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결에 찍은 점들이 문득 이어져 별이 되는 순간

in #kr5 years ago (edited)

살다 보면 '딱히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을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 일의 덕을 보게 되는 경우'를 만난다. 별다른 포부 없이 시작한 일들이 내 새로운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 경우.

대학교 휴학하고 겉으로는 심상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막막해 죽으려고 했던 열아홉 살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나에게 스티브 잡스 연설 영상을 추천해 줬다. 그 애는 침잠한 나를 일깨우려고 그 영상을 추천해 준 게 아니었고(자기가 그걸 봤는데 꽤 괜찮아서 주변 사람에게 가볍게 추천해 준 것), 나는 나 스스로를 일으켜 보려고 그 영상을 본 게 아니었다.

그 영상에서 스티브 잡스가 말했다.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하는 일들은 저마다 하나의 '점'과 같고, 여러분은 그 점들이 미래에 연결되어 뭔가를 만들 거라고 믿어야 한다고. 스티브 잡스 자신은 그것을 믿었고, 거기에서 실망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그것으로부터 인생의 전환을 도모했다고. 그러니 배짱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카르마든 뭐든 믿어 보라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점을 찍으라고.

나는 그 말들이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쓸모 없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말로 들렸다.

당시에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인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모여서 미래에 중요한 뭔가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휴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등학생 때 내내 배우고 싶었던 커피를 배우고 있었고,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었다. 이걸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아야겠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니고, 나는 굉장한 커피 애호가도 아니었다. 좋아하긴 했지만. '맹탕 놀 수는 없고 뭐라도 해야겠으니 제일 하고 싶었던 것부터 하자.'라는 마음으로 학원에 들어갔을 뿐이다. 좀 무모하거나 무책임하긴 했지만, 그 무모함과 무책임함은 절박함을 디디고 있었다. 나는 뭐라도 찾고 싶었다. 진짜 내 마음에 쩡한 울림을 주는 뭔가를. 다행히 커피 배우는 일은 무지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걸 평생 직업 삼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커피가 내 인생에 중요한 구역을 차지하는 날이 올까. 몇 개월 더 배우다가 때려치우는 게 아니라. 이걸 직업 삼지 않아도 내가 이거랑 행복할까. 다 떠나서, 이게 내 미래에도 내 곁에 있을까. 열정을 가지고 찍은 이 점 하나가 나중에 다른 뭔가와 이어질까. 스티브 잡스의 말이 지니고 있는 일리가 내 생의 일리이기도 할까.

나는 그 질문에 곧장 답할 수 없었다. 미래를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그때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지금, 커피는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내 하루의 시작과 중반부의 템포를 조절해 주는 근사한 동료이자, 내 가족들의 최고 기호 음료가 되었다. 결국 커피를 직업 삼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커피를 내려 마시고 살아가니, 이게 그냥 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내 진짜 직업 생활에도 큰 보탬을 주고 있고.

그때 커피를 배운 덕분에 내 삶의 질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나는 내가 커피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 몰랐고, 내 가족들까지 커피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 이거 해야겠는데.'라는 작은 뭉치의 (뿌리치기 어려운) 열정을 따르는 일이 내 생에 돌이킬 수 없는 문 하나를 열 수도 있다는 관점을 나는 커피로부터 배웠다. 커피로 찍은 점은 내 여가 시간과 인간관계의 수많은 점들과 이어졌고, 나는 그 연결에서 근사한 그림 한 폭을 본다.

내가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커피를 시작한 것과 비슷한 과정을 통과했다. 커피라는 점을 다 찍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지내던 나에게 친구 한 명이 글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글쓰는 거 좋아하면서, 밤낮없이 그렇게 많이 쓰면서, 그걸로 뭘 해 볼 생각은 왜 안 하냐고. 해 보라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쓰면 다 작가지!

당시 자주 가던 술집 구석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무슨."이라고 했는데, 친구의 그 말이 며칠 내내 내 마음에 고여 출렁거렸다. 여러 가지 제약을 스스로에게 걸며 어딘가로 도망치다가도 '아, 해 볼까. 해 보고 싶은데.'라는 마음에 걸려 우당탕 넘어졌다.

그렇게 시작했다. 글쓰기를 제대로. 그런데 글쓰기는 커피와 달라서, 처음부터 나는 이걸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기이한 차이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냐.'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글쓰기는 세월이 갈수록 내 안의 큰 구획을 차지하더니, 나중에는 전부가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마음이 쉬지않고 웅웅대며 울었고, 발바닥이 따갑도록 행복했다. 글쓰기라는 점을 직접 찍어 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감정들을 느끼며, 나는 체험이 지닌 가치가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내 과거 경험들이 내 직업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땐 그냥 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 그 속에 담긴 깨우침이나 의미 같은 것들을 글로 만들면서, 나는 내 인생의 사소한 부분들이 저절로 그려 주는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경이로운 순간들이었다.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진짜 쓸모 없는 순간은 없구나.

문득 돌이켜진 과거를 통해 오늘의 한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도 엄청나게 귀한 기회고. 그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나는 에고(ego) 너머에 있는 더 큰 내가 에고보다 훨씬 큰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상위자아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우주라고 부르는데, 아무튼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하고 커다란 존재가 쥐고 있는 붓은 너무 커서, 나는 여전히 그것이 점 하나를 찍을 때마다 그 점의 의미를 미처 헤아릴 수가 없다. 한때는 그 의미를 헤아리려 했으나, 지금은 조용히 믿으려 하는 편이다. 오늘 내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 이끌리는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볼 수 없는 시간의 장벽 너머를 보려 하지 말고, 지금 내 마음 안의 움직임과 소리와 계절 변화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능률적인 일이라고.

에고의 통제 욕구를 내려놓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지만, 그 도전을 실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와 너그러움과 순조로움을 한번 맛보고 나면, 내 안의 소리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이 별로 없음을 (지금은 그런 게 아예 없다고 느낀다) 느낄 수 있다.

나를 믿는다는 관념은 그렇게 자리를 바꾸었다. 에고의 손아귀에서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거하는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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