는 브로커들이 야외 길거리에서 거래를 한 다음, 위에 있는 사무실 창구 직원에게 신호를 보내 거래 확정 짓는 식으로 이뤄졌다. 라이언과 공매도 세력 간에 정오의 결투가 예정된 곳이기도 했다.



(당시 장외 시장의 모습)

정오의 결투

토요일 아침 라이언과 공매도 세력 간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공매도 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된 커널 존 W. 프렌티스는 토요일 장외 시장은 오전장만 진행되는 관계로 개장 전에 라이언과 협상을 매듭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 세력은 같이 움직이기로 합의했고, 쪽지를 돌려 서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적어내도록 했다. 이어 프렌티스가 쪽지를 취합해, 적혀 있는 가격의 평균을 계산했다.

브로드웨이 111번가의 앨런 A. 라이언 사무실에 대표단이 도착한 시간은 9시 40분이었다. 대표단은 라이언에게 주당 550달러를 제안했고, 라이언은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때는 10시 2분 전이었다. 프렌티스는 기자들에게 스터츠 문제가 주당 550달러에 타결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결전을 보지 못한 브로드 스트리트의 군중들을 빼곤 모두가 행복했다.

라이언이 대승을 거둔 듯 보였다. 이 거래로 15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장부상으로 1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스터츠 모터를 단독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처뿐인 승리였다. 라이언은 여전히 수백만 달러의 은행 빚이 남아있었고, 유일한 해결책은 스터츠 모터 주식을 팔아 갚는 것뿐이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스터츠 주식 거래가 중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식을 대량으로 거래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빚을 갚지 못하면,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파산으로 끝난 승리

공매도 세력은 졌지만, 여전히 라이언을 무너뜨릴 힘을 갖고 있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라이언의 회원직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사회는 라이언의 행위가 스터츠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인 것에 해당하므로, "공정하고 평등해야 하는 거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라이언은 거래소에서 진행될 비공개 청문회에서 자기 행동을 해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라이언은 이 "불공평한 청문회"에 서길 거부했고, 청문회는 그 없이 진행되었다. 라이언은 만장일치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제명되었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1920년 7월 그의 회원 자격을 98,000달러에 팔았지만, 11월까지 기술적 이유를 핑계로 그 돈을 라이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라이언의 주된 문제였던 은행 빚은 풀리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 주식 시장은 계속 하락했고, 라이언이 보유한 다른 회사들인 스트롬버그 카뷰레터, 콘티넨털 캔디, 시카고 뉴매틱 툴 및 헤이던 캐피털의 주가도 급락했다.

11월이 되자, 라이언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채권자들은 그의 아버지가 최대 주주로 있던 개런티 트러스트 컴퍼니로 달려갔다. 아버지 라이언이 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지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자는 몇 년 동안 불화를 겪고 있었고, 아버지는 아들을 돕는데 관심이 없었다.

11월 은행들은 라이언의 문제를 담당할 위원회를 구성했다. 라이언에게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이윽고 1922년 7월 21일 파산을 선언했다. 라이언은 아버지의 옛 파트너의 아들 해리 페인 휘트니에게 1백만 달러 이상, 체이스 내셔널 은행에 약 350만 달러 그리고, 개런티 트러스트에 866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라이언의 회생 여부는 경매에 내놓은 스터츠의 주식에 달려있었다. 개런티 트러스트의 변호사는 스터츠의 주식이 60달러 이상으로 낙찰되면, 라이언이 부채를 갚고 파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스터츠의 주식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정지되었기 때문에,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고, 주가는 2년 만에 급락해 있었다. 1920년 말 180달러였던 주가가 1921년 말 50달러로 떨어졌고, 스터츠가 파산을 선언할 당시 15달러에 거래되었다.



(스터츠 모터의 주가. 1918~1925년)

경매에서 스터츠의 주식은 라이언의 멘토 찰스 A. 슈왑에게 주당 20달러에 낙찰되었다. 비어캣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슈왑은 스터츠를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되돌리지 못했다. 1930년 12월 회사는 10 대 1의 주식 병합을 실시해야 했고, 1932년 고급 승용차 및 로드스터 대신 식료품 배달용 밴 생산으로 전환했다. 그러다가 1938년 마침내 파산을 선언했다.

라이언은 스터츠 모터로 인한 몰락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1940년 세상을 떠났다. 불행히도 라이언은 아버지가 192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아버지 라이언은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수백만 달러씩을 유산으로 남겼지만, 1억 5천만 달러로 추산되는 재산 중 앨런 라이언에게 남긴 것은 셔츠에 달린 백진주 장식뿐이었다.

자료 출처: Global Financial Data, "High Noon at the NYSE: Stutz vs. the Sh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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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결말이네요ㅠ
역시 남의 돈으로 투자하면 안되는 거군요!

잘봤습니다 오늘도

공매도 세력은 정말 너무 합니다...
비트도 공매도 세력에.... 사라지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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