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리뷰]<항거>, 거룩한 뜻 아래 '미화'는 언제나 조심하자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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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에 대한 단상 24

<항거>, 거룩한 뜻 아래 '미화'는 언제나 조심하자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항거>의 배경은 3·1운동 전후를 삼고 있다.민족대표 33인의 발제로 시작된 '비폭력 평화 시위'는 전국 각지로 퍼져 당시 일제를 깜짝놀라게 했다. 실제로 3·1운동 이후 일본은 태도를 바꾸어 ‘민족 분열’을 골자로 한 부드러운 태도로 지식인과 유력자들을 회유, 변절을 유도했다. 실로최남선, 김동인 등 잘 알려진 지식인들이 이 시기를 거치면서 변절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유화 제스쳐’가 있었다고는 해도, 그 의도는 어디까지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지 조선 인민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항거>에서는 일본이 ‘일본의 문명국가다운 모습’을 위해서 ‘잔학상을 그치는 것만 같은’ 뉘앙스가 일부 담겨 있다.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는 간수장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형무소장의 모습에서는 ‘상부는 의도치 않았으나 일선에서는 강경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메시지가 묻어나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니시다(류경수 분)는 영화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인데, 그의 행적은 자신의 부역 행위를 정당화 하는데 방점을 둔다. 그는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그 모습 또한 말단의 힘없는 꼭두각시처럼 묘사되지만, 이 같은 묘사는 친일 부역자들의 행위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다. 특히나 협박이나 강요가 아닌 그 일신의 영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간들에게 더더욱. 영화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 부분은 이처럼 받아들이기에 따라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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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만세를 외치는 유관순을 그 누가 저지하리오. *사진 : 다음 영화, <항거>(2019)

그러나 영화 속에서도 묘사되었듯, 조선 민중들이 그 자신의 이익이 현저히 침해 받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친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 모두가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에서 특히 유관순, 고작 17세의 어린 나이로 소녀가 감내하기 힘든 정신과 육체적 고통 모두를 이겨내면서까지 자발적으로 불의에 항거하고 그 자신의 모습을 통해 운명에 찌들어버린 어른들을 각성케 한 것에 대한 묘사는 꽤 감명 깊게 다가온다.

유관순이 중심이니 만큼 <항거>가 다루는 영화적 상상력도 당연히 유관순이 갇혀있는 동안 그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향한다.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8호실 옥중 창가
권 지사가 생전 “유관순이 너무 많이 당했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어느 날 고문 당하고 감옥으로 돌아오면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서 여자로서 걷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올 정도였다”는 것. 김정일씨는 “당시에는 할머니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성고문이었다는 취지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 감옥 동료와 지어 부른 노래, 100년 만에 찾았다", 『한국일보』, 2019. 1. 1 중 발췌

영화에서는 실제 상황에 대한 묘사가 다소 어긋나있기는 하지만, 이는 관객들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극적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자료에 따르면 ‘8호실’의 실제 인원은 십수 명이 아니라 일곱 명이었고, 억류된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부른 노래도 ‘아리랑’이 아닌 ‘자작곡’이었다. 고문에 대해서도 <항거>는 익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심하게 묘사되어있지는 않은데, 이는 유관순 열사가 일제로부터 받은 모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숭고함을 기리는 방법으로 연출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영화는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전개했고, 이에 따른 제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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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이는 고아성의 연기. *사진 : 다음 영화, <항거>(2019)

고증 부분을 넘어 이 영화의 탁월했던 부분은 과감한 ‘자유를 억압당한 유관순’에게 과감히 흑백 컬러를 배치한 것과 더불어 유관순을 열연한 고아성의 얼굴이었다. 불의에 항거하고자 하는 드높은 정신과 어린 소녀로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내게 되는 일말의 두려움, 그런 미묘함을 한 얼굴에 동시에 담아내는 고아성의 연기력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런 타임을 다 소모시키게 한다. 실로 이 영화는 고아성의 연기가 끌고 간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분명히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연한 ‘불의’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접근한다는 점, 또한 유관순이 왜 그런 수난을 감내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특히 앞서 지적했듯이 일제강점기와 친일 부역을 미화하는 듯한 위험하고 미묘한 신들은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 점만 주의해서 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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