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 - 수도원에서 자본주의로

in #kr5 years ago (edited)



겨자와 레드삭스

미국 겨자 박물관(National Mustard Museum)은 전 위스콘신주 법무 차관보 배리 레빈슨(Barry Levenson)의 아이디어였다.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패한 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많은 레드삭스 팬들처럼, 그 또한 울분을 털어내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 별다른 목적 없이 카트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중 겨자 병으로 꽉 찬 코너를 발견했다. 여기서 문득 새로운 취미가 떠올랐다. 이렇게 자기가 몰랐던 브랜드의 겨자 몇 병을 구입한 데서 시작해, 전 세계의 모든 겨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1987년이 되자, 레빈슨은 이 새로운 취미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어느 날 대법원 재판에 참석차 호텔에 묵던 중, 호텔 복도에 있던 룸서비스 트레이 위에 처음 보는 겨자 병을 발견했다. 방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겨자 병을 그냥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법원으로 행했다. 그는 재판에서 이겼고, 아마 주머니에 겨자 병을 넣고 재판에서 이긴 유일한 변호사였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전문적인 겨자 수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국립 겨자 박물관 내부)



현재 겨자 박물관에는 전 세계 6,090종 이상의 겨자 병을 보유 중이며, 그중 5,624종이 전시되어 있다. 매년 8월 첫 번째 토요일, 박물관은 모금 행사 및 지역 사회 활동을 통해 전국 겨자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매디슨 에이리어 테크니컬 칼리지(Madison Area Technical College)와 함께 세계 겨자 대회(World-Wide Mustard Competition)을 주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전 세계에서 수백 종의 겨자 참가한다. 참가한 겨자는 16가지 분야에 걸쳐 요리사, 음식 평론가 및 기타 음식 전문가들의 심사를 받게 되며, 각 분야별 상위 3종에 상이 수여되고, 그중 최고에게 대상이 수여된다.

대회는 매년 개최되며, 현재 25회차에 들어섰다.

겨자 기름 폭탄

겨자는 십자화과(Brassicacae 또는 Cruciferae)에 속하는 겨자의 씨로 만들어진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겨자는 브로콜리, 양배추, 꽃양배추 및 유채 같은 배춧속(brassica/cruciferous) 식물들과 친척이다. 겨자의 독특한 매운맛은 '겨자 기름 폭탄(mustard oil bomb)'이라고 불리는 방어 기제의 산물이다. 겨자씨를 물, 와인 또는 식초에 넣고 으깨면, 세포 조직에서 두 가지 성분(미로시나아제라는 산-민감성 효소와 글루코시놀레이츠라는 똑쏘는 맛의 화학물질)이 방출되고, 이 두 물질이 서로 반응해 이소티오시아네이트라는 고 자극성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겨자 밭)



이 이소티오시아네이트는 겨자의 맛을 내는 주성분으로 항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겨자의 보관 기관을 거의 무한정으로 만들어준다. 겨자 잎을 먹고 사는 해충에게는 독성이 강하고 자극적이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그저 톡 쏘는 자극적인 맛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식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소티오시아네이트의 화학 구조는 우리 코와 입안 점막에 있는 TRPA1이라는 통증 감지 단백질과 직접 반응한다. 이소티오시아네이트와 반응한 후, TRPA1 단백질의 내부에 골고루 분포한 황-함유 아미노산의 화학구조가 변하고, 그에 따라 통증 자극이 활성화된다. 그 결과, 우리가 입안에 겨자 한 숟가락을 집어넣을 때마다, 순식간에 눈물이 핑 도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겨자 기름 폭탄 방어 기제가 다른 많은 십자화과 식물들(이과와 관련 있는 호스래디시와 와사비는 말할 필요도 없이)의 공통된 특징이기 때문에, 이들 식물도 마찬가지로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 매운 식물에 맛을 들인 이유가 바로 겨자 기름 폭탄 때문이다. 그리고 산성 식초와 와인에 겨자씨를 넣어 으깨면, 미로시나아제 효소의 활성을 줄어들고, 생성된 이소티오시아네이트의 농도를 떨어지기 때문에, 매운맛을 기호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그레이-뿌뽕, 콜맨 & 프렌치

