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역사] 인간의 본성과 금융 위기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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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로웬스타인의 책 “America’s Bank”는 연방 준비 제도의 태동과 그로 인해 초래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은행 개혁을 촉발시킨 중요한 촉매 중 하나는 1907년 공황이었다.

1907년 공황의 원인

기본적으로 1907년의 공황은 전형적인 예금 인출 사태로 뉴욕의 니커보커 신탁 회사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의 현금 보유고가 고갈됐고, 도시 전역 그리고 경제 전반의 유동성 부족을 일으켰다.

상점들은 물품 대금을 어음으로 지불할 수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현금이 모자랐으며, 농민들은 농작물을 팔지 못했고, 경제는 침체로 접어들었다.

첫 번째 도미노

모든 것은 일상적인 투기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예측이 틀렸을 뿐이다. 당시 "주식 투자자"는 엄청난 자금을 빌려와 주가를 조작하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곤 했다.

대형 투기 세력과 이들의 연합체는 초대형 주식의 주가를 좌지우지할 만큼 엄청난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다.

1907년 10월, F. 오거스터스 하인츠라는 은행가가 구리 채굴 시장에서 주식 매집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매집 과정에서 60까지 상승했던 주가의 곧 10으로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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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가 조작에는 본래 레버리지가 사용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대중은 하인츠의 은행 머컨타일 내셔널 뱅크의 파산을 걱정했다. 실제 하인츠의 은행은 아직 건전했다.

하지만, 은행의 특성상 대중의 생각이 현실이 되었고, 예금자들의 예금 인출 사태가 일어났고, 머컨타일은 살아남기 위해 긴급 대출이 필요했다.

현재로 보면 소형 은행 한 곳의 파산한다고 해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대출 기관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없고, 예금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예금 보험도 없었던 당시에는 이 소형 은행의 예금 인출 사태가 다른 은행들로 전염병처럼 퍼졌다.

공포의 확산

뉴욕 전역의 다른 예금주들도 자기 예금이 안전한지 염려하기 시작했고, 2008년의 리먼 브러더스의 경우처럼, 대형 은행들이 경영진 “불신임” 투표에 시달리면서 공포가 확산됐다.

고작 2일 후인 1907년 10월 18일이 되자, 뉴욕의 대형 신탁 회사 중 한 곳(니커보커 트러스트)의 대표가 하인츠와 관계되었다는 뉴스가 나오자, 도시 전역의 사람들이 자기 예금의 안전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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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예금 인출 사태였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불러왔고, 모든 이들이 즉시 현금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당시 뉴욕에 있는 신탁 회사들은 기술적으로 은행은 아니었지만, 예금을 받고, 대출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신탁 회사들에 대한 규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신탁 회사들은 주식 중개 업체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등 위험성이 큰 대출을 남발했다.

주식 중개업체들은 무담보로 대출한 자금을 다시 고객들에게 빌려주었고, 고객들은 이 자금을 증거금으로 주식을 매수했다. 당시 은행은 예금 4달러 당 1달러 내외의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탁 회사의 경우, 1달러 준비금 대비 예금 규모가 20달러까지 벌어져 있었다.

즉 신탁 회사들이 예금 인출 사태에 훨씬 더 취약했다는 의미다. 예금 중 5%만 회수되더라도, 신탁 회사는 파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정보의 전파가 느렸기 때문에) 예금 인출 사태는 오후에 발생하곤 했다. 그리고 1907년 10월, 니커보커가 파산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J.P. 모건이 주도해 모인 은행가들은 니커보커의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장부를 조사했다. 결국, 당시 일종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이 은행가들은 니커보커를 파산하게 놔두기로 결정했다(기술적으로, 이 신탁 회사를 파산 처리한 것은 아니고, 6개월 동안 영업을 정지하고, 예금 인출을 금지했지만, 실질적으로 파산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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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커보커의 파산은 뉴욕 전역에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이 전염병은 다른 은행들과 대형 신탁 회사들로 빠르게 번졌다. 모건과 동료들은 니커보커에 대한 결정이 실수였음을 깨달았고, 즉시 방향을 바꿔 아메리칸 트러스트 컴퍼니와 다른 주요 금융 기관에 구원의 손실을 내밀었다.

이 조치로 최악의 결과는 면한 것처럼 보이지만, 2008년과 마찬가지로, 구제 금융이 위기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예금주들은 계속 현금 인출을 요구했고, 전체 금융 시스템의 준비금은 급격히 소진됐다. 뉴욕 신탁 회사들에 예치 중이던 예금 중 48%가 빠져나가, 각 가정의 매트리스 아래나, 옷장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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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황은 결국 경제 전반으로 번졌다. 기업들은 운영 자금이나 임직원들의 월급 지급에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많은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고 생산 라인을 껐다. 주식 시장은 40%나 급락했다.

경제가 악화는 실질적인 피해를 불러일으켰고,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이들의 곤경을 얘기하기란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 행동의 관점에서 볼 때, 1907년의 공포는 흥미로운 일련의 사건의 연속이었다.

금융 시장 공포의 운율

좀 더 덧붙이자면, 1907년의 공황과 101년 후 2008년 일어난한 위기 사이에는 아주 비슷한 점이 많다. 하인츠 은행의 파산은 베어 스턴스와 비슷했다. 첫 번째 도미노 조각이었지만, 자체적으로 충분히 관리가 가능했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하지만 니커보커(2008년 9월의 리먼 브라더스)는 위기를 가속화하고 금융 시스템을 거의 파멸시킨 촉매제였다.

