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첫 시사, 첫 반응

in #kr6 years ago (edited)

어제, 오늘 남북정상회담을 보니 꽤 뭉클하고 울컥했습니다. 특히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한 연설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타서 지난 9월13일 개봉한 영화 한편을 소개할까합니다(개봉하기 전에 소개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네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라는 영화입니다. 제목대로 호주 출신인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이 영화를 배우기 위해 평양까지 가는 이야기에요. 다국적 기업이 호주에서 셰일 가스를 채굴하려고 하자 가스 채굴을 반대하는 북한 스타일의 선전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디어가 꽤 대담합니다.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은 원래 북한영화를 잘 알고 있었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주한 호주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이란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1995년 일본은 밋밋하고 회색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곳에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즐겼고, 오타쿠 문화를 소재로 한 영화 <헬 벤토>(HELL BENTO!!, 1995)를 연출해 감독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북한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입니다.

  1. 메시지가 있다.
  2. 음악이 많다.
  3. 강인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밖에도 그는 "대사가 자연을 빗대 표현이 많고 연설하는 장면은 꼭 나온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북한영화를 두고 "비슷한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면 지겹지 않나요?"라고 반문하자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은 "코카콜라 광고가 지겹던가요?"라고 받아칩니다. 이 대목에서 깔깔거리면서 웃었어요. 그러니까 평양 스타일의 선전영화나 자본주의의 광고나 프로파간다에 충실하지 않냐는 건데. 자본주의의 광고를 재치있게 풍자한 거죠.

안나가 좋아하는 북한영화 세 편

  1. <불가사리>(1985)
  2. <평양 날파람>(2006)
  3. <도라지꽃>(1987)

그는 호주 스탭들을 데리고 평양을 두 번 들어갔습니다. 한 번은 북한 정부와 북한 영화인들의 촬영 동의를 얻기 위한 방문이었어요. 또 한번은 촬영 허락이 떨어진 뒤 무려 21일 동안 평양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에 가기 전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쓴 책 <영화와 연출>을 읽고 북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고 합니다. <영화와 연출>에 다루는 김정일의 연출 원칙도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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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연출 원칙

  1. 배우를 완전한 사회주의 전사로 만들어야 한다.
  2. 창작에서는 크게 노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3. 배우 연기는 연출가에게 달려있다.
  4. 영화에는 반드시 음악이 있어야 한다.

북한영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고, 본 적도 없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 잠깐씩 언급되는 북한영화들은 저런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이 북한의 올리버 스톤인 리관암 감독, 북한 공훈 예술가 박정주 감독 등 감독, 배우, 작곡가 등 많은 북한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북한 스타일 영화를 배웁니다. 문화도, 생각도 다르지만 영화 매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른 건 없더라고요. 다만, 아직도 필름을 쓴다는 사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은 호주로 돌아와 스탭, 배우들과 함께 셰일 가스 채굴을 반대하는 선전 영화 <가드너>를 만듭니다. 이들이 북한영화를 따라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습니다. 북한 얘기만 하면 너무 진지하니 코믹한 장면들을 따로 심어둔 듯해요. 꽤 유머러스합니다. 그렇게 만든 영화 <가드너>도 평양 스타일이 가미된 가스 개발 반대영화라 보시면 됩니다. 저는 꽤 재미있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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