겨자의 재배 기록은 인도 아대륙의 고대 인더스 문명 시대였던 기원전 1,80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겨자씨를 달콤한 포도 즙과 섞어 으깨고, 이를 다른 허브 및 향신료와 섞어 소스로 만들어 먹은 최초는 로마인들이었을 것이다. 로마가 갈리아(프랑스 지역)를 정복했을 때, 지역에 겨자씨를 들여와 재배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겨자 만드는 법이 갈리아 지역에 전해졌고, 지역 수도원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일부 수도사들은 겨자를 최음제라고 생각했고, 기르지도 만들어 먹지도 못하게 금지하기도 했다). 많은 시간을 기도와 묵상으로 보내던 프랑스 수도사들에게는 여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겨자를 거의 예술의 경지로 완벽하게 만들어내게 되었다. 마치 동양의 선승들이 그렇게 간장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13세기가 되자, 프랑스 디종시는 겨자 생산의 세계 중심지로 떠올랐고, 겨자 소스는 그 독특한 맛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 요리에 겨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두 가지 역사적 사건에 의해 확산 속도가 더 빨라졌다.

1812년, 영국의 제레미아 콜맨(Jeremiah Colman)이 겨자 제조업체 콜맨스(Colman’s)를 세웠다. 여기서 만든 겨자가 품질과 맛으로 유명해졌고, 영국 여왕은 콜맨스의 겨자를 "겨자의 크라운 주얼(crown jewel of mustards)"이라고 공표했다. 1866년 빅토리아 여왕은 콜맨스에게 왕실 인증(Royal Warrant; 황실 납품 허가증)을 수여해 독점 겨자 납품업체로 선정했다.

영국 해협을 가로질러, 프랑스 드종에서는 모리스 그레이(Maurice Gray)가 자동 겨자 생산 기계를 발명했다. 그레이는 이 기계로 상을 받기 시작해, 1860년 프랑스 왕실 보증(French Royal Appointment)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어 그의 손으로 겨자가 상업적 규모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1866년 그레이는 다른 겨자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오귀스트 뿌뽕(Auguste Poupon)와 합작으로 그레이-뿌뽕(Grey-Poupon)을 세웠고, 처음으로 드종산 겨자를 생산했다. 영국에서 콜맨스가 영국 왕실 인증을 받은 해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 같은 노란색 겨자가 나온 건 훨씬 후였다. 1904년 조지 J. 프렌치(George J. French)와 프란시스 프렌치(George J. French)의 겨자 제조업체 프렌치스(French’s)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를 통해 소개된 것이 시초였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겨자는 장안의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산 겨자는 유럽 산보다 더 부드럽고, 가벼우며, 크리미했다. 조지 프렌치는 그렇게 만들어야 소스로서 일반 미국 소비자 입맛에 더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프렌치스의 겨자는 강황 가루를 첨가해 독특한 노란색을 띠었다. 프렌치스의 겨자는 이런 독특함을 통해, 핫도그, 콘도그, 햄버거 및 샌드위치 등의 음식에 어김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1926년 프렌치스는 750,000파운드에 골맨스에게 인수되었다. 이후 1938년 콜맨스는 생필품 제조업체 레킷 & 산즈(Reckitt & Sons)와 합병을 통해 레킷 & 콜맨(Reckitt & Colman)으로 거듭났다. 1995년 콜맨 브랜드의 겨자를 비롯해, 레킷 & 콜맨의 많은 식품 사업은 2억 5천만 파운드에 유니레버(Unilever)에게 인수되었다.

1999년 레킷 & 콜맨은 네덜란드의 벤키저 NV와 합병으로 레킷 벤키저(Reckitt Benckiser)가 되었다. 2017년, 프렌치스 겨자는 42억 달러에 레킷 벤키저에서 향신료 대기업 맥코믹(McCormick)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계약에는 프랭크스 레드 핫(Frank’s Red Hot)과 캐틀맨스(Cattlemen’s) 같은 다른 유명 소스 브랜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계약 규모는 프렌치스 겨자의 연간 영업이익의 20배에 상당하며,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 Co.)와의 소스 전쟁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크래프트 하인즈는 크래프트와 하인즈의 합병으로 최근 탄생한 회사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하인즈 케첩을 제조하고 있는 한편, 이 브랜드로 겨자도 생산하고 있다. 이 합병 이전 크래프트는 그레이 뿌뽕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 1위 겨자 브랜드인 프렌치스는 지난 5년 동안 매출이 줄어들고 있으며, 시장 점유율에 있어서도 2014년 40.2%에서 2016년 35.7%로 하락을 겪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 크래프트 하인즈의 미국 겨자 시장 점유율은 19%라고 한다.

분명히, 이 거대한 겨자 전쟁은 다국적 기업, 식품 대기업 및 주식 시장에서의 격렬한 전투로 이어지고 있다.



자료 출처: Bryan Quoc Le, “Mustard — From Monasteries to Mad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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