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배운 지식 vs. 경험으로 배운 지식

in #kr6 years ago (edited)



아치볼드 힐(Archibald Hill)은 자신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매일 아침, 식전에 운동장을 돌았습니다. 어떤 날은 빠르게 달려도 힘이 들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다리가 결리고 지쳤습니다. 그는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힐은 자신의 운동 능력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그는 세계 최고의 생물 물리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몇 개월 동안 운동장을 돌면서, 산소 소모량과 근육 피로도를 측정했고, 이 둘과 지구력의 연관성을 연구했습니다. 힐은 자신의 최대 한계치를 알고 싶었습니다. 즉 달리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은 최대 산소 소모량을 계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계산으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달리기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1926년 그는 "우리 몸은 기계와 같아서, 에너지 소비량을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라고 썼습니다. 이 발견으로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아무리 정확하게 계산을 거쳐도, 실제 육상 경기를 예측하는 데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육상 선수들 모아, 이들의 산소 섭취량과 젖산 축적량 측정한 다음, 어떤 선수의 몸이 최고인지 이론상으로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특정한 통제된 환경에서는 예측과 실제 결과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경주(특히, 장거리 경주)에서는 예측이 맞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낮다고 예측한 선수가 체력이 가장 좋은 선수들을 말도 안되게 이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론상으로 볼 때, 특정 능력(일정 속도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수들이 예측보다 훨씬 앞서 달리기를 포기했습니다.

힐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용도로 그런 계산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용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한 일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겸손한 말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힐은 다른 누구보다 먼저 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뭔가 다른 것을 밝혀냈습니다. 운동 능력에는 육체적 능력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뇌가 주어진 순간의 위험과 보상을 견뎌낼 수 있느냐의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의 첫 번째 임무는 자기 몸이 죽어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동차의 조속기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아닌 한, 몸이 최대치의 성능을 발휘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즉, 죽을 정도로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뇌는 할 만한 가치가 없는데 괜스레 위험만 큰 일이라면, 그 전에 미리 몸에 제동을 걸어 멈추게 합니다. 연습에서의 육체적 달리기 한계는 올림픽 결승 경기에서의 육체적 한계와 아주 다를 수 있고, 또 칼을 든 사람을 피해 도망갈 때의 육체적 한계와도 다릅니다.

사람이 차에 깔려 위험한 상황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두 손으로 차를 들어 올린 사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능력이란 그 순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순수한 화학 작용 이상의 것이 있다."라고 힐은 말합니다. 우리는 관중의 압박감, 경기 중의 위험, 졌을 때의 수치심 및 이겼을 때의 보상 같은 실제 경기 상황을 맞닥뜨리기 않고는 운동선수들이 어떤 능력을 펼칠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실험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치볼드 힐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누이와 결혼했습니다. 케인즈는 힐이 생리학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사실을 경제학에서 발견했습니다. 어떤 종목이 내일 어떤 성과를 보일지 오늘 측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시장이나 모두 순수한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과 시장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그러한 영혼은 교실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과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힐은 이것을 "도덕적 요소"라고 불렀고, 케인즈는 "야성적 충동"이라고 불렀습니다. 둘 모두 "현실의 사람과 책속의 사람은 다르다. 거기에 맞춰 연구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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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은행 강도 윌리 서튼(Willie Sutton)은 1920년대에 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일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당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개업 변호사 아래서 연수를 받아야 하고, 스스로 법률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고참 변호사의 가방모찌 생활을 하면서 재판 실무를 익혀야 했다. 고참 변호사는 "연수 제도가 법률에 조예가 깊은 변호사로 만들어 주진 않겠지만, 지금 보다 훨씬 재판에 뛰어난 변호사가 되게 해줄 것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책으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배운 지식은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를 논할 수 없습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은 실험실에서 보았을 때 또는 대규모 집단으로 관찰했을 때,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 또는 역사적으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배운 것입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은 실제 세상에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패턴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아주 유용합니다. 수식, 데이터, 자연과학이 그렇습니다.