두 경우 모두, 해결 담당자(1907년 모건과 연합체, 2008년 버냉키와 폴슨)는 금융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던 은행을 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이 결정은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주가를 폭락시키고, 다른 은행들의 예금 인출 사태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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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현금을 원했다. 또한 두 은행의 파산은 해결 담당자들이 방향을 바꿔 다른 금융 기관들을 구해 내게 만들었다. 1907년 모건은 아메리칸 트러스트 컴퍼니를 구했고, 2008년 미국 정부는 AIG를 구했다.

또한 1907년과 2008년 구제 금융이 시작되기 전, 두 해결 담당자들은 모두 파산 위기에 놓은 은행을 지원할지 말지가 걱정거리였다. 1907년에는 무분별한 대출이 걱정거리였고, 2008년에는 도덕적 해이가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금방 옆으로 밀려났고, 실질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 시스템의 구원이었다.

여파 - 변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대로인 것도 그만큼 많다.

두 위기의 여파는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두 경우 모두, 은행의 예금 인출 사태가 추가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현금을 요구했으며, 유동성이 마르자, 신용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곤경에 처하게 됨으로써 경제 전반의 침체를 가져온 것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2008년의 여파와는 달리, 1907년의 경기 침체가 아주 심각한 동시에 회복도 빨랐다는 것이다.)

두 위기 사이의 정치적 여파도 아주 비슷했다. 대부분의 위기가 그렇듯이, 정치권은 여론을 등에 업고, 기업인들을 불러들여 잘못된 원인을 추궁했다.

모든 위기의 일반적인 결과는 항상 동일하다. 남 탓을 할 만큼 하고 나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규제를 늘리는 것이 해법이 된다. 모든 것이 다음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때로는 이런 사후 조치가 합리적인 개혁을 낳기도 한다.

1907년에는 연방 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이 제정되었다. 당시 이 법률은 정부의 권력이 너무 과도하게 도를 넘은 것이라 격렬한 논란이 있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금융 시스템의 필수 요소로 입증되었다. 대공황은 연방 예금 보험 공사(FDIC)와 증권 거래 위원회(SEC)를 낳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 위기는 도드-프랭크 법(Dodd-Frank)과 금융 소비자 보호국(CFPB)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사후 조치의 이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런 모든 위기의 공통분모와 거기서 나타난 인간 행동의 연구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위기는 필연적으로 반복된다. 때론 법률 및 규제가 이전의 위기의 원인이 다시 생기는 것을 막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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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금융 시장의 두 가지 상수라는 점에서, 다음번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다음번 위기의 원인은 다를 것이며,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공황 이전, 도중 및 이후의 인간 행동은 이전과 아주 비슷할 것이다.

실용적 교훈

투자자의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시장 역사에서 발생한 다양한 금융 위기를 연구하는 것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이들 사건에 대한 기록을 직접 읽어보면, 인간의 감정과 군중 행동이 자산 가격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반 투자자뿐만 아니라 전문 투자자들 또한 공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위대한 투자자는 그런 공황 속에서 태어난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1907년 모건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었고, 저렴하게 자산을 모아들였다.

2008년 공황 상황에서 버핏 또한 나서는 이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자본을 제공하고 주식을 사들였다. (그리고 우연히도 J.P. 모건의 시조 은행 또한 1907년 금융 시스템을 살려내는데 일조한지 101년 후 싼값에 자산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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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모건의 연합체에 속해 위기를 통해 더 강력한 입지를 다졌던 일부 은행들처럼, 오늘날 세계 최고 기업들 중 일부는 2008년의 위기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버크셔와 JPM이 두 예다. 위기 동안 아무도 하려 하지 않던 자본 투입을 확대하고 기업을 적극 인수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워야 하는 한 가지 교훈은 위기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금 비중 없이 모든 자금이 투자되어 있고, 포트폴리오의 모든 주식이 하락 중이라 하더라도, 시장 붕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의 주식이 포트폴리오에 있다면, 전체 포트폴리오의 가치 하락은 크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결국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다).

나중에 봤을 때, 거의 모든 위기는 대담하게 생각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회였음이 드러났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이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을 부리는 것"이야말로 투자에서 가장 분명하고 가장 널리 통하는 말 중 하나다.

하지만 말하는 것보다 행동에 옮기기는 훨씬 어렵다. 때문에 위기를 연구해야만 행동에 옮길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아주 강력한 힘이다.

<출처: Base Hit Investing, "Human Behavior and The Panic of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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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많은 사람들이 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나봐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정말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공포에 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대사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포는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겨내는 거 뿐만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네요.ㅎㅎ
그게 성공하는 이유겠죠? 잘봤습니다~

금융위기의 역사, 여러 경로를 통해서 관련자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새롭게 알게된 내용들도 많네요.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저녁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보고싶어서 팔로우하고 갑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진글 잘읽었습니다. 말씀하신데로 위기에 빛을 발하는지는 위기에대한 대처와 그리고 합리적인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밀어부치는게 용기는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위기에도 결국 ... 기회가 있는 법이니 ;; 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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