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2 패배를 패배시킨다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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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ssay.2 패배를 패배시킨다

영화 : <No Country for Old Men, 2007>
감독 : 에단 코엘, 조단 코엘


칼슨은 보스에게 희대의 살인마 안톤을 잡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입만 나불대는 능력자’답게 칼슨은 안톤에게 은신처를 들킨 것은 물론이고 등 뒤에서 총을 겨눌 기회까지 준다. 킬러와 킬러의 싸움에서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완벽한 패배 앞에서 칼슨은 무기력하게 안톤에게 끌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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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필요 없잖아.”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다. 일이 잘 될 때는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창업한 자영업자 열 중 여덟이 문을 닫는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망할 것을 생각하면서 일에 뛰어들 수는 없는 법이다. 망할 것만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될 테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 레이스에 뛰어든 모두가 패배의 결과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니 막상 패배가 닥치면 비루한 변명이 튀어나오거나 혹은 ‘지기는 했지만 값은 치르고 싶지 않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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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지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잖아?”

패배의 결과는 분명하다. 그리고 모두는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닥쳐올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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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상황을 인정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좀 더 품위 있어 보이겠지.”

사람들은 늘 게임 속에서 허우적댄다. 제로섬게임이든 논제로섬게임이든 간에, 모든 선택에는 양방향의 대가가 준비돼있다. 그게 사회의 룰이다. 일단 사람들끼리 부딪히기로 작정한 이 도시에선 사람들이 건설한 대형 빌딩들에 스며든 룰을 따라야만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룰을 따를 때 성공과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혼자 도망가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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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나 가버려.”

드라마 <미생>에서 고지식한 오상식 차장의 의심과 경솔한 장그래의 발언이 나비효과가 되어 최영후 전무를 좌천시킨다. 일이 마무리 되고 최영후 전무는 오상식 차장을 찾아가 말한다.

‘모두가 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 하늘 너머를 보는 사람을 임원이라 하더군. 나는 땅에서 발을 떼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알게 됐지. 결국 회사가 원하는 임원이란 땅에 발을 딛고도 하늘을 볼 수 있는 거인이라는 걸.’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무수한 게임을 이겨본 사람답게 최 전무는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패배시킨 오상식 차장에게 경고한다. ‘나와 중국을 그렇게 건드렸으니, 앞으로 오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사업하기 힘들 거다.’ 라고.

‘룰’에 따르기로 작정했다면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나를 패배시킬 수는 있지만 패배시킨 대가도 만만찮다는 걸. 패배로 인해 잃게 된 걸 아까워하면서 비참한 변명을 하느니 차라리 적반하장으로 나를 망가뜨린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는게 더 매서운 일인 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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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굵직한 마피아, 카르텔 조직들 속에서 죽음과 생존이라는 치킨 게임에서도 살아남은 안톤 역시 ‘룰’을 존중하는 미치광이다. 안톤이 그의 광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무수히 패배시킨 자들을 보면서 늘 패배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지르다 총에 맞아도 병원에 못갈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약국을 털어 혼자 수술도 마다않는 인간이다.

만약 그가 패배한다하더라도 ‘이럴 필요는 없잖아’따위의 변명은 하지 않을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날 생각을 하고, 그럼에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거다. 아니, 숨이 끊어져 무의 세계에 빠지기 직전까지 ‘뭔가’를 할 테지. 패배한 안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트 점원이라도 될 것 같은가? 그는 절대 킬러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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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뭐 하나 물어보지....... 네가 따르는 규칙 때문에 이렇게 됐다면....... 규칙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지?”

목표를 잡고 전력질주를 했지만 그 결과로 내가 비참해졌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그 과정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닥쳐오는 니힐리즘의 마수 앞에서 모든 것은 무상해진다. 우리가 이미 원하지 않는 그 룰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안톤이 조소와 함께 내던지는 말은 가볍지 않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나 그것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끝내 인정해야만 했을 때 그 결과론적인 질문 속에서 나는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럴 때 내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하나밖에 없다. 나의 패배를 받아들이겠지만, 그 패배를 만든 운명 또한 무사하지 못하리란, 판도라의 상자 하나쯤을 남겨두는 것이다.

비참하게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패배 앞에 무릎 꿇지 말라. 차라리 단단한 비수를 감춰두었다가 패배를 향해 내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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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유화, 60cm x 49cm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에게 버림받고 귀를 자른 뒤 그 마지막 1년, 그는 죽음의 공포를 잊은 사람처럼 일생의 걸작들을 남겼고 마침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패배한 것은 그가 아니다. 그를 패배시킨 세상이다. 그는 잊히지 않았고, 도로 살아나 이 세상을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그 사실은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리라. 자신이 점차 파괴되리라는 것을, 그의 그림 또한 멈추지 않으리란 것을 말이다. 귀를 자르고도 자기 자신을 고수한 그의 자화상처럼. 그 결연한 눈빛은 무슨 대수냐는듯 자기 자신의 모습조차 개의치 않고 당당히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전문


패배를 패배시키는 방법은 패배된 것이 패배보다 큰 것이면 된다. 패배한 운명을 돌파해서, 그런 패배가 도리어 패배될 수 있을 정도의 더 큰 것을 만드는 일, 그것이 혼을 가진 자의 사명 아닐까. 눈은 떨어졌지만 시인의 눈과 이상 속에 들어온 이상 죽은 게 아니게 된다. 짙은 패배의 정적 속에서 그런 세상을 향해 기침 가래라도 내뱉는 일, 사명과 투쟁이 웃음거리가 된 이 시대에는 더 이상의 기대를 가지지 말라. 차라리 자신의 의지와 힘을 기르는데, 그러한 것들을 사랑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더 집중하자. 그것이 니체가 염원한 힘에의 의지이며, 그 모든 것이 나에게로 향하는 절대적인 고양이다.

이 순간 패배를 맞이한, 그 모든 위대한 고독 속에 숨 쉬는 패배자들이 자신의 패배보다 더 큰 무엇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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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가 패배가 아닌 것이 되려면 굉장히 강한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그렇습니다. 본래 큰 것은 작은 규칙 속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백미터 달리기에서 꼴지를 한 사람이 마라톤에서 우승했다면 그 사람이 앞서 패배한 이유는 백미터 안에서 뛰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의 방식은 백미터 달리기에선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시대나 어떤 정의나 룰, 그런 것들이 백미터 달리기에만 가치를 부여한다면 이 마라톤 선수는 결국 빛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라톤의 가치가 인정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인간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죠. 그러므로 마라톤의 룰을 그 스스로가 새로 개척해내거나, 그러한 것이 존중 받는 시대가 올때까지 혹은 그러한 시대가 오든 오지 않든 끝까지 훌륭함을 유지하는 굳건한 자가 패배를 넘어설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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