경험으로 배운 지식은 책에는 아직 나와 있지 않거나, 글로 요약하기에는 너무 미묘한 것들을 (종종 잠재의식적으로) 배운 것입니다. 심리학, 기호학, 사회학, 정치학 안에 숨어있는 미묘한 세부 요소들이 그렇습니다.

경험으로 배운 지식 없이 책으로 배운 지식만으로는 위험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맥락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변동성이 더 높은 자산이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책으로만 배운게 분명합니다.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했다가 원금이 반 토막 난 상황을 맞이하고는 아내의 눈총에 팔아버린 다음, 나중에서 이 자산이 상승해 좋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모습에 다시 후회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책으로만 배워서는 아내의 눈총이 얼마나 따가운지 알 수 없습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 없이 경험으로 배운 지식만으로도 위험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직관에 반하는 힘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경제 또는 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이 힘이 계속될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안정성은 사람들을 자만하게 만들고, 이런 자만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이끌며, 이런 과도한 위험 감수가 다시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만 멀뚱이 면서 앉아 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트와 데이터로 된 거품의 오랜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위험과 손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연구를 개척했습니다. "손실 혐오"(위험과 수익의 크기가 같을 때, 수익으로 인한 기쁨보다 손실로 인한 아픔이 더 크기 때문에, 손실을 회피하는 경향)이라는 중요한 발견을 이끌어 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경험으로 배운 지식과 짝을 이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손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생각의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같은 경험으로 배운 지식이 필요합니다. 실험실에서는 측정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심 탈렙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한 피험자에게 100달러를 잃을 확률이 1%인 경우 얼마를 걸겠느냐고 물어보라... 여러분은 그가 손실 혐오로 얼마나 많이 베팅할지 알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감수할 현재 및 미래의 모든 다른 재정도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세상에서의 다른 위험들고 알아내야 한다. 차가 있어 외부가 긁힐 수 있는지, 투자 포트폴리오가 있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지, 빵집을 운영하고 있어 화재 위험이 있을 수 있는지. 대학 다니는 자녀가 있어서 학비가 더 들어갈 수 있는지, 직장에서 실직당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내야 한다. 이런 온갖 종류의 위험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의 반응은 이 모두를 반영한다.

카너먼의 발견이 맞는지 탈렙의 반론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꼭 판단해야 한다면, 카너먼의 발견은 학문적 지식이고, 탈렙의 반론은 실제 세상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둘을 합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은 규칙을 알고 있고, 스승은 그 예외를 알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빌리자면, 책은 진실을 알고 있고, 경험은 그 뉘앙스를 알고 있습니다.

먼저 규칙을 배우고 난 다음, 사람들이 이 규칙을 어떻게 사용하고 또 남용하는지 관찰해 보기 바랍니다. 투자에서 대부분의 비극은 좋고 유용한 규칙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4년 전 넷플릭스의 공매도가 왜 효과가 없었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치 투자자도 있고, 연준의 정책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이 틀렸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LTCM 관련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규칙을 금과옥조처럼 무조건 믿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규칙을 어떻게 다루는지 관찰하는 것이 규칙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자기 분야 밖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투자자도 의약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하고, 군대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아야 하며, 진화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분야의 특정한 학문적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분야의 지식을 사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읽고 생각하는 범위를 넓혀 사람들이 실제 세상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지 들여다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보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위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뜻밖의 일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라는 말입니다. 실제 세상의 일들은 논문에 나온 공식이나 주장으로 정량화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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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화학자건 시인이건, 생물학자건 성인이건, 누구나 가는 길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리고 안경을 닦기 위해서는 가끔씩 멈춰서야 한다."

좋은 충고입니다.

<출처: The Collaborative Fund, "Real World vs. Book Knowledge">

늘~~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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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전 지식인의 경험을 토대로 일정한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고 경험은 변화된 세상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죠.
책을 읽는 이유는 그들이 했던 실패로 인한 리스크를 감소시키고 변화된세상에 약간의 실패만으로 더 나은 지식을 얻고자 함이 아닐까요.

안경을 닦기 위해서는 가끔씩 멈춰서야 한다

시적이면서 울림이 있네요.

어떤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지식은 익혀나가 실천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와우.. 멋진 글이네요.
자기 분야 밖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는것과
가끔은 멈춰야 한다는말이